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첩 Mar 27. 2020

눈물 콧물 나는 위로

반려동물과 비염


짬짬이 동물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는 건 큰 즐거움입니다. 요즈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더 많이 보는 것 같네요. 이 애들은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요. 그러고 보니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동물 관련 책을 거의 외울 정도로 봤고,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도 열심히 봤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주인이 있는데도)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가 가끔 있었는데, 그 애들을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참새를 가까이 보려고 현관 앞에 쌀을 뿌려 놨던 적도 있습니다. 참새가 몇 번 쌀알을 주워 먹으려고 오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동물을 키워본 건 딱 두 번입니다.

병아리를 박스에 가득 넣고 팔던 아주머니에게 병아리 한 마리를 사 와서 닭이 되기 직전까지 키웠습니다. 저는 먹이만 꼬박꼬박 주고, 놀아 줄 뿐 똥을 치우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은 부모님께서 거의 하셨죠. 그러다 닭이 되려고 하니 몸집이 너무 커서 박스로 지어준 집으로는 비좁더라고요. 부모님은 이렇게 답답하게 사는 것보다 동네 산에 있는 농장에서 사는 게 (닭이 되려 하는) 병아리에게 더 좋지 않겠냐고 했고, 저는 슬프지만 이별을 받아들였습니다. (‘삐약이’는 그 농장에서 잘 살았을까요? 그럴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비염이 시작됐던 거 같습니다. 아침에 코를 풀면서 삐약이에게 좁쌀을 줬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요.


다른 한 번은 금붕어들입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아이들이 그동안 굶게 돼서, 그래서 혹여나 스트레스를 받아 한 마리를 다른 애들이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미리 발견 못 하게 되면 정말 무자비하게 지느러미를 뜯어버려 헤엄 자체를 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더라고요. 그렇게 며칠 집을 비운 뒤 지느러미 없이 둥둥 떠서 죽은 녀석을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집을 비워서 죽게 됐다는 죄책감이 무척 많이 들었어요.

전에 브런치에 전학을 할 때 이야기를 썼었는데, 당시 전학 가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과 맞먹을 만큼 금붕어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좁은 통에 옮겨 담긴 금붕어들이 산소공급기도 없이 몇 시간 방치될 생각을 하니 조마조마했으니까요.

https://brunch.co.kr/@muistikirja/10


저는 반려동물과 얼굴을 부비고, 쓰다듬고, 끌어안는 경험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막연하게 비염이 나아지면 키워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이를 먹었죠. 하지만 비염이 나아져서 반려동물을 데려왔는데 비염이 심해지면 그때는 어떡하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 확실히 마음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을 굳힌 일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 일 때문에 찾아간 반려견 유치원에서 였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아서일까요. 처음 보는 제게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본 척을 하지 않더니 슬쩍 다가와서 냄새를 맡고 가는 아이도 있었는데, 거기 계신 분 말로는 그 아이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곳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점점 더 자주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코가 막히면서 콧물도 나오고, 눈이 빨개지면서 눈물도 나오더군요. 실내에 여러 멍멍이들과 몇 시간을 함께 해서 그런가 봅니다. 휴지를 꺼내 눈물과 콧물을 닦는데, 멍멍이 한 마리가 제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제 다리에 기대면서 앉더라고요. 제가 처음 왔을 때 가장 반갑게 맞아주던 아이인데. 또 다른 한 마리는 와서 제 발등을 할짝였습니다. 제가 “안돼, 아무데나 막 핥으면”이라 하면서 발을 치우니 제 앞에 와서 스르륵 앉았습니다. 아마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이렇게 눈이 빨갛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사람은 위로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단지 자신들과 같이 있다는 이유로 저절로 눈물과 콧물이 나오는 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아, 이렇게 위로를 받는구나.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도 이렇게 위로해주다니. 정말, 정말 좋다. 마음은 너무 좋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다니.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얼굴을 부비고, 쓰다듬고, 끌어안을 수 있는 반려동물과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됐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같은 거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축축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