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걱정과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연필이가 입학을 했다.연필이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였다. 학교는 도시의 저쪽 끝에 있었고, 우리 집은 도시의 가운데를 축 삼아 지도를 반 접으면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질 이쪽 끝에 살았다. 학교는 9시까지 가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내가 눈 비비며 일어날 때 연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도저히 매일 몇 년 동안 할 일은 아니었다.
사실 입학 전부터 부모님은 연필이 학교 근처로 집을 보러 다녔다. 주말마다 집을 봤다. 참 많은 집을 보러 다녔는데, 부모님이 중개사와 집을 보러 가면 나는 연필이와 차에 남아서 기다렸다. 간식도 먹고 차에 있는 오디오로 노래도 듣고. 가끔 집을 보러 간 게 오래 걸리면 연필이가 지루해 잠이 들었다. 나는 절대 잠들면 안 될 것 같아서 눈을 부릅뜨며 차창 밖으로 동네를 살펴봤다. 이 동네에서 살 수도 있단 말이지. 낯선 동네에서 과연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첫 돌 전부터 살던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니 불안해졌다. 그러다 과자를 먹고 있는 연필이를 봤다. 그래, 연필이가 학교를 가게 됐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난 괜찮아, 연필아.
엄청 친절했던 새 친구들
그렇게 연필이가 입학한 지 몇 주가 지난 뒤 우리는 이사를, 나는 전학을 했다. 아이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잘 대해줬다. 불안과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 집에 가서 놀던 때였다. 친구 어머니는 간식을 만들어 방에 넣어주시면서 내게 저녁도 먹고 가겠냐고 물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사양했다. 몇 번 더 권하던 친구 어머니가 내게 집에 누가 있냐고 하길래 엄마랑 동생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분은 아, 그렇구나,라고 몇 번 말하더니 간식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라고 다시 웃으며 방을 나갔다.
이후 우리 집에 놀러 와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을 먹고 간 아이들은 더 이상 부담스럽게 과한 친절을 베풀지는 않았다. 여전히 상냥하고 잘 대해주긴 했지만. 한참 지난 후 그 때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엄마가 없는 아이인 줄 알았다고. 아니면 엄마가 바빠서 나를 챙겨주지 못하는 줄 알았거나. 전학 날 나는 아빠와 학교를 갔었다.
셔틀버스가 안 지나간다고?
그런데 이사할 때 부모님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온 집 쪽으로는 연필이 학교의 셔틀버스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엄마는 더 먼 곳도 셔틀버스가 다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는 안 다닐 줄 몰랐다고 했다. 가까이 이사를 왔지만 꼭두새벽에 눈 비비고 나가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타기까지 걷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도 힘들었다. 결국 엄마는 운전대를 잡았다. 이것이 면허만 따 두었던 엄마가 운전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