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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May 10. 2019

엄마와 단 둘이 한 옷 쇼핑

수첩의 사춘기(1)

봄이 돼서 옷을 정리해 몇 벌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엄마와 샀던 파란 반팔 티, 엄마와 샀던 흰 셔츠, 그리고 엄마와 샀던 아이보리색 니트 민소매 티. 역시 엄마와 샀던 누빔 점퍼, 그리고 엄마와 샀던 정장 바지. 다 엄마와 함께 샀던 것 들이다. 거의 10년이 넘은 것 들을, 처음에는 아끼는 마음에, 나중에는 입고 나가기 애매해진 마음까지 더해져 옷장에만 뒀던 옷 들이다. 별로 비싼 옷 들은 아니다. 예전에는 엄마랑 산 옷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서  입지도 않으면서 과감히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주로 옷을 엄마랑 같이 가서 샀다. 아마 중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두 달에 한 번쯤 엄마랑 집을 나섰다. 한 번 나가면 세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둘이 보내는 시간에 주로 옷을 사러 갔던 이유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시간 활용이라고 생각해서다. 스크린만 보고 나란히 않아있기는 시간이 아까웠다. 멀리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식사를 하기도 좀 그랬다. 엄마는 연필이가 아빠와 둘이 남으면 식사를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했다. 실제로 엄마가 없자 연필이가 식사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긴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웠다.


사실 옷 사는 것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백화점이나 지하상가, 쇼핑몰에서 엄마와 단 둘이 옷을 같이 고르고 샀다. 특별히 겨울 외투를 장만하거나 특별한 날 입을 옷을 사는 게 아니면(사실 옷을 살 만큼 특별한 날은 일생에 많지 않았다) 싼 반팔 티 1장, 매대에 누워있는 청바지 1개를 사고 오기도 했다. 얼마나 멋진 옷을 샀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롯이 엄마와 나만의 시간이라는 것. 나는 눈으로는 옷을 고르면서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친구들과 있었던 일, 고민하는 것들을 마구 쏟아냈다. 나는 떠들기 좋아했던 청소년이었으니까.


'나는 무척 좋은데 엄마는 힘들겠다.'

어느 날은 엄마랑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엄마는 기절할 듯이 힘들었다. 어렸을 때보다 연필이를 돌보는 게 아주 조금 덜 힘들어지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신경 써줘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어서 여전히 힘들었다. 엄마한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건 그거고. 내가 연필이 엄마기만 하냐?라고 대답했다. 사춘기 딸이 소외감을 느끼거나 서운함을 느낄까 싶어서 있는 힘을 짜내 나와 외출했던 것 같다.


나이가 먹고 엄마와의 이런 외출도 줄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도, 심지어 대학생 때도 친구들이랑 또는 혼자서 옷을 잘 사지 않았다. 엄마랑 가서 사야 했으니까. 옷을 사버리면 엄마랑 갈 핑계가 없으니까.

내가 엄마와 옷을 사러 가는 것이 뜸해진 것은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 때부터였던 것 같다.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들 정도로 바쁘고, 바쁘지 않으면 지쳤다. 그러는데 비해서 옷은 많이 필요했다. 금방 낡았다. 금방 더러워져서 세탁을 하다 보니 또 낡았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옷을 오가는 길에 있는 spa매장에서 한 두 벌씩 사 입었다. 그렇게 엄마와의 외출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이제는 회사를 그만둬서 시간이 비교적 많아졌지만 엄마와 옷을 사러 자주 가지는 않는다. 엄마와 옷을 쇼핑할 핑계가 없어져서다. 회사를 나가지 않으니 옷이 잘 낡거나 해지지 않아 옷 별로 필요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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