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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May 13. 2019

도움되는 직업을 택하지 말고 도움되는 가족이 되어야지

수첩의 사춘기(2)

대학 입학 후 얼마 안 됐을 때, 당시 활성화되던 온라인의 힘으로 오래전 친구를 만났다. 초등학생 때 각자 다른 곳으로 이사가 한 동안 연락을 하다가 끊겼었다. 대학 새내기였던 우리는 옛날이야기와 함께 현재 각자의 학교와 전공, 대학생활 얘기를 했다.

나는 2학년부터 전공이 정해질 예정이었고, 친구를 만났을 당시는 전공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내가 2학년 때 선택할 수 있는 전공들을 이야기했고, 이 중 하고 싶은 전공을 말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공을 듣던 친구가 말했다.

"의외다. 난 네가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 같은 걸 전공할 줄 알았는데."

나는 초등학생 때 한 번도 이 친구에게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 쪽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 친구는 내가 그쪽 분야에 장점이 있어서 그럴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필이를 지켜봐 왔으니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이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럼 영어 권에서 살다왔으면 다 영어영문과 가고, 중국에서 살다 왔으면 중어중문학과 가나.


전공은 순수하게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서


고등학생이 되자 나의 장래희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곧 성인이었고, 하고 싶은 일에 따른 계획이 달라질 터였다. 전문적 기술을 배울지, 혼자 뭔가를 공부할 것인지, 대학을 가서 관련된 것을 공부할 것인지 등.


그전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희망'에 좀 더 초점이 맞춰졌다. 초등학생 때는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겠다고도 했다가 추리소설가가 되겠다고도 했다. 장래희망 칸이 너무 작아서 글자를 몇 개 쓸 수 없을 거 같아 고민하다 대통령이라고 쓴 적도 있는 것 같다. 라디오 DJ가 되고 싶었던 적도, 음반가게 주인을 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진급을 앞두고 문이과가 나눠졌다.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한다기보다 순전히 영어를 너무나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영어로 된 전공책을 읽을 때면…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한 나는 얼마나 멍청했던가.) 이후로 어떤 책을 한 권 읽고 그것에 '꽂혔'다. 책을 읽고 나서 세상이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졌으니까. 좀 더 공부해볼 이유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단지 그것. 좀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 대학을 갔고 전공을 선택했다.


부채의식 없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온 편이다. 내가 하고픈 걸 하기 위해 그때 그때 노력했다. 이런 내게 어떤 사람은 "부채의식이 없다"라고 했다. 동생을 힘들게 키우시면서도 나를 키워준 부모님에 대한 부채의식, 장애인인 동생이 못 누리는 비장애인의 삶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걸 내게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가족에게 부채의식이 없다. 가족 간에 그건 별로 건강하고 발전적인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채무가 마음에 자리 잡아 그걸 갚기 위해, 미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정말 본인이 하고 싶어서, 부채의식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인해 장애인인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내 의지로 연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하고 싶은 적이 없었을 뿐.

하고픈 일을 즐겁게 하고, 그렇게 내가 삶을 살아내면서 가족으로서 연필이에게 잘 대해주는게 내가 추구해온 방향이다. (추구해 온 방향이라 하니 좀 거창한 느낌이 있지만)

우린 부채의식이나 의무감 같은 걸로 묶이지 않아도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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