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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Mar 13. 2020

축축한 이야기

마스크와 비염

설 명절 전 나는 마스크를 여러 장 주문할 생각이었다. 미세먼지와 함께 봄에는 꽃가루, 황사가 있으니까, 봄이 오기 전에 주문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명절 전에는 택배 물량이 많아 보였다. 명절이 끝나고 주문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명절 연휴가 끝나고 받을 생각으로 연휴에 결제했던 마스크는 품절이라며 취소 환불이 됐다. 코로나 19 때문인가. 뭐, 다른 데서 주문하면 되지. 그런데 아니었다.


신중하게 마스크를 고르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마스크를 꼈지? 곰곰 생각해보니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던 아주 작은 마스크를 끼던 아주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는 감기에 잘 걸리던 어린 내게 겨울이면 마스크와 목도리로 코와 입을 꼭 싸매게 했다. 마스크는 겨울이면 써야 하는 거였으니, 그나마 맘에 드는 걸 고르기 위해서 꽤 고심을 했다. 엄마랑 간 약국에서 약사님이 각각 다른 캐릭터가 그려진 마스크 몇 장을 펼쳐 보여주면 오래 고민해서 신중히 골랐다. 그래 봤자 내가 쓰고 있으면 볼 수도 없는 그림인데. 그렇게 고른 마스크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바깥바람을 쐴 때 끼었다. 한 번은 아빠가 약국 간 김에 동생과 내 마스크를 사 온 적이 있는데 직접 고르지 못해서 슬펐다. 요즈음 소형 보건마스크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들어가 있던데. 지금 저걸 끼는 아이들도 그때 내 마음과 비슷하려나.


마스크와 얼어붙을 것 같은 얼굴


그런데 초등학생 때 비염이 생기고 나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는 마스크를 잘 끼지 않았다. 당시는 1회용 마스크를 파는 곳을 잘 보지 못했다. 그때 주로 팔던 것은 에어메리 내복 천과 비슷한 느낌의 천으로 만들어진 거였다. 보통 추운 날 마스크를 썼는데, 이런 마스크를 추운 날 쓰고 나가면 금방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었다. 아마도 코와 입에서 나오는 김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그대로 마스크에 맺혀 버리기 때문일 거다. 비염이 생겨 입으로 숨을 쉴 일이 많으니 더 많은 입김이 나왔고, 마스크는 더 빨리, 많이 젖었다.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천을 통과해 들어온 공기는 더 차가운 느낌이었다. 젖은 천과 닿은 입과 코, 얼굴이 더 시리기도 했다.

거기다 안경까지 쓰니 입김이 올라와 안경이 뿌옇게 되기까지 했다. 추운 날씨에 이런 천 마스크를 쓰고 조금만 오래 있으면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앞도 잘 안 보이고, 얼굴은 얼어 터지는 것 같고, 공기는 더 차고.

그래서 마스크 대신 목도리를 눈 거의 아래까지 감고 다녔다. 물론 목도리도 너무 꽁꽁 싸매면 안경에 습기가 차고 찬 공기가 맺히지만, 다년간 감는 간격과 조이는 정도를 터득했다.


일회용 마스크와 만나다


그러다 십 년도 더 된 어느 날, 일회용 마스크를 샀다. 안경에 김이 안 서리는 건 아니지만 조심이 숨을 쉬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고, 마스크에 물이 맺히기도 했지만 천이 젖듯이 흠뻑 젖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입과 얼굴, 코에 딱 붙지 않아서 더 쓸 만했다. 천보다 얇아서 실내에서 쓰고 있어도 많이 답답하지 않고 코가 건조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어 좋았다. 

신종플루 때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이후로 미세먼지를 막는다는 마스크를 샀고 메르스가 돌 때 마스크를 아껴 썼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가 중요한 삶을 살고 있다.

여태까지 좋아졌듯이 앞으로도 마스크는 조금씩 더 좋아지겠지. 그런데 그것보다 마스크를 안 써도 될 만한 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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