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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Feb 28. 2020

“그럼 숨을 어떻게 쉬어요?”

억울함과 비염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걸 보고 한 마디씩 하는 말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제 비염은 어린 시절 자주 놀림감이나 농담의 대상이 되었죠. 코찔찔이, 코맹맹이 같은 말은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코를 푸는 게 더럽다며 매번 화장실 가서 코를 풀고 오라고 짜증을 내던 아이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도 어렸던 만큼 그렇게 놀리던 아이들도 어렸으니까요. 그렇게 상처를 받거나 속상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조금 신경이 쓰일 정도였지요.

이런 아이들의 말 보다 더 괴로웠던 건 몇몊 어른들의 말이었습니다.


아프거나 억울하거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떤 이는 저에게 코를 훌쩍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코를 훌쩍이면 더럽다는 게 그 사람 말의 요지였는데, 코를 한 번 시원하게 풀지 못하고 훌쩍인다면서 두루마리 휴지까지 둘둘 풀어서 제게 쥐어 줬습니다. 저 거친 휴지로 코를 풀면 코 밑이 아프겠지? 그리고 한 번 코를 풀어도 금방 또 콧물이 찰 텐데. 하지만 저는 그 휴지를 빨간 코 주변 살갗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코를 풀었습니다. 그게 답답해 보였던 그 사람은 휴지를 빼앗아서 제 코를 꽉 움켜쥐더니 “흥! 세게!”라고 했습니다. (세게 코를 푸는 것은 경험상 좋지 않은데)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어요. 억지로 흥 하고 코를 풀고 조금 뒤 다시 훌쩍이자 그 어른은 신경질적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제게 밀었습니다. 저는 그걸 다시 원래 자리에 밀어 두고 집에서 챙겨 온 티슈를 꺼내 콧물을 닦았습니다.

억울한 적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휴지를 버린 것을 제가 버렸을 거라 생각하고 혼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휴지를 자주 쓰니까 그럴 거라 생각한 것 같은데, 저는 비닐봉지나 가방 안 주머니 같이 한 곳에 모아뒀다가 휴지통에 버리거나 집에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억울했습니다. 제가 아니라고 해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라며 화를 냈습니다. 저는 제 결백을 어떻게 밝혀야 하나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 휴지를 버린 아이가 자신이 버린 거라고 하는 바람에 싱겁게 끝나버렸지만요. 휴지를 버린 아이는 제게 (자신 때문에 곤란을 겪은 데 대해) 사과했지만, 저를 믿지 않고 혼내던 사람은 제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했던 말들은 원초적이고, 그저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걸 놀리고 지나가면 그만이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은 좀 더 길고, 뭔가를 지시하거나 혼을 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렸던 저는 바보 같이 별 말없이 그걸 따르거나 따르려고 노력했고요.


선생님은 사과했다


그러다 생각과 행동을 전환하게 된 일을 겪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목격한 것이겠지요. 수업 시간에 입으로 숨을 쉬면 좋지 않은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옛 조상님들 말씀과 턱 골격 같은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도 여전히 코가 막혀서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다른 어른들과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저는 지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쉰다고 혼나면 어쩌지?’ 조심조심, 코가 뚫리길 바라면서 입을 잘 안 보일 정도로 벌리며 몰래 숨을 쉬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아이를 부르며 “입을 벌리고 숨 쉬는 건 안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선생님이 안 볼 때 입으로 숨을 몰아쉬며 ‘저 아이는 혼나려나?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씩씩한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숨을 어떻게 쉬어요? 코가 막혔는데.”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저 멋진 아이처럼 저도 억지로 참거나 괜찮은 척하지 말고 당당히 말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비염도 괴로운데 이런 것까지 저를 괴롭히면 안 되니까요. '선생님과 씩씩한 아이' 보다 앞서 나온 사람들(거친 휴지로 내 코 흥 하라고 한 사람, 휴지 버린 범인으로 나를 단정하고 몰아세운 사람) 같은 이들은  당당하게 할 말을 더라도 사과하지 않았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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