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송, 특히 재산분할은 이미 정해진 사실관계(결혼기간, 재산형성 경위 등)로부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7:3 내지 6:4 정도 사이에서 나오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세밀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고 사실 별 의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범위 내에서의 구체적 결론은 가사사건 특성상 재판부에게 비교적 넓은 재량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넓은 재량이 인정된다는 의미는 판사 마음대로 그날 기분따라 결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혼사건은 수년, 수십 년 간 하나였던 가정이 쪼개지는 과정입니다. 부부가 평생 모아 마련한 아파트는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10억짜리 집 한 칸 일 뿐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부친의 논마지기, 신혼 때 담배값 아끼고 우리 애 치킨 안 사주고 모은 적금, 반지하 전세에서부터 차근차근 불려 내집을 마련한 그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인생 그 자체입니다.
아이가 앞으로 엄마, 아빠 중 누구랑 살 것인지는 단순히 누가 밥 차려주고 학원비 대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남은 인생을 좌우하게 될 결정입니다. 따라서 판사는 일반 민사사건(대개 돈이 주요 쟁점인)보다 더 신중하게 '사람의 일'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단순히 판례를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판결보다는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실심 재판부에게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결국 이혼소송에서의 치열한 공방은 실질적으로는 재판부의 재량이 인정되는 그 '약간'에 관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원고 아버지가 사 줬다고 했던 아파트가 사실은 피고 아버지 돈으로 산 것이라는 식의 대반전이 나오지 않는 한). 그리고 그 '약간'을 결정하는 데에는 비정형적이고 사소한 일들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굳이 '느낌'이라고 한 이유는, 이것이 논증하거나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무를 거듭하며 얻게 된 변호사의 개인적인 추론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논문에 낼 수는 없지만 제 의뢰인들에게는 각별히 주지시킨다는 뜻입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관이 당사자의 사람됨(인품이나 성격)을 따진다니 언뜻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만, 이혼사건 특성상 불가피한 일입니다. 당사자들이 서로 "저 사람이 잘못했고,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누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해야 하거든요.
물론 누가 나쁜 사람인지는 증거를 통해 입증된 사실로 판단하는 것이지, 법관이 면접관처럼 당사자 얼굴 한두 번 보고 심증을 형성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다만,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혼사건은 수십 년 간의 결혼생활에 있었던 사소한 싸움들도 다 끄집어 내어 공격하기 때문에 입증 없이 주장만 가득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한된 증거를 기초로 올바른 판결을 하기 위해, 또 당사자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가리기 위해 직접 대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가정폭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장에 "원고는 대립을 두려워하고 겁이 많아 남편에게 맞고도 참고만 살았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변론준비기일에 판사님이 "원고의 이런이런 주장은 무리해 보이는데 입증이 어렵다면 철회 여부를 생각해보세요"라고 하니, 원고가 대뜸 "판사님, 왜 저한테만 그러시고 남편 주장에는 아무 말도 안 하세요? 남편이 양보하면 저도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판사는 생각하겠지요. '이 사람은 대립을 두려워하고 겁이 많은 사람은 아니구나'. 그리고 이렇게 확장됩니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의 성격을 거짓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다른 주장들에도 거짓이나 과장이 있지는 않을까?', 혹은 '자신도 맞았다는 남편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저희가 진행한 한 사건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조정기일에 출석했는데, 원·피고와 재판장이 함께 앉아 있는 탁자에 "재판 도중에는 핸드폰의 전원을 끄거나 무음으로 하시고 꺼내어 잠시 이곳에 담아놓으세요"란 문구가 있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이를 보자 그 즉시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재판장님이 보시더니 "역시 규칙을 잘 지키시는 분이군요."라고 한 마디 하십니다.
"역시"라는 말은 그 분의 직업이 규칙을 지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는데, 재판장이 굳이 명시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은 상대방 대리인 들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는 피고가 원고 주장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설득시킬 만큼 확실한 증거로 입증하지 않으면 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는 뜻이지요. 이 사건은 재산분할과 양육권 모두에서 제 의뢰인에게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너무 사소해 보이나요? 물론 위 사건에서는 이 외에도 결과에 영향을 미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날 재판장님의 한 마디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지요. 이것이 바로 당사자와 대리인(변호사)이 챙겨 들어야 하는 '디테일'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하면, 의뢰인들은 어떻게 하면 판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냐고 질문합니다. 하지만 재판부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자각한 것만으로 충분하고, 또 그걸 넘어서는 안 됩니다.
작위적으로 어떤 모습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나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잔술수로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판사에게 '이러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계획할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면 됩니다.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한다고 주제넘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변호사로서 전략적 효과를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돈에 대한 집착에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판사나 조정위원 앞에서도 말과 행동에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밉게 굴어도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세요. "이렇게 불행한 상황에 처했지만 어찌되었든 서로 사랑해 만나 부부로 연을 맺었던 사람 아닌가. 험한 모습으로 대하지 말자. 작은 이익이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럼 그 마음이 행동으로 태도로 나옵니다. 변론기일이나 조정기일에 나와서도 진중하고 신뢰를 주는 당사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특히 양육권을 다투는 사건이라면 더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다가 다 뺏기란 말이냐? 아닙니다. 죽기살기로 싸워야지요. 다만, 싸움의 격을 높이는 겁니다. 변호사들끼리 하는 말로 이혼소송이 격해지면 "개싸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유치하고 별 치졸한 꼴을 다 보인다는 뜻입니다. 싸움은 변호사에게 맡기세요. 변호사들은 개싸움처럼 진상을 부리다가도 전략적으로 필요하면 바로 표정 바꾸고 태세를 전환할 수 있지만, 당사자가 개싸움의 모습을 보이면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품위를 지키고 예의를 갖추어야 판사님이 당신의 말에 귀 기울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