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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Feb 09. 2022

이혼소송의 '디테일' (2) : 자녀를 사랑하는가?


앞선 글에 이어 두 번째 주제입니다(이것 역시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고, 저한테 입증하라고 하면 못합니다).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당사자들에게 직접 호불호를 표현하는 경우를 보면 자녀와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1. 상대방이 밉다고 자녀까지 내팽겨치지 말 것.


제 아픈 기억을 하나 꺼내보겠습니다.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남편이 제 의뢰인이었습니다. 양육비 사전처분 등을 위해 기일이 잡혔는데, 그 전에 의뢰인이 제게 '아내는 애들 몫으로 돈 받아서 자기 유흥비에 써 버릴 사람이다.'고 하더군요. 


뭐, 의뢰인이 속상하면 변호사에게 그런 하소연을 할 수도 있지 생각했는데, 아뿔싸! 기일에 재판장님에게 그런 속내를 내비친 것입니다. 온화했던 재판장님의 표정이 굳어지고 한바탕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당시 신입변호사라 설마 의뢰인이 판사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해 버릴 거라고 상상을 못 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의뢰인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애들한테 가는 돈은 절대로 아까워해서도 안 되고, 그런 인상을 줘서도 안 됩니다.


물론 사전처분에 결정된 양육비가 판결의 양육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민감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를 다투느라 '아이보다 돈만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면 득보다 실이 큽니다. 과도한 수준의 양육비에는 이의를 제기하되, 인색해 보이지 않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이지요.


제가 대리했던 한 이혼소송에서 상대방이 양육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정작 내용에는 배우자인 제 의뢰인에 대한 깊은 원망과 비난이 들어 있었습니다. 변호사로서는 쾌재를 불렀고, 같은 부모 입장인 한 개인으로서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이혼소송을 할 정도라면 배우자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만은, 양육계획서를 그렇게 쓰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제가 판사라면 그런 양육계획서를 쓴 사람은 '이혼하고도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할 사람'이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원망에 눈이 멀어 아이의 양육과 미래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의심할 것입니다. 결과는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양육권을 가져올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지레 포기하는 경우(특히 아빠들), 사전처분에 지정된 면접교섭일에도 아이를 만나러 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을 테고 이혼으로 힘든 모습을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권장할 행동은 아닙니다. 이혼은 돈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해체라고 말씀드렸지요. 재산분할이나 위자료에는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판사님이 곱게 보아줄 리 없습니다. 판결문에 나오는 공식만으로 보자면 재산분할, 위자료, 양육권 모두 별개이지만, 실제는 서로 영향을 줍니다(판결문에는 안 나옵니다).


소송상의 유불리를 따지기에 앞서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평소보다 더 잘 자녀를 챙겨주고, 비록 부모가 이혼하더라도 너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 시간을 가질 거라고 말해주고 안심시켜줘야 합니다.



2.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자녀를 이용하지 말 것.


안타깝지만 자주 봅니다. 심지어 '나는 엄마가 좋고 아빠가 싫어요'라고 쓴 아이의 자술서를 들고 오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만약 당사자 본인이 소송하면서 이런 자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부모가 이혼하려는 상황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엄청난 불안을 느끼며, 곧 누군가가 "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하고 물어보러 올 거라고 걱정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누구 편을 들도록 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고통일 뿐더러, 아이는 편들지 못한 다른 쪽 부모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아동복지사가 아니라 변호사인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쓸까요? 이혼소송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일로 아이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변호사나 판사들도 매우 잘 알고 있고, 또 싫어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이혼사건뿐만이 아닙니다. 판사(검사나 변호사도 마찬가지)들 중에 아이들이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히 '혐오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 형사 법정에서 들어갔는데, 앞 사건에서 재판장님이 굉장히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재판장님은 평소 재판 진행도 매끄럽고 피고인들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분인지라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니,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1심에 이미 증인으로 신청해 출석했던 자녀를 또 다시 증인으로 신청했던 것이지요. 


직접적으로 표현하신 것은 아니지만 '이 험한 형사법정에 애를 두 번이나 불러들이는 것이 부모로서 할 짓인가?'라는 행간의 의미가 저에게는 들렸습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드라마에 나오면 다들 정장 입고 폼나게 어려운 말 주고받고 멋져 보이지만, 실상은 굉장히 험한 일입니다. 인간사의 추악한 면들이 다 드러나고 온갖 거짓말에 비방에 사람 인격 하나가 무너지는 것은 별일도 아니지요. 


피고인석에 서 보셨나요? 피고인 아닌 증인석도 처음 앉아 보면 굉장히 무섭습니다. 검사 앞에 서는 수사 과정은 더 두렵습니다. 결국 수사든 재판이든 송사(訟事)와 관련된 일에 아이들이 휘말리게 하는 짓은 '못할 짓'이라는 공감대가 양식 있는 법조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개의치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만.


그러니 절대 소송에서 이기자고 자녀를 이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소송에서 이긴들 자녀 마음에 새겨질 깊은 상처를 절대 치유할 수 없으며, 대부분은 소송에서도 오히려 불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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