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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Feb 25. 2022

이혼소송의 '디테일' (3) : 거짓말


1. "이혼소송은 원래 다 소설이에요"


이혼소송은 거짓말이 난무합니다. 일반 민사나 형사 소송과 달리 당사자들의 주장을 소송 중에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도 잘 차려주지 않고, 아이도 잘 돌보지 않고, 부모님도 홀대하였다."는 주장을 과연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습니까?


신입변호사 시절, 너무 '격 떨어지는' 이혼 소장을 받아보고 선배 변호사에게 "어떻게 변호사가 이런 서면을 쓸 수 있죠?" 했더니,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혼소송 서면은 원래 다 소설이에요. 판사도 그러려니 하고 읽으니까, 변호사님도 너무 입증에 공들이지 말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다 써 주세요."


선배변호사의 조언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진심어린 것이었습니다. 입증이 어렵다고 변호사가 의뢰인의 주장을 걸러내면 쓸 말이 도저히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당장 의뢰인들의 불만이 폭주합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나를 이렇게 인간쓰레기로 묘사하는데, 내 변호사는 왜 내가 쓴 말도 믿어주지 않고 이 억울함을 판사님한테 그대로 전해주지 않느냐... 고 말입니다. 



2. 입증 없는 주장과 난무하는 거짓말 


원래 변호사가 소송 중에 사실관계에 관하여 주장을 펼칠 때에는 이를 미리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봅니다. 증거자료가 있는 경우에도 다른 측면에서 달리 반박될 가능성은 없는지, 당사자가 이를 어떻게 수집한 것인지, 이 증거 말고 연관된 다른 증거가 신규로 나타났을 때 혹여 불리하지 않을지, 다른 형사적 측면에서 문제 될 소지가 없는지 등등 꼼꼼히 따져 봅니다. 증거가 없거나 부실한 주장은 나중에 제대로 된 반격을 당하면 오히려 승패를 결정짓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뢰인들께 자주 말씀드리는 사항이 "의뢰인 스스로 판단하여 증거가 되겠다 싶은 자료만 가져오지 마시고, 그냥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련있다 싶으면, 아니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건 진행 과정에서 생긴 자료이기만 하면 일단 모두 가져오십시오. 어떤 것이 증거로서 가치가 있는지는 변호사가 판단할 일이지, 의뢰인이 가릴 일이 아닙니다."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혼소송에서 만큼은 '구체적인 입증은 필요가 없고 당사자들이 하는 말(주장)만으로 충분하다. 재판부가 어느 정도 심증만 갖게 되면 그만이지.'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의뢰인이 한 거짓말을 소송대리인이 걸러내지 않습니다. 심지어 답변서나 준비서면에 당사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진술서에 주어만 바꿔서 내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아마도 당사자가 "100"이라 주장하고, 상대방이 "0"이라 반박하면, 재판부도 이를 감안하여 "50"정도는 사실이라고 감안할테니 손해 볼 것은 없다라는 안이한 인식 때문으로 보입니다.



3. "좋은 서면을 보면 눈에 확 들어와. 아주 반가워"


하지만 가사소송도 소송입니다. 가사전문법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민, 형사재판을 하던 판사들이 일정 기간 동안 가사소송을 진행하기 때문에, 재판부의 본질상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고 거짓말로 밝혀진 부분에 대하여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판결문에 글자로 써 있지는 않지만 변호사의 눈에는 행간의 의미가 보입니다. 


예전에 판사인 친구와 동기 결혼식에서 만나 가볍게 대화를 나누던 중, 가정법원에 있다길래 "이혼소송 기록 보려면 힘들겠다?" 했더니, 친구 왈, "조금 피곤한 면은 있어. 그런데 이쪽에도 좋은 서면 내는 대리인들이 몇 있어. 엉망인 서면들 보다가 잘 쓴 서면 보면 눈에 확 들어와. 아주 반가워."랍니다.


일반 민사소송이라면 한마디 핀잔을 던질 법한 주장도 가정법원의 판사들은 그냥 듣고 넘깁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가사소송의 특성상 일일이 입증을 촉구하는 지적을 하기가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와중에 상대방이 일격필살로 제대로 된 반격을 하게 되면 진실이 '눈에 확 들어'온다는 것이겠지요.


이혼소송이라고 내게 불리할 것 없을 것 같다고 아무 주장이나 내던지거나 거짓말을 하면 우선 재판부의 센서에 감지됩니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반대 증거를 내거나 거짓말임이 드러나면? '역시 센서가 맞았군. 거짓말쟁이였어'라고 각인됩니다. 사소한 거짓말, 80%의 사실 위에 덧칠된 10%의 과장(거짓말)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80%의 사실 또한 의심받게 될 뿐만 아니라 전체 주장 자체가 위태로워집니다.



4. 발상의 전환


이혼사건 서면에는 인신공격, 비난, 원망, 거짓말, 허풍, 억지가 많습니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이혼소송에서 나 역시 거짓말 한 두 가지 더 보태면 흔한 당사자 중 1인이 될 뿐입니다. 결코 승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역이용하면 됩니다. 인신공격과 비난과 거짓말을 없애고 교과서대로 깨끗한 서면을 쓰는 겁니다. 판사가 종이 한 면을 1초만에 넘기지 않도록, 우리는 인신공격 말고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실(FACT)과 증거 위주로 구성하고, 증거가 없다면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되 인격이 아니라 주장된 사실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공격하면 됩니다.


가사소송에서 마구 던지는 거짓말은 최악의 수입니다. 당사자는 뭘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싶어도, 변호사인 대리인이 여과없이 거짓말을 계속 던져댄다면 무책임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할지라도 정확한 일자나 일시, 장소, 목격자, 전후 대화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사실관계를 충분히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기억의 나열이라고 하여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입증이 어려운 사안일수록 더더욱 주장에 구체성을 보태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쉬운 길입니다. 쉬운 길로 가서 어려운 소송을 이길 수 있을까요? 꼰대처럼 도덕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의 승패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혼소송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하지만, 누구도 잘하긴 어려운, 매우 섬세한 분야입니다. 변호사가 내 말을 그대로 서면에 써 준다고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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