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수사 입회, 조사 참여
저희 사무실 바로 근처에 마포경찰서와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있습니다. 경찰에서 전화받고 혼자 덜컥 나가 조사를 받았다가, 경찰서를 나오면서 '아, 이거 분위기가 영 이상한데...'싶어 불안한 마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경찰 첫 조사 전에 변호사를 만나야 합니다. 이유는 경찰 수사관과의 첫 대면이 향후 수사의 방향은 물론이고 재판단계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관이 작성한(흔히 "사경 작성"이라고 줄여 말합니다) 첫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는 향후 검사 그리고 판사가 읽게 될 수사 관련 핵심 서류의 첫 단추입니다. 그리고 피신조서를 떠나서 해당 수사관의 피고소인(피의자)에 대한 첫인상 자체도 중요합니다. 모두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전화가 옵니다. 수사관이 어디 경찰서 누구라고 신분을 밝힌 후 조사가 필요한데 언제 나오실 수 있느냐고 물어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짤막하게 ~관련이라고만 하고 자세히 말해주지 않습니다.
경찰은 언제 피의자를 부를까요? 답은 '수사관이 준비되었을 때'입니다. 고소장 접수되면 바로 전화하는게 아닙니다. 고소인 조사를 먼저 해서 말이 되는지도 들어보고, 피의자가 부인할 경우 추궁할 증거도 몇 개 확보해 놓고, 피의자신문조서의 스토리라인과 함정도 만들어 놓고, 다 준비되면 부르는 겁니다.
그럼 전화를 받는 사람은 어떨까요? 전화를 받고 처음 형사문제로 고소된 알게 되었는데 준비가 있을 리 없지요. TV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은 이미 경찰이 부를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첫 소환조사 일정을 두고 수사기관과 변호인간에 미루고 당기고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만큼 첫 조사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첫 조사의 중요성 자체를 모르거나, 혹은 갑자기 경찰의 전화를 받으면 당황해서 수사관이 통보하는 날짜에 나가겠다고 말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 조사는 가능한 늦출수록 좋습니다. 경찰 첫 조사는 사건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계이므로 제대로 준비하고 임해야 하며, 필요한 자료를 입수하거나(고소장 등 수사기록 열람, 반박자료 준비 등) 고소인의 입장(왜 고소했는지, 원하는게 무엇인지)을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경찰 수사관 입장에서는 이미 고소인 조사를 마친 후 피의자를 소환하므로, 즉 자신은 준비를 다 마쳤기 때문에 피의자에게 시간을 많이 안 주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사관이 "몇월 며칠에 나오실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직장에서 휴가를 내야 하는데 상사에게 물어봐야 확정이 됩니다. 제가 휴가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내일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사업하시는 분은 출장이 있다는 등 적당히 응용하셔서 즉답할 수 없는 명분을 만드시면 되겠지요.
그리고 나서 적당한 시점을 스스로 생각해본 후, 다음날 연락해 날짜를 조율하면 됩니다. 핵심은 수사관이 처음 제안하는 촉박한 조사시점을 피하는 것입니다. 만약 첫 통화에서 이미 날짜를 정해버렸다면, 다시 전화해서 생업상 출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겼으니 다른 날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자꾸 날짜를 미루면 의심받겠지만, 임의수사 단계이므로 첫 소환에서 생업상의 이유로 한두 번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크게 부담갖지 않아도 됩니다.
대개 경찰에서 연락이 오면 '가서 뭐라고 대답할까'를 고민하기에 급급한데, 조금 시야를 넓혀 상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경찰이 수사 초기부터 고소인(피해자)의 편에 서서 강한 수사의지를 갖고 피고소인을 압박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무리한 고소 제기가 워낙에 많습니다. 민사문제(대여금 등) 해결을 위해 온갖 거짓말을 덧붙여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그러다보니 경찰이 고소장 접수를 그리 반기지 않습니다. 고소장 내용 자체만으로 무리한 고소는 아예 접수를 안 받아주고(법적으로 그럴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원센터에서 "이런 거 고소 안 돼요."라고 핀잔주면 대개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접수를 받더라도 고소인 조사에서 진술이 부정확하다던가, 피해액수가 정리가 안되어 있다던가, 혐의를 의심할만한 다른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경찰의 수사의지는 급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사관도 사람인 이상, '첫 조사에서 피고소인을 만나보고 별 문제 없는 상황같으면 혐의없음으로 가자'라는 마음이 충분히 들겠지요.
즉 일단 고소만 하면 경찰은 어찌되든 고소인편을 들어주겠지 하는 일반인들의 추측과는 달리, 경찰 수사관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안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조사받기 전에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소인이 당신을 고소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기에 죄를 지은 것이 맞는지, 사실관계 또는 법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억울하다고 다투어야 수사관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경찰에서 미리 고소장 보여주는 것을 그리 탐탁치 않아 하기 때문입니다(죄명조차도 잘 안 알려주려고 합니다. 물론 '경찰 수사서류 열람복사에 관한 규칙'에 따라 이론상 피의자의 방어권행사가 가능하기는 합니다만, 현실은 또 다른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서류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소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경우 사안에 따라서는 2차 가해를 하는 것이 되거나 증거인멸의 시도로 오인받아 수사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명 '보복범죄'로 가중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으니 신중해야 하지요.
결국 피고소인은 한정된 자료만으로 첫 조사에 대비하는 부담을 갖는 셈입니다. 따라서 피의자가 결백한지 아닌지를 떠나 일단 사건의 현황 파악 및 전략 수립은 반드시 첫 조사 전에 마련되어야 합니다. 수사와 재판에서는 피의자 내지 고소인의 일관된 진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웹상에 글을 쓰기 전에 해당 주제로 포털 검색을 해봅니다. 다른 변호사들은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혹시 내가 놓치거나 잘못 알았던 점은 없는지 확인도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예전에 수사 입회에 대한 다소 황당한 글을 보았습니다.
외형상으로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경찰 조사에 같이 갔더니 좋았더라는 소비자의 후기(광고일 가능성이 있는)였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혼자 가기 불안해서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해봤더니 동석이 가능하다고 해서 조사날짜와 시간을 알려주고 그날 경찰서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대로 만나서 미리 조사 대응 팁을 간단히 듣고 조사에 같이 들어갔더니 든든하고 좋더라'
조사 당일 경찰서 앞에서 처음 만나다니요! 설마 저렇게 일하는 변호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쓴 광고성 글이기를 바랍니다.
변호인의 입회는 수사 당일 물리적인 동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리 만나서 준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럼 어떻게 준비할까요?
신입변호사 시절에는 예상되는 질문과 답 리스트를 뽑아놓고 제가 수사관의 역할을 하며 의뢰인과 문답을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효과가 영 별로였습니다. 연습 때는 잘 하던 의뢰인이 막상 조사받으러 가면 왜 그렇게 횡설수설하던지요. 내용을 제대로 말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에서는 직책으로 연륜으로 무게잡던 분들이 경찰서 문앞에만 가도 식은땀을 흘립니다.
저는 직업상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미처 몰랐는데, 범죄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죄책 유무와 상관없이 경찰을 만나는 것 자체가 큰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지요.
그래서 지금은 방법을 달리 합니다. 우리가 학생때 공부하던 것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원리를 모르고 예상문제와 답만 외우면, 꼴찌는 안하겠지만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렵지요. 반면 원리를 알고 있으면 교과서와 조금 다른 형식의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잘 풀 수 있습니다.
경찰 조사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면 이렇게 대답하자'만 생각하면, 경찰 조사의 위압감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질문이 조금만 바뀌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되면 패닉에 빠집니다.
따라서 변호인은 피상적인 문답연습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의뢰인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주제파악'하게 해줘야 합니다. 스스로 지은 죄인데 자기가 제일 잘 알지 않겠냐구요?
전혀 그렇지 않더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은 감정(억울해!)과 의지(감옥에 가지 않겠어!)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으며, 형사 사건 의뢰인들은 자신이 선임한 변호인에게조차 솔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무실은 이 '주제파악'에 상당히 공을 들입니다. 다만,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습니다. 두려운 경찰조사에서 "내 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변호사를 찾아 왔다가, 내 말은 하나도 안믿고 말 중간에 다 끊고, 호통치고, 사람 무시하고, 면박주는 "변호사"를 만나게 되실 겁니다.
고백하건대 "무슨 이런 변호사가 다 있어!"하고 박차고 일어나 뛰쳐나간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그렇게 일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 의뢰인이 '원리'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의 동석이 항상 능사는 아닙니다. 변호인의 입회가 수사기관에게 주는 강한 인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변호사를 선임할 정도로 돈이 있는 사람', 다른 하나는 '수사과정에서부터 변호사를 동석시킬 정도로 주도 면밀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피고소인의 주장에 이런 인상과 상반된 내용이 있다면 변호사의 동석이 과연 유리할지도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너무 형편이 어려워 월세랑 병원비 내려고 빌린 것이지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떡하니 사선변호인을 선임했다던가, 세상물정을 너무 몰라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재판에 넘어가서야 부랴부랴 찾는) 변호사를 수사 초기부터 데리고 오면, 수사관은 당연히 피고소인 진술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변호인의 동석이 도움이 되지만, 사안에 따라 주의를 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이런 세부적인 계산 때문에 괜히 혼자 갔다가 피신조서가 불리하게 나와버리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되므로, 뭣이 중한지 득과 실을 잘 따져봐야 하겠지요.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무죄를 주장할 수 없다면, 자백하는 편이 맞습니다. 법과 정의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나중에 양형을 고려할 때도 그렇습니다.
무죄를 주장해 볼 만한 사안에서 괜한 욕심에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해받기 싫다거나, 기소조차 안 되게 빨리 끝내고 싶다는 욕심, 혹은 관련된 민사사건에서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먹혀 들어갈 확률은 극히 낮으며,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결과만 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단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그 사안 뿐만 아니라 피고소인의 전체 주장이 그 진실성을 의심받습니다.
'이것은 거짓이고,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공식적으로는 그리 씁니다만), 그때부터는 '거짓말 하는 나쁜 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사단계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면 기소가 된 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
잘 될 만한 사건이었는데 사소한 거짓말로 일이 망가지면 변호사로서는 정말 답답하지요. 평생 범죄자와 거짓말쟁이들을 상대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 변호사, 경찰, 검사, 판사를 모두 속일 자신이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수사관이 아무 반박 없이 조서에 내 주장을 잘 정리해서 써줬으니 감사하고, 그것으로 잘 된거라구요?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중에 그 조서를 볼 검사와 판사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더이다'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형사사건은 누구나 겁을 먹습니다. 빨간 줄이 그어지고 감옥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혼자서는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충수를 두게 되는 것이지요. 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전략을 미리 걸러내서 막는 것 역시 변호인이 해야 하는 '조력' 중 하나입니다.
글이 길어지니 두 개로 나누어, 다음 (下)편에서는 구체적으로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 주의할 점 및 변호인이 수사 입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력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 경찰조사에 관한여 무진에서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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