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서 사랑으로
나의 걸음에는 목적이 있다. 더욱 나은 삶을 바라는 인간의 허울뿐인 목적론적인 삶은 결국 결과론적이라는 생각에 빠져,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목적은 곡선이 아닌 직선에 놓여 있으리라 믿었고, 내가 가는 길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믿었다. 멈추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나를 더욱 채찍질했다. 그저 길을 걷는 것뿐인데, 왜 나는 쳇바퀴에 올라간 미물마냥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인지.
아픔은 별것이 아니었다. 나의 목적이 있을 곳에 대한 불확신, 나의 걸음의 방향에 대한 상실, 결국 결과를 바라는 나의 오만함. 나의 아픔은 나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가 되었다. 내가 나를 혐오하게 되는 모순 속에서 나는 걸음을 멈출 수도, 더 나아갈 수도 없었다. 나를 옥죄는 연결고리의 아득함은 이 길의 종착역이 어딘지 알 수 없게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이라. 그 길을 걷는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마라톤같이 아무리 긴 코스의 길이라도 끝은 정해져 있다. 그 끝을 모른다는 것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빼앗고, 멈출 수 있는 결단을 파괴한다. 나는 그 길의 중간쯤 서 있다. 그것 또한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 그래도 중간이라도 와 있다는 착각은 나를 숨 쉴 수 있게 했다.
얼마나 또 걸었나. 그러다 문득 이 길은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나의 걸음에 대해 생각하고, 발자국을 바라봤다. 목적이란 결과 하나만을 바라보고 걸음을 재촉했던 나는 이제 다른 템포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은 기록을 목적으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앞이 아닌 주변을 보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에 대한 잔상은 아마 사실인 듯싶었다. 기록의 과정에서 나의 길은 직선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겪었던 아픔의 순간이 곧 회의감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나의 걸음의 목적은 결과가 아닌 걸음 그 자체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아픔보다 즐거움의 순간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그 길에서 만난 풍경, 사람, 그리고 나. 반복되는 거리의 풍경은 혐오로 가득 차 있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삶의 가치는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삶은 레이스가 아닌, 뫼비우스의 띠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