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게 하나도 없던 나도 여기까지 왔다
[프롤로그]
오래전 "서툰 사람들"이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어설픈 도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서툰 사람인데.... 30대가 되면 완벽해지겠지?"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다. 나는 40살이 넘었는데도 서툰 사람이다. 남들이 하는 시기보다 늦게 시작한 일들이 많았고, 배움의 속도 또한 보통 수준이라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다. 강철 같은 멘털의 소유자도 아니기에 자주 흔들리고 남의 말에 상처도 자주 받는다. 브런치를 시작하는 프롤로그 소주제처럼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과거의 내 경험과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인데 지금의 나는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 걸까? "
이 한 줄의 질문이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게 2019년 가을쯤이었다. 벌써 6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게을렀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가장 가치가 큰 일을 고르라면 지금 초4 아들과, 초1 딸의 육아에 집중했던 것과 아직도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사회적인 성장이 더디다고 느꼈지만 병원일을 하면서 사업화를 위한 발판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었으며, 마케팅회사를 만들어 6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또 누군가가 읽었을 때 조금이라도 덜 서툰 글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오늘이 되어있을 뿐이다.
시작하는 글은 특정 주제에 맞춰 쓰기보다 앞으로 연재할 이야기를 위한 아이스브레이킹 느낌으로 써보려 한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던 나도 여기까지 왔다]
스무 살 겨울 어느 날의 새벽이었다. 당시 방송국에서 스태프 일을 마치고 여의도공원 벤치에 앉아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몸을 움직이려고 걷기 시작했다. 그때 버려진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안장이 없었다. 주인에게 버려지고, 누구도 타고 가지 않는 안장 없는 자전거가 꼭 나와 닮아 있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이동해 보려고 앉지도 못한 채 선 자세로 페달을 밟았다. 천천히 달리다 보니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스스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학생 신분과는 완전히 다른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스무 살의 1년은 고작 대학 1학년을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4학년 생 같은 기분이었다. 한강대교를 한참 달린 것 같은데 절반도 지나지 못하던 지점쯤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시려오더니 눈물이 났다. 쌩쌩 달리는 차들이 나의 경쟁자들처럼 느껴졌고 그 옆에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인지했다.
그때 알았다. 앉을 곳이 없어도, 기댈 곳이 없어도 내가 갈 길은 있다는 걸.
이 글은 그 새벽 이후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간다. 빛인 줄 알았던 빚, 스무 살에 신용불량이라는 이름표, 멘토의 짧은 한마디가 내 안의 엔진에 불을 붙이던 순간, “이길래? 질래?”라는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이기는 쪽을 고른 날, 그리고 가족과 일 앞에서 서툴지만 작은 약속을 지켜보며 배운 믿음의 기술에 관해 쓴 기록이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그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페달을 밟으며 내가 깨달은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깨달음이 늦지만 빨리 깨달은 부분도 있다. 믿음은 한 번의 선언이 아니라 여러 번의 선택이라는 것을. 약속 시간에 맞추는 일,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일, 내 몫의 일을 제대로 마치는 일. 그 사소한 행동들이 겹치며 신뢰는 단번이 아니라 계속 누적된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알지도 못하고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일을 마치 거창한 비법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기는 싫다.
살면서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섰다. 부동산 실패와 두려움, 산후우울을 함께 견디던 밤, 도망치고 싶던 일터. 그때마다 나를 일으킨 건 큰 용기가 아니라 하루치 용기였다. 오늘 한 걸음, 오늘 한 문장, 오늘 한 약속. 작은 디딤돌을 놓다 보니 어느 날 나만의 좁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의 아내는 집에 있을 땐 늘어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멈춰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대신 일터에서는 똑순이다. 가끔 내가 집에서도 일을 하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나도 농담처럼 "배가 불러서 그런 소리 하는 거야"라고 대답을 하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에 에너지를 쓰기 위해 기를 모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신뢰’는 사람 사이에서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먼저 나와 나 사이에서 시작되더라. “나는 오늘도 나를 믿는다.” 나 자신을 먼저 믿어야 사람들도 조금씩 나를 믿어 주기 시작한다. 믿음은 바깥에서 채워 넣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는 것임을, 나는 내 짧은 삶의 경험으로 배웠다.
20대의 나는 주변 사람들을 참 많이도 붙잡아댔다. 그러나 이제 나는 누군가를 붙잡는 사람이 되기보다 누구나 머물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해수욕장의 모래처럼, 너무 세게 움켜쥘수록 더 잘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다. 관계도, 돈도, 명성도. 잡으려 애쓰기보다 머무를 이유가 되는 사람이 되자고, 매일 다짐한다.
겨울의 끝에서 맡아지는 새벽의 봄 냄새, 비가 갠 뒤의 풀 냄새가 내게 그렇듯, 나의 문장이 언젠가 당신의 어느 새벽에 떠오르는 온도가 되면 좋겠다. 안장이 없어도 우리는 갈 수 있다. 울음과 숨, 멈춤과 출발이 뒤섞인 채로. 오늘도 나는 서서 페달을 밟는다.
이 글의 어느 부분에서든 당신의 문장을 하나 발견한다면 그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 문장이 당신 안에서 하루치 용기가 되어, 오늘의 페달을 한 번 더 밟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