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선물

상상도 못 했던 방향이 시작되었다

by 로건리

나의 대학교 1학년 시절은 정말 뜨겁고 축제의 연속이었다.

예술대학이라 그런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뜨거웠고, MT는 달궈진 쇠 같았으며, 2002 월드컵이 열린 초여름 절정에 다다랐다.

전공이 성악이라 매일 노래 연습에 매달렸고, 나의 소리를 찾기 위해 셀 수 없이 목이 쉬었다.


친한 친구들은 나의 부전공이 알코올이라고 했다. 매일 자취방으로 찾아오는 선배, 동기들의 명목은 음악에 대한 토론과 합주를 위한 회의였지만 실제로는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의 연속이었다.

그 해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 매일 같은 반복이었다.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자취를 하는데 부유한 집 자식이 아니다 보니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월드컵을 앞두고 내 몸은 더 버티지 못했다. 심각한 병은 아니고 술병이 난 것이었다. 몸이 너무 아팠다.

심한 독감이 걸린 것처럼 온몸에 힘도 없고 근육통이 심했다. 덕분에 내 방에 더 이상 선배와 동기들이 오지 않았다.

계획에 없던 일들로 대학 1학년의 3개월을 채우다 보니 월드컵이 시작되었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열광했다.

16강, 8강, 4강까지의 경기를 각자 가능한 공간에서 응원했다. 나도 광화문, 대학로, 대형 호프집을 옮겨 다니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는 동안 그늘도 없는 곳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2학기를 준비했다.

2학기는 상대적으로 잔잔하게 지나갔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노래 연습에 매진했고, 명절을 보내고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겨울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2학년 생활을 학업에 집중하고 싶었다. 편입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교수님은 편입 이후 유학도 제안하셨다.


학기가 끝났으니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평일과 주말을 나눠 2가지의 일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은행에서 발급받은 채권을 법무사 사무실에 배달하는 일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시내를 이동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주말에는 여름에 일했던 쇼핑몰 주차수신호 일을 했다. 여름엔 그늘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겨울이 되니 구두 안으로 얼음조각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도 노는 걸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들이 연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같이 놀자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오직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첫 월급 100여만 원을 받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다.








[스무 살의 선물 1탄]


앞서 나는 부유한 집 자식이 아니라고 표현했지만 굉장히 고급지게 포장한 문장이다.

당시 아버지와 새엄마는 노점에서 장사를 하는 상황이었고, 다세대주택 12평짜리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월세가 무려 3개월치나 밀려있었고, 새엄마는 휴대폰이 끊기기 직전이라고 툴툴거렸다.

다른 것보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낮에 혼자 계신 할머니가 주인집 할머니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장 주인집에 올라가 호기롭게 3개월치 월세 90만 원을 내고 할머니 괴롭히지 마시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새엄마의 밀린 휴대폰요금도….

무언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에 분노할 기운조차 없었다.

텅 빈 지갑을 보는데 내 인생 전반에 걸친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스무 살의 선물 2탄]


다음날 출근길에 지하철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 교통카드를 대는 순간 당황했다.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현금으로 버스를 타고, 현금으로 지하철 표를 사서 출근을 했다.

매일 일 때문에 하루에도 수 차례 방문하던 은행 직원분께 교통카드가 안된다며 카드를 내밀었다.

한참을 확인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그분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혹시…. 어디서 돈 빌린 거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빌린 기억이 없었다. 누가 나 몰래 내 이름으로 돈을 빌렸나? 보증을 선 적이 있었나?

머리가 복잡해지던 순간.


“ㅇㅇ캐피털“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대학 등록금과 자취방 비용으로 사용하려고 학기 초에 받았던 학자금대출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때 직원분의 쐐기를 박는 아픈 말이 들려왔다.


“신용불량으로 등록이 되어있는데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동안 상환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대학교 2학년의 꿈은 접기로 결정했다.









[상상도 못 했던 방향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학비와 자취방 비용은 1000만 원 정도 썼다.

하지만 집에서 장사 밑천 등의 이유로 쓴 돈이 있었고 내 명의로 갚아야 할 돈은 5100만 원이었다.

당시 최저 시급은 3천 원. 헛웃음만 나왔다.

밥은 집에서 대충 먹고 친구 안 만나고 연애도 안 하고 군것질 안 하고 휴대폰도 버리고

하루 12시간씩 31일 중 30일을 일하면 47.2개월 만에 갚을 수 있는 금액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시급을 올리고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상환기간을 줄일 수 있었다.

벼룩시장, 교차로 등의 지역 광고신문부터 온라인 채용플랫폼을 뒤지고 뒤졌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광고하는 건 대부분이 다단계회사였고, 영업직으로 실적을 내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런데 나는 영업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안 되는 데 노력을 쏟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쪽에 시간투자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여름방학 때 잠시 해봤던 드라마 스태프 구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지방, 해외촬영처럼 숙박기간이 포함되면 페이가 썩 나쁘지 않았다.

여의도 사무실에 가서 면접을 보고 어떤 드라마에 연출부 보조로 일을 받았다.

서울 시내에서 한나절 일하는 건 금액이 적었지만 야간촬영이나 12시를 넘기면 10만 원 가까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나절만 하는 촬영팀만 배정을 받았고, 일이 매일 들어오지도 않았다.

점점 초조해져서 지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돈이 필요해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계속 졸랐다.

좋은 친구들, 강호동의 천생연분, 솔로몬의 선택, 야인시대, 태양의 남쪽, 올인….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으니 이쯤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바로 군대 문제였다.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군대는 빨리 갔다 오는 게 좋아”


나도 안다. 몰라서 그때까지 안 가고 있었던 게 아니다.

내가 갚아야 할 5100만 원 중 원금은 3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나머지가 이자인데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사회에 돌아오면 나는 20대 중반의 5100만 원 빚이 있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 입대할 수는 없었다.









나는 살면서 중요한 지점에 늘 귀인을 만났다.

사회생활의 경험도, 경제에 대한 지식도 없던 나에게 관련 지식과 경험이 있는 형, 누나들을 만나게 해 주신 건 신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일터에서 잠시 스쳐간 인연임에도 나에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게 신용회복제도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 또 한 번 깨달았다.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신용회복제도는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상환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보니 직장과 고정수입이 기본 요건이었다.

나처럼 알바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니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또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던 것이다.

인생을 길게 늘여놓고 생각해 보니 그 돈을 갚는다고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생각을 하려고 하면 빚독촉에 초조해지고,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다 보면 내가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군문제와 경제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부사관 지원을 선택했다.


해군부사관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육군부사관 시험에 8번이나 떨어졌다. 대학도 한 번에 입학했는데 군대가 더 어렵더라.

나이가 늘어갈수록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기회도 잡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입대 전 날 나에겐 엄마였던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또 여섯 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도 처음으로 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쿨하게 진해로 내려갔다. 내 인생의 막을 나눌 수 있다면 오늘 1막 1장의 막을 내리기로 결심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며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동안 나와 엮여있는 가족이나 친구,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내 선택지의 장애물로 설정하고 살았었구나.

내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늘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왔구나.


갑자기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멋진 미래도 지금의 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내가 나를 방치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대로 눈 감았다 뜨면 이 세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부터, 그러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그러다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아주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아침 일찍 해군부사관학교로 향했다. 인파가 상당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동기들, 여자친구와 아쉬워하는 동기들,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동기들…

그 수백만 군중 사이에 혼자 서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서글펐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날이었으니까.


내가 2막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일까?

실제로 그때부터 다른 삶이 펼쳐졌다.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