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없었다. 그러나 후진도 없었다.
방송국에서 드라마 제작팀 스태프로 일하면서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출퇴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반팔을 입으면 약간 추운 느낌이지만 낮에는 시원한 계절. 밤이 되면 시원함보다 쌀쌀함이 느껴지는 상쾌한 온도의 공기. 2003년 가을이 겨울을 준비하던 어느 날 새벽, 나는 첫 차를 기다리며 공원 벤치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노숙자 같기도 하고 남자인 것 같고 나이는 꽤 많아보였다.
그는 내가 있는 근처를 서성거리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말을 하는건지, 혼잣말을 하는건지, 노래를 흥얼거리는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그 벤치는 내 자리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조용히 벤치에서 일어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공원을 걷던 도중 버려진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쌀쌀한데 저거라도 타고 조금이라도 이동해야겠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양이 이상했다.
앉을 수도 없는 자전거는 꼭 세상에게 버림받은 그때의 내 모습과 닮아있었다. 선 채로 페달을 밟으며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보니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 한 켠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스무살에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부터 세상이 나를 '불량품'이라고 부를 것만 같아 내가 먼저 나를 깎아내렸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건 이번 생에 끝났고, 결혼은 커녕 연애도 못하고 죽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웃긴 건 서점은 자주 갔는데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말도 안되는 희망고문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스스로 자학하고, 자존감은 없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사람이 나라고 여기던 시기였다.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말할 사람도, 기댈 곳도 없이 외로운 시간과 한강 다리 위 공간이 만나 한참을 울었다.
그 새벽은 내게 너무도 처량했지만, 그 울음이 내게 처음 찾아온 희망의 시작이었다.
신기하게도 울고 나니 조금은 속이 후련해졌다. 그리고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새벽, 내 안에서 어떤 직감이 또렷하게 일어났다.
‘지금 이 시간들이, 언젠가 분명 나를 위한 재료가 될 거야.’
언제가 될지, 어디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조용하게 내 안에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촬영이 새벽에 끝나는 날이면 첫차를 기다려 버스를 탔다.
잠이 부족한 탓에 종점까지 가서도 내리지 못하고,
또다시 잠들어 반대편 종점까지 왕복하기도 했다.
깨어 있는 시간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시간을 흘려보내며 그저 그 곳에 앉아있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그 낯선 공간이 그땐 오히려 편안했다.
출근시간의 북적이는 사람들..
9시가 지나면 서서히 한산해지는 버스 안.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햇빛에 반사된 창밖 풍경,
그 모든 것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작고 분명한 신호 같았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스펙을 쌓기 시작했고,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2학년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나도 조급한 마음에 무언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격도 없으면서 공모전 사이트를 기웃거리던 날이 있었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영어 학원 상담을 받으러 종로를 헤맸다. 무슨 자격증이든 일단 따두면 좋을까 싶어 정보들을 뒤적이던 그때...
“이 자격증 하나면 방송국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그땐 무언가라도 붙잡고 싶었다.
“샘플만 받아보는 건 무료입니다.”
그 말에 혹해 상담을 받았고,
며칠 뒤 100만원이 넘는 고지서와 함께 교재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의미 없던 데는 돈을 썼으면서, 진짜 나를 바꿔줄지도 몰랐던 기회?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88만 원이 없어서 포기했다.
누군가는
“며칠만 친구나 친척한테 빌리면 되잖아”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뭘 해도 안 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느꼈던 건 단 하나였다.
‘세상은 참 냉정하구나.’
의욕은 금세 식었고, 나는 또다시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이력서에 적을 경험이 넘쳐나는데,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 안에 채울 만한 경력이나 활동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은 점점 작아졌고, 세상은 점점 거대하게 느껴졌다.
희망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었다.
하지만 후진을 해본 적도 없었기에..
긴 터널을 지나던 도중 멀리 보이는 출구의 빛을 발견한 순간처럼.
정신 없이 두드려 맞던 도중 잠시 눈을 떠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처럼.
학창 시절 운동회의 오래달리기 결승선을 설치하는 선생님을 발견했을 때처럼.
당장 무언가 해결이 된 건 아니지만 결국 살아서 지나갈거라는 믿음이 시작된 지점들이 이어져 지금까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