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겨보기로 결정한 순간
매일같이 일을 해도 손에 남는 게 없었던 2003년.
생활비에 쫓기고, 가불과 독촉에 허덕이다 보니, 휴대폰 요금 3만 원을 밀리는 일도 익숙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용돈 삼아 쓰는 또래 친구들이 부럽기도, 때로는 미웠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 처지가 그런 감정을 자아냈다.
그렇게 방황하며 빚을 갚기 위한 돈벌이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살던 어느날,
서울은행 지점장으로 은퇴 후 개인사업을 하던 ‘나사장님’을 만났다.
바다 한가운데 표류 중이던 내게 작은 불빛을 비춰준 등대 같은 존재였다.
그분이 하시던 일은 법무사 사무실에서 필요한 채권 등의 서류를 등기소로 배달하는 일이었다.
대기 시간은 대부분 사무실이나 은행 창구 안. 이전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보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내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어느 날 나사장님이 물으셨다.
“지금이라도 공부 다시 해보는 건 어떠냐. 제대로 된 대학, 가볼 수 있지 않겠니?”
그 말에 가슴이 뛰었지만, 동시에 현실이 스쳐갔다.
입시 준비엔 돈이 들고, 합격해도 등록금이 걱정이었다.
모든 걸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딱 1년만 눈 딱 감고 공부를 해봐.
지금 상황에 매몰되면 , 계속 그 근처에 머무는 거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이 영 없는건 아닐텐데...
학비는 장학금 받는 걸 목표로 해봐.
너의 앞길이 달라질 수 있어.”
그 말은 내 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꿈’이라는 감정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를 완전히 멈춰 세운 한마디.
“결정은 네 몫이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기엔 너무 아깝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 순간, 내 삶이 아깝다고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짧은 한 문장이, 내 꿈의 엔진에 불을 지폈다.
내가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은 그 말 한마디
그날 이후, 나사장님의 말은 자주 떠올랐다.
“너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기엔 너무 아깝다.”
그건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내 가능성을 누군가 처음 알아봐 준 순간이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누군가 내게 시간을 내주고, 조언을 해주고, 기대를 담은 시선을 건넸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작지만 단단한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나는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위로 한마디부터.
“괜찮아, 내가 못하는건 처음이라 지금은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난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야.”
그 말들을 중얼거릴때마다 내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사촌동생이 말했다.
“형은 제 롤모델이에요.”
감격을 넘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랫동안 내 꿈의 엔진을 힘차게 돌려주던 말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늘 그의 롤모델이고 싶은 욕심마저 생겼다.
그런 사촌 동생은 몇 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충격은 꽤 오래 남았다.
한참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고 어떤 생각은 머리에 남기도 했다.
누군가가 보내주는 믿음은 나를 붙잡는 힘이 되기도,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
돌아보면 내 삶엔 언제나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진심이 담긴 말과 시선들이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마음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시작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 한마디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싶은 어른으로 나를 바꿔놓았다.
관계 하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진 않는다.
하지만 모든 변화의 시작엔 관계가 있었다.
누군가의 한마디, 의외의 제안, 생각지도 못한 기회.
그 중심엔 늘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인간관계가 버거워 혼자 버텨보려 했다.
“내가 혼자 해낸다”는 자존심이 생존법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한살씩 쌓아가며 더 깊게 느낀다.
"혼자 버틸 수는 있어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건 어렵다는 걸"
내가 무너질 때 손 내밀어준 사람,
막막할 때 “내가 아는 사장님이 있는데…”라며 기회를 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목욕탕 관리하는 일을 하던 때였다.
매주 탕을 대청소해야 했고, 강한 약품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맵기도 했다.
매번 도망치고 싶었다.
정말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마음속에서 수백 번은 접었다 폈다.
결국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 한 날.
그때 함께 일하던 해병대 출신 형이 말했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그건 네가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힘든거야.
사람은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힘들어지는거야.
이걸 견뎌내면 군대 가서도 그리 힘들지 않을 거고, 포기하면 군대 가서 더 힘들거야.”
그 말은 마치 도전처럼 들렸다.
“이길래? 질래?”라는 묵직한 질문이 내 안에 울렸다.
이상하게 그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매번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에 건네받은 진심.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나는 늘 지는 쪽을 선택해왔다는 사실을.
힘들면 돌아서고, 버거우면 포기하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어쩌면 처음으로 이기는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작은 승리가 내 안에 있던 패배주의 사고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늘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길래? 질래?” 처음으로 이겨보기로 했다.
훗날,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며 직장일을 병행하고,
동시에 사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을 때도 나는 그때의 기억을 자주 떠올렸다.
하루하루 눈앞의 작은 성공을 쌓아 올리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묻는다.
“그 많은 일을 진짜 다 해본 거 맞아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어요?”
사실 사업도 처음부터 전업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은 매일처럼 일어났고,
계획한 대로 진도가 나가는 날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건,
20대 시절,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이겨보는 선택을 해본 경험 덕분이었다.
그 작은 승리의 기억은 내 안에 ‘나는 해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고,
그 믿음은 지금껏 내 삶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이기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그 결심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그 결심이 작은 승리를 만들고,
그 승리가 다음을 이기게 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이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