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나였으면 좋겠다

선택을 기다리던 입장에서 벗어나다

by 로건리

지방 예술대학 출신.

자격증 없음.

취업을 위한 준비 전혀 하지 않음.

집안의 지원 불가능.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애초부터 어딘가에 취업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대신 나는 스펙이 없다는 인식보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프레임을 짜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꺼리는 일을 먼저 나서서 처리하고, 남들이 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더 하려고 노력했다.

정시 퇴근은 내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알바 경험은 어떤 일을 하든 제로베이스보다 조금은 높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살려보기로 했다.


늘 이력서를 제출하면 좋은 기업에서는 광탈의 연속이었다.

나를 찾는 곳은 신생 다단계 회사나 보험회사가 대부분이었다.

씁쓸한 마음을 감추며 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했던 문장이 있었다.


"다음에는 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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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껏 다음 이력서를 쓰던 이십대 후반의 어는 날이었다.

신용회복을 위한 해군부사관 입대, 그리고 대학 졸업은 아무런 준비없이 나를 30대 코 앞에 가져다두었다.

빛인 줄 알고 달려들었더니 빚이었던 상황의 연속이었다.


친척 분이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만들고 있던 한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나를 만나는 친구들, 형, 누나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한테 보험 가입하라고 하면 안된다."


"왜 벌써부터 그런 일을 하려고 하냐? 오래 일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야지!"


"보험 시작하면 나는 인연 끊는다."


난 그때까지 입사만 했을 뿐, 정식 교육 기간이 시작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해지는 게 참 슬펐다.


보험회사 교육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익했다.

꼭 보험 영업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며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이 많았다.

교육 기간 중 동기들과 경쟁하는 미션도 있었고, 동기들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나는 이 기간에도 주말에는 돌잔치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무대가 주어지는 게 너무 설렜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주제일지 모르겠지만 발표도 재미있게 잘 해냈다.

덕분에 동기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강하게 남았다.


사람의 일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교육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이제 재미있는 내용은 거의 마무리가 되고 실전을 위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구에게 영업을 해야하고,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을 누구에게 알린단말인가....


그때 전화 한 통이 울렸다.






해군 부사관으로 동해에서 같이 근무했던 군의관 형이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가끔 식사도 같이 하고, 차도 마시며 동네 형 동생처럼 만나는 일이 많았다.

그날도 별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잘 계십니까?"


"나야 잘 있지. 너는 요새 뭐하고 지내냐?"


"저 보험회사 들어와서 교육받고 있어요."


"갑자기 왠 보험회사?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텐데"


"제가 뭐 쉬운 일 할 수 있는 스펙은 아니잖아요."


"그건 누구나 다 그렇긴한데, 길게 말할 거 없고 요점만 말할게."


뭔지 모를 설레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희망이라고 해야할까?

혹시 병원을 개원하셔서 취업 기회가 생기는걸까?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 형의 말이 이어졌다.


"형이 병원을 인수했는데 너 여기와서 형 일좀 도와라. 내가 동해 있을 때도 말했었지?

언젠가 내가 병원을 하게 되면 너 부를거라고, 거기는 빨리 정리하고 올 수 있겠어?"


"네. 여기야 뭐 교육기간이니까..."


"언제 올래?"


"내일 갈게요."


약간 당황한 듯 형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여기가 부산이야. 서울 생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그냥 내일 갈게요."


"그렇게 빨리 올 수 있겠어?"


"정리는 주말에 오며가며 해도 되고 일단 내일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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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위치가 어디인지, 병원의 상황은 어떤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같은 팀에서 업무 정리중이던 친척분에게 말씀드렸다.

교육 기간 중 나에 대한 평가가 좋은데 아쉬워하셨다.

교육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필드에 나가서 내가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고맙게도 진심으로 응원해주시며 나중에라도 병원에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운 상황이 다시 찾아오면 언제든 다시 오라는 말까지 해주셨다.


동기들에게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하고 짧은 회식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의정부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이 곳을 떠나는 걸 인생 첫 번째 목표로 설정했다.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고, 일을 하며 내 눈에 비친 서울은 에너지가 달랐다.

나는 그런 에너지를 받으면서 일하고 싶었다.


물론 대학도, 군대도 타 지역에 있기는 했지만 내 삶의 터전을 서울에 두고 싶었다.

서울이 힘들다면 적어도 의정부만큼은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부산이라는 도시와의 갑작스러운 인연이 생겼다.

휴대폰으로 의정부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찾아보니 400km가 넘었다.

살면서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귀가하던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집 앞에 있는 작은 렌트카 회사에 가서 차 한대를 렌트했다.

부산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중간 중간 내가 보험회사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한 지인들도 있었는데 병원에 일하러 간다고 하니 자신들이 더 좋아했다. 네비게이션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어떤 목표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조금은 생소한 부산의 건물과 분위기가 신기했다.

광안대교를 건너는데 판타지 영화속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다른 지역에서 드라마틱하게 새출발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안장도 없는 버려진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어느 새벽의 내 어린 모습과 지금 내 차는 아니지만 중형차를 몰고 광안대교를 달리며 병원에서 일 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잠시 취했었다.


나의 이번생은 빛은 한줄기도 없고 빚만 가득한 삶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만큼은 빚인 줄 알았던 내 인생에 강렬한 빛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누군지 물어보는 직원들의 나를 보는 눈빛은 아름다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사이로 어색하게 인사하며 나오는 원무부장님과 면접 아닌 면접을 진행했다.

굳이 왜 먼곳에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곧 문닫을 병원에 정리하러 온 것인지도 물어봤다.

개인 병원 치고는 꽤 규모가 컸고, 지나다니는 환자도 많아보였다.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원장님이 된 군의관 형은 원무부장에게 나를 소개하며 병원 구경을 시켜주라고 했다.

구식 인테리어에 오래된 병원이지만 위치도 대로변에 있고, 직원들도 많았으며, 내가 일하게 될 사무실도 확인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에... 내가 혼자만의 사무실을 쓰게 되다니!"


병원 진료가 끝나고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원장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앞으로의 포부와 병원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데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꼭 그게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만들어 가보고 싶다는 나의 포부도 밝혔다.

다시 부산에 내려오는 날은 나의 입사날이었다.




그 사이에 돌잔치 사회 보는 일을 정리해야했다.


그게 알바로 잠깐 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몇 군데 컨벤션쪽에서 고정 사회자로 나를 지목해주신 덕분에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어왔던 감사한 곳이 있었는데 정리를 하려니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컨벤션 담당자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사정을 설명하며 인사를 마쳤다.

담당자분들은 그동안 내가 맡으면서 행사 건수가 많아졌고, 부모님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칭찬하셨다.


돌잔치 사회자 일은 나에게도 의미가 컸다.

당시 나는 연애도 쉽지 않아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지만,

언젠가.. 혹시라도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건강하고 잘 컸으면 좋겠다는 상상은 했었다. 그래서 먼저 세상에 찾아 온 아이들의 첫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이어갈 수 있다면 건수와 상관없이 완전히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사회자들이 춤도 추고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내 진행 스타일은 부산과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짧은 돌잔치 사회자의 시간은 끝이 났다.






어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일을 거창하게 이야기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다음에는 나였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작성하던 수십장의 이력서들.

그 이력서와는 상관없이 찾아온 기회, 그 순간을 인연으로 만든 나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에 의미가 아주 크다.


다음에는 내가 선택받길 바라는 시점은 일의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며 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규 고객의 유입은 마케팅으로 어찌어찌 발생시킬 수 있지만, 재방문 및 단골 고객이 되는 것은 내부 직원과 운영자의 능력이라는 것을.



지금은 부족하지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누군가의 "나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자리에 도착했지만,

나는 아직도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










"다음에도 나였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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