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사이즈를 다시 재는 나이

낡은 옷을 버리며 시작된 나의 이야기

by 로건리

[맞지 않는 옷을 벗다]


“이 옷은 이제 버릴 때 되지 않았어?“


대청소를 할 때마다 들리는 아내의 전속 멘트에 나는 대답한다.


“그건 나 군대있을 때 처음으로 10만원 넘게 주고 산 옷이야”


아내의 한숨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나는 숨을 죽인다.

그 옷은 단순히 오래된 헌 옷이 아니었다.

나의 한 시절을 의미하는 옷이었다.


“자기 군대 있을때가 언젠데 자꾸 군대 타령이야.

살쪄서 맞지도 않는구만 자꾸 물건에다가 의미 부여하지마!”


그 옷에는 내 20대의 서툼과 어설픔이 묻어있었다.

사실 그 옷은 이제 나와 맞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그 시절의 나를 버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스물 다섯살 때 육이오사변이 일어났어.

근데 그게 매칠 안지난거 같은데 내가 벌써 구십이니 시간이 을마나 빠른거니”


그때는 웃으며 듣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며 깔깔거렸었다.

지금은 그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20대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은 느낌이다.

내 스스로도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아내는 우스겟 소리로 정신 연령은 초4 아들이 나보다 높은 것 같고, 초1 따님은 우리보다 정신 연령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반박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 학교 운동회나 교회 체육 행사를 할 때면 청춘의 기분으로 참가하곤 한다.

그러나 몇 발 못가서 꼭 다친다. 그렇다고 내 몸이 늙은 것은 아니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몸을 20대의 몸이라고 착각하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이제는 알겠다.

때로는 낡은 옷을 버려야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번 대청소 때, 오래된 물건들과 옷을 2톤 넘게 버리며 다짐했다.


"이제 나에게 맞는 옷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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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는 관계의 무게]


살면서 맞지 않는 옷은 옷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도, 마음의 옷이 있다.

그 옷이 나에게 너무 크거나 작을 때, 색상이 어색할 때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나는 36곳의 일터를 거쳤다.

치킨집, 호프집, 신문대리점, 건설현장, 사료가게, 방송국, 목욕탕, 냉면집, 백화점, 대형마트, 분식집, 채권사, 방송국, 병원, 광고회사, 보험회사, 다단계회사 등등등...

일의 종류만 20가지가 넘었다.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했다.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처음인데도 잘한다며 칭찬을 들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왜이렇게 느리냐, 일머리가 없냐, 말귀를 못알아듣냐....

심지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다시 도전해봐도 욕을 먹는 일이 있었다.


그땐 내가 부족해서, 그 사람들이 이상해서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단지 나와 일의 핏이 맞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사람에게는 주어지는 기본 능력치가 존재한다.

물론 노력을 통해 어느 수준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 능력치가 높은 쪽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어떤 선수는 빠른 발을 활용해 외야수로 이름을 알린다.

어떤 선수는 정확한 제구로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다.

나도 취미로 잠시 야구를 한 적이 있다.

홈런도 치고 싶고 도루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단 타격 능력이 영 꽝이었고, 도루를 도전했다가 근육이 뭉쳐 경기에서 빠져야 했다.

대신 던지는 능력이 타격보다 좋았다.


RPG게임 역시 비슷하다.

나는 힘 좋은 근접딜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낮은 체력과 약한 방어력, 그리고 약한 공격력을 가진 나에게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 옆에서 회복시켜주는 힐러 역할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나의 캐릭터를 인정하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일의 연관성도 없고 질서도 없이 닥치는대로 들이댔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맞지 않는 일은 끝내 맞지 않는거였다.


사람이 인정을 하기까지는 어려워도 인정하고 나면 참 편하다.

비록 내가 택한 일이 힘든 일이더라도 나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편안하다.


직업 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스무살 무렵엔 만나는 사람들이 다 좋아보였다.

학창시절 만났던 아이들과 다르게 나를 인정해주고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니 세상엔 입만 웃는 사람도 많았다.

표정은 웃지만 마음은 닫혀 있는 사람들, 진심을 꺼내면 오히려 불편해지는 사람들..


특히 병원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며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법적으로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된다고 말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기보다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은 자꾸 부딪혔다.


결국 나는 병원 컨설팅 사업의 세계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돈을 조금 적게 벌더라도 나에게 어울리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5년의 시간동안 잃은 것도 많지만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컨설팅 업계의 사람들이 나를 아무리 욕하고 다녀도 그들의 말보다 나의 그동안의 모습을 더 신뢰해주시는 분들. 그걸로 됐다.




[세상이 만든 옷을 입고 내가 만든 길을 걸어간다]


남이 만들어 둔 세상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 세상은 그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면 결국 어딘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한때 나의 좌우명이었던 말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내가 머물 절을 새로 짓자."


누군가의 방식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대신, 내 방식으로 세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세상이 만든 옷을 입더라도 내가 만든 길을 걸어간다면 나만의 맞춤 옷이 된다.


물론 이 말이 성립되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졌다.

외롭고 힘든 순간이 계속 반복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이 필요하고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업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이후 5년간 사업은 크게 키우지 못했다.

하지만 나를 선장이라고 부르는 나의 파트너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나는 진심, 그리고 신뢰력이 속도는 느릴 수도 있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는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속일 수 있다면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그 길은 투박한 비포장 도로다.

그래도 괜찮다.

나와 우리가 함께 만드는 길일테니까.





안장없는 자전거를 연재하며 너무 과거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급하게 적어보는 현재 시점의 11화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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