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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중독자들의 최후

by 로건리

교회에서 구역 모임을 가졌다.

40대 후반의 부목사님 부부.

50대 후반의 구역장님 부부.

70대 초반의 집사님 부부.

그리고 40대 초중반의 우리 부부와 아이들.


어느 순간 모임의 주제는 건강을 향한다.

특히 어제 대화의 주제는 정신건강? 뇌건강?

부목사님의 말씀이었다.


"저는 요즘 담임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실 때마다 머리가 하얗게 됩니다.

뭐라 뭐라 한참 말씀하시는데 그 자리가 끝나고 나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나지가 않아요.

이건 왜 그런 걸까요?"


의료인인 아내가 말했다.


"어? 그거 선택적 기억장애 아니에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모두가 한참을 웃고 난 뒤 70대 집사님의 사모님이 말씀을 이어갔다.


"근데 이게 웃을 일이 아이다.

내는 얼마 전에 며느리가 아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 기억도 안 나는 거라.

그래가 며느리한테 '아가 임신했다고 했나?'

이런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이가."


50대 후반의 구역장님도 비슷한 경험담을 이어가셨다.

모두의 경험담을 들으며 남일 같지가 않았다.

사실 나도 그런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




나는 30대 후반까지의 기억은 굉장히 생생하다.

어제저녁 메뉴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더 먼 과거로 갈수록 기억의 거리감이 훨씬 가깝다.


그런데 아이들 학원 일정, 아내의 점심 약속은 몇 번을 묻고 또 묻는다.

심지어 나의 출장 일정마저도 가끔씩 기억을 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 한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생전 처음 듣는 말이다.


심각하다고 느낀 건 그 일정을 내가 잡은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과거의 기억을 비워야 새로운 기억이 저장된다는 아내의 말을 반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거 기억은 자꾸 떠오르고 브런치의 소재로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과거 기억은 왜 비워지지 않는 걸까?


해답은 알고 있다.

뇌의 휴식을 주지 못해 과부하가 걸린 것!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개그우먼 박미선 님이

자신은 취미라고 생각해서 취미활동을 하고,

여행을 다녔지만 그건 쉼이 아니라 계속 일을 하고 있었던 거라는 말.

그래서 지금 몰아서 쉬는 중이고 쉼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때 명상센터를 다녀보기도 했고,

여행을 가서 머리를 식히겠다고도 해봤지만,

그 역시 하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 브런치에 새로 연재 중인 유혜성 작가님의 [멍 때리지만 멍하진 않습니다]

이 작품이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내용이었다.
굳이 시간 내서 뇌에 휴식을 제공하기보다는 신호등 걸렸을 때 몇십 초, 카페에서 커피멍 5분,

사소한 일상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습관처럼 가져보는 것!




나는 2017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었다.

지금은 그 채널을 종료했지만 아들의 성장 모습을 담은 키즈채널이었다.

당시에는 키즈 채널이 흥했기 때문에 재미있게 촬영하고 편집했었다.

그런데 백만 채널, 천만 채널의 포맷을 카피하는 유저들이 늘어나면서

영상의 템포는 점점 빨라졌다.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기술적으로 가능은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 속도대로 촬영하고, 편집을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그 채널은 망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채널을 만들고 망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빨라지는 영상의 템포를 느껴왔다.


지금은 영상제작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고객의 니즈에 맞춰 빠른 템포의 영상을 의뢰한다면 제작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멍을 때리며,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시작된 이야기.


"요즘 숏츠나 릴스 보면 엄청 빠른 템포에 짧은 영상들이 트렌드인데 빠른 속도에는 한계가 있을 거 아냐?"


"그렇지, 사람 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여야 하니까."


"그래서 릴스나 쇼츠에 중독된 세상에서 이 도파민 중독이 최후를 맞이하면 그때는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게 될 것 같아?"


"음.. 오히려 클래식한 스타일의 느린 템포로 가지 않을까?"


사실 정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숏폼 영상이 사람의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사실인지 과학적으로 내가 직접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내 머리에 퓨즈가 나가는 증상이 숏폼 등 빠른 템포의 영상을 많이 접한 이후 시작되었다는 것.

업무적으로 트렌드를 확인은 해야 하기 때문에 숏폼 영상을 완전히 끊어내기는 어렵다.

대신 멍 때리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면서 도파민에 중독된 나의 뇌에게 회복시간을 더 많이 주려고 한다.


빨라진 템포만큼이나 뇌를 혹사하는 또 한 가지 원인은 멀티태스킹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멀티태스킹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저 병원에서 처리할 업무들을 순서대로 해치우면 그만이었다.

병원에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서 나의 일과 알파 범위의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나의 사업을 만들기 위해 병원일과 사업 준비를 할 때부터 멀티태스킹은 내 머리의 한계를 시험하곤 했다.


병원을 퇴사하고, 매일 출근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이 요즘 뭐 하냐고 물으면 백수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지금 브런치 글을 쓰는 동안에도

채널 기획안과 다음 달 대만 출장 촬영콘티를 띄워놓고 고민 중이었다는 사실을

지금 인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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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는 처방전.



1. 한 번에 하나만 집중하자.

2.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을 늘리자.

3. 1번과 2번을 반복해서 습관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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