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 VS 디지털 시대 VS "AI" 시대
주택가 골목길.
오락실.
그리고 슈퍼마켙(우리집 앞 간판은 ㅌ 받침이었다).
90년대.
나의 학창시절의 단촐한 무대를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그시절 간단한 품목은 대부분 슈퍼마켙을 애용했다.
도시락 반찬은 동네마다 있었을 'ㅇㅇ프라자' 중형마트를 애용했다.
우리집은 할머니가 살림을 하셨기에 내가 주로 심부름을 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이 기억에 눈물을 멈추기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그땐 거스름돈에서 몇 백원 심부름수수료로 몰래 삥땅을 치는 재미가 있었다.
야채나 과일, 잔치상 준비할 때는 시장에 다녔다.
할머니 따라서 다니던 시장은
20대가 되어 트럭장사를 하며 일상이 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슈퍼마켙 자리는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중형마트와 시장 대신 대형마트로 향하며
나의 추억은 이제 기억속에만 남았다.
대형마트를 가는 일조차도
바쁜 일상과 귀차니즘이 버무려지면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었고,
택배 하루 기다리는 것도 좀이 쑤시는 사람들을 위해
이제는 로켓속도의 배송으로 아침에 눈뜨면 문앞에서 물건을 받아보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매우 편하다.
불과 10~20년 사이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게 가끔 놀라울 뿐.
요즘 아이들은 인형뽑기점을 좋아하더라.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세련되게 해놨더라.
우리 아이들 학원 건물 건너편에도 인형뽑기점이 있다.
지날때마다 그리운 장소가 떠오른다.
인테리어 따위는 필요없었던 조이스틱 오락실.
사촌 누나가 영등포에서 처음 데려간 오락실에서 나는 테트리스를 배웠다.
3학년 때 오락실을 가 본 친구가 있어서 그와 친해졌고
그가 좋아하던 축구 게임을 함께 해보았지만 재능이 없는 걸 알고 일찌감치 피벗했다.
나는 용호의권, 사무라이쇼다운, 킹오브파이터즈 라는 게임에 흥미와 승부욕을 느꼈다.
절정에 다다랐던 6학년 때는 책상 왼쪽 한곳을 송곳으로 뚫어놓고
그 아까운 츄파춥스 사탕을 먹지도 않고 조이스틱처럼 꽂아두었다.
실과 시간 준비물이라는 더듬수를 써서
할머니 소품함에서 단추 몇 알을 공급(?)받았다.
책상 우측 하단에는 조각칼로 백원짜리 사이즈만큼 원형으로 홈을 판 다음
공급받은 단추를 심어놓고 스카치테이프를 살짝 덮어두어 오락기 버튼과 유사한 느낌을 구현해보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다.
수업 전, 쉬는 시간을 틈틈히 활용하여 멘탈리허설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전이 중요하므로 하교 이후에는 오락실에 가장 먼저 출근 도장을 찍고
하루도 결석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주7일 개근을 기록했다.
심지어 도시락도 마다하며, 할머니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먹겠다고 매일 500원씩 받았는데 이 자금은 모두 오락실 아저씨에게 전달되었다.
그 결과 우리 학교에서는 나에게 대적할 아이들이 사라져버렸다.
근처 학교 아이들도 나를 이겨보겠다고 달려들었지만 우리학교 아이들이 더 잘했다.
다른 반이었던 친한 친구는 내 책상을 보고 기겁을 했다.
또라이라며, 미친놈이라며 엄청 웃어댔다.
그 책상은 불만이 쌓여가던 짝궁 여자 아이의 신고로
담임 선생님께 귀싸대기를 시원하게 맞고서야 철수했다.
그 후로도 국민학교 졸업 전까지 친구들은 나의 오락 실력을 구경하기 위해 졸졸 따라다녔고
나는 마치 연예인이 된 것 마냥 그 분위기를 즐겼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
국민학생이 아닌 공고 다니는 형이 나에게 대결 신청을 했다.
나는 늘 하던 것처럼 나만의 노하우로 한 대도 허용하지 않고 퍼펙트 승리를 이어갔다.
그 형도 승부사 기질이 있었기에 천원짜리 지폐를 세 번째 바꾸러 다녀왔다.
친구들은 환호하고 흥분했다.
그러나.
그 고등학교는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형아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나는 우리 아빠 모교라며 그 형들은 우리 아빠의 후배일 뿐이라고 깐족거렸다.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화면이 꺼지기 직전 나의 연승 횟수는 27
꼬맹이한테 27연패를 당한 그 형은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 왜 꺼요?"
내 질문과 동시에 그 형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환호하고 흥분하던 나의 친구들은 얼어버렸고, 나도 얼어버렸다.
아픈줄도 몰랐다.
"야 니들 다 꺼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얼른 오락실을 나와 도망치듯 달렸다.
두 블럭쯤 지나왔을 때 한 친구가 숨이 찬다며 잠시 휴식을 요청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바탕 시원하게 웃었다.
"야 안아프냐?"
"어. 안아팠는데 이제 아퍼"
우리는 또 한번 시원하게 웃었다.
오락실의 흥행은 내가 중3이었던 98년 겨울에
스타크래프트라는 괴물같은 게임이 나오면서
친구들을 피씨방으로 데려가버리면서 끝이 났다.
아이들 하원 시간 맞춰서 학원에 데리러 갈 때마다 생각한다.
한번쯤 그날로 시간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그 형한테 다시 한 대 맞더라도..
너무 그리운 시절이다.
골목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주택가 지역에 존재하지만
그때의 느낌은 아니다.
그때 골목길에 일렬로 주차되어 있던
엘란트라, 세피아, 소나타2, 캐피탈, 각그랜저..
한 친구의 아빠가 포텐샤를 탄다는 말에 그 친구의 인기가 급상승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골목에는 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싸우는 소리,
조용히 하라는 동네 아저씨의 불호령,
거지처럼 지저분하게 하고 다닌다며 등짝 스매씽을 날리며 단체로 씻겨주던 친구 엄마.
지금 그런 엄마가 있다면 바로 잡혀가겠지?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이 되며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당시 "뭐? 돼지털?" 이라는 대사로 웃음을 선사했던 CF 광고가 기억난다.
그 화려했던 디지털 세상조차 시대의 흐름에 따라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이제는 AI시대라고 한다.
그럼 AI 다음엔 어떤 시대가 찾아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