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학창 시절에는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자리.
나는 회장, 부회장, 반장, 부반장...
심지어 줄반장조차도 맡아본 적이 없다.
3학년때였던가?
용돈을 투자해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부반장 명찰을 샀다.
전혀 티가 안나는 부반장이 되었다는 거짓말로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거짓말인걸 알아서인지 정작 집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고3때 실제로 부반장을 맡은 적이 있긴하다.
미션 스쿨이라 부반장이 종교부장을 겸하는 자리였는데 반장선거에서 부반장에 당선된 아이가 하기 싫다고 억지로 부탁했다.
나도 졸업 전에 한번은 맡아보고 싶어서 수락했다.
학급 예배 진행하는 것 외에 할 일은 전혀 없었다.
내 인생에 '장'자리를 본격적으로 맡게 된 것은 20대 군대에서다.
방역반'장'이라는 타이틀로 부대 내 소독작업을 하는 직책이었다.
너무 없이 살아서인지 그 타이틀마저 자랑스러웠다.
병원일을 시작하고 총괄실'장'이 되었다.
진료 외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잡부였다.
손해만큼의 이득이 없었지만 14년동안 즐겁게 일했다.
퇴사하고나니 정말 남는 게 없었다.
20년 만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던 한마디 때문이다.
첫 출석일에 구역장님이라는 분을 만났다.
전공이 성악이었다는 이유로 성가대에 들어갔다.
이듬해 부파트'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구역'장'까지 맡게 되었다.
'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까?
책임이 따르는 우두머리를 뜻한다.
가볍게 생각한 적도 없지만 어깨가 무겁다.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라는 자리는 이미 무겁게 느끼고 있다.
2026년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하길래 나에게 책임있는 자리를 요구하는걸까?
병원을 퇴사할 무렵 나를 물어뜯기 위해
대표이사의 자질이 없다는 둥, 그릇이 작다는 둥
많은 험담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자리를 맡기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건 굳이 내가 그와 대적하지 않아도 그의 말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직 수락하지 않은 많은 그룹의 '장' 자리들..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일까?
아직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