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하는 군인아저씨

내 인생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간

by 로건리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학창시절 해보고 싶은 직업이 많아 배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학원비가 비싸 연기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고 예체능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노래를 좋아하니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뒷산에 올라가 노래 연습을 했다.

결국 독학으로 지방에 있는 예술대학 음악과에 성악 전공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1년만에 학자금대출 체납으로 인한 신용불량자의 삶을 살다보니 꿈에 대해 가장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던 20대 초반에 꿈을 향해 전진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받은 음악과 동기들을 보면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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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고난 성대가 약하고 톤이 상당히 낮다. 그래서 변성기 이후 평범한 남자 노래도 힘들어했다.

그런데 학교 복도에서 장난스럽게 조관우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걸 들은 교수님이 카운터테너를 제안하셨다. 소프라노 소리를 내는 남자 성악가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이야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열리고 다양성을 추구하기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중이 높아졌지만 2002년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귀신소리 낸다며 듣기 싫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성악 전공인데 노래를 왜 그렇게 못하냐고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많이 아쉬웠다. 결국 내멋대로 발성으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잘하는 사람으로, 정작 무대 위에서는 노래를 하면 안되는 사람으로 이상한 포지션이 되어버렸다. 결론은 전공자인데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 팩트였다.


스스로도 인정했다.

노래는 내 길이 아니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보자.






[연기학원 주말반]


동해에는 연기학원이 없었다.

주말반으로 서울에 있는 학원을 알아봤다.

당시 "건택사단" , "수연기학원"이 입시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런데 상담을 받으려고 연락했을 때 연결이 되지 않아서 잠실에 있는 작은 연기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원장님이 한 시간을 넘게 상담해주시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주말마다 동해-동서울 버스에서 대본을 외우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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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기학원에 다니던 시기에 함께 연습하던 친구들 중 현재 활동하는 배우는 이이경 한 명뿐이다.

내 스트레칭을 도와주던 임운순 이라는 친구가 잠시 활동을 하는 것 같더니 요즘은 통 안보인다.

얼굴도 잘 생기고 매력적인데 배우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또 한번의 시련을 겪었다.

대본을 맛깔나게 연기하려면 목소리의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고 느껴졌다.

나의 유리성대는 밋밋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해 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특기였다.

선생님은 나의 전공이 성악이었다고 하니 노래를 특기로 준비하라고 했지만, 전공자인데 이정도 실력이라면 마이너스 요소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때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너 특기로 무용 배워보는 건 어때? 연기할 때 뻣뻣함 없애는데도 도움이 될텐데."


닭살 돋는 단어였다. 세상에.. 내가 무용을 배운다고?






[무용하는 군인아저씨]


동해로 돌아와서 "무용" 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당시 나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는데 매일 다니던 길에 무용학원 간판이 보였다.


"여기 무용학원이 있었나?"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무용학원이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들어가도 될지 망설여졌다.


아무도 없는 빈 무용연습실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그냥 나오려고 하는 순간, 운명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당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선생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시선을 고정할 곳을 찾고 있었다.


"본인이 배우시려고?"


"....안되나요?"


선생님은 귀여운 듯 엄청 웃으셨다.


"왜 안돼? 무용 배워본 적 있어요?"


"국민체조 말고는 몸을 써본 적이 없어요."


"무용을 배우려는 목적이 뭐에요?"


"제가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데 특기로 무용을 추천하시더라고요."


"동해에 연기학원이 있나?"


"서울로 다녀요. 주말반."


"대단하시다. 머리스타일 보니까 군인?"


"네. 지금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생님은 아무 기대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날 바로 등록을 하고 수업도 진행했다.


"생각보다 잘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무용을 잘하려면 기본 동작이 제일 중요하니까 부대에서도 연습할 수 있으면 연습 많이 해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영외생활을 하던 선배가 전역하고 나는 의무대 옆 부사관 숙소로 들어갔다.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고 싶은 이유였다. 의무대 로비 한쪽 벽면은 전체가 거울이었다. 근무시간이 아닐 때는 그곳에서 연습을 했다.

무용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면 좋겠어. 선생님이 가르친 제자들이 정말 많거든? 근데 못하는 사람한테 기분 좋으라고 잘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 그 사람은 인생이 걸린 문제일 수 있는거니까."


갑자기 긴장감이 돌았다. 특기로 배우는 무용 조차도 실력이 안되는걸까?


"이제 무용 시작한지 한 달 조금 넘었나?"


"네. 그쯤 됐어요."


"혹시.. 연극영화과 말고 무용과 입시를 준비해 볼 생각은 없나해서.."


전공이었던 음악과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꼴찌였다.

입시를 준비중인 연기는 고등학생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시작한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무용으로 입시 준비하자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솔직히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 표정이 진지해서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니가 원하는대로 하면 돼. 그냥 무용을 40년 가까이 한 사람으로써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니까 고민해봐."


선생님은 다음 수업을 시작했고, 나는 그 수업을 지켜보며 앉아있었다.


"진짠가? 내가 무용에 소질이 있다는 말인가?"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계속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했다.

주말마다 수업을 진행중인 연기는 큰 진전이 없었다.

서울에서 동해로 가는 버스는 나의 생각창고였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고민이 깊을 때 답을 찾는 방향으로 내 생각을 움직여주던 공간이다.

그날도 그랬다.


"무용과 입시 준비하는 마음으로 연습하면 연극영화과 지원자들 중 무용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뭐."


다음날 무용 수업을 앞두고 여유있게 학원에 도착했다.


"선생님. 저 진짜 무용과 입시 준비해도 되겠어요?"


"그럼. 그걸 말이라고. 선생님이 얘기했잖아. 키워보고 싶다고."


"저 할게요."


"진짜? 고마워~ 잘 생각했어. 대신 현대무용은 안되고 한국무용"


그날부터 수업 난이도는 수직 상승을 했다. 특기로 준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동작 하나에도 디테일을 잡아야했고, 같은 동작도 더 길어보이게, 더 커보이게 몸을 써야했다.

마음 속에서는 팔이 2미터는 될 것 같은데, 점프 동작도 2미터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같아서 성질이 났다.


그렇게 또 몇 일이 지난 어느날, 선생님은 어떤 안내문을 보고 계셨다.

내가 학원에 들어서자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무용과 입시를 준비하려면 경력이 좀 필요한데, 준비기간은 길지 않은데 콩쿨 한 번 나가보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콩쿨이라니.. TV에서나 들어본 단어였다.


"제 실력으로 무슨 콩쿨을 나가요?"


"실력을 키워야지. 누가 지금 실력으로 나가니?"


음악과 전공시절 무대에 오르기 직전보다 그때의 두려움이 더 컸다.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장에서 내 차례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콩쿨"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콩쿨이면..제가 뭐 준비해야 하는데요?"


"작품이 있어야지."


"작품이 뭔데요?"


"선생님이 너한테 딱 어울리는 작품을 생각해봤어."


그렇게 나는 "한량무"라는 작품으로 콩쿨 준비를 시작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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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쿨까지는 7개월.

그때만 해도 무용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 없이는 혼자 연습도 어려웠다.

칭찬요정인 선생님도 콩쿨 준비 이후로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무서웠다는 말)


모든 일이 그렇듯,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리고 몸살이 심하게 와서 의무대에 입실까지 했다.






[무슨생각을 해? 그냥 하는거지!]


의무대에 입실해있으니 뭔가 마음이 불편하고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맞는건지 계속해서 의심스러웠다.

수액걸이대를 질질 끌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TV 화면에 눈길이 갔다.



지금은 너무 유명한 짤로 도는 자료가 되었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이 방송을 보다가 저 장면이 나왔을 때 머리를 세게 한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거지"



근육통은 계속 남아있었지만 이대로 누워있을 수 없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무용학원까지 자전거로 힘겹게 달렸다.

학원에 도착한 나를 본 선생님은 아프면 좀 쉬어야지 뭐하러 나왔냐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쉴 자격이 없었다.


몇일이 지난 뒤 조금은 향상된 실력이 느껴졌다.

그런데 점프 동작이나,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동작은 힘이 부족하고 또 호흡이 모자랐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 부담가지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거든. 근데 지금 니 경쟁상대인 애들은 예고나 무용과 다니면서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하고 있어. 일하면서 준비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아는데 연습시간을 알차게 써야 해"


12시간 연습이라는 말에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내가 당장 부족한 건 순간적인 힘과 호흡이었다.

새벽에 수영 강습을 받는 군의관 형이 계셨는데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새벽 4시반이면 부대 앞으로 나를 태우러 오셨다.

수영 강습으로 호흡이 실제로 길어졌는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다만 나의 느낌으로는 엄청 길어졌다고 믿었다.


수영 강습을 마치면 출근시간 한참 전에 부대에 복귀해서 연습을 하고 업무를 빨리 마무리 하기 위해 그날 해야할 일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퇴근과 동시에 나의 고물 자전거는 바쁘게 달렸다. 무용 연습을 마치면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그날 연습한 장면을 녹화한 파일을 보며 개선해야 할 부분을 체크하다 지쳐 잠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7개월이란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콩쿨을 3일 앞둔 날부터는 휴가를 내고 온종일 학원에서 연습을 했다.

첫 콩쿨은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진행했는데 하필 참가번호 1번을 부여받았다.

나의 무대를 응원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 의무대 수병 몇 명이 함께와주었다.


첫 무대에 올라 자세를 잡았고, 나를 비추는 조명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검게 보이기 시작했다. 음악이 시작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엄지발가락에 쥐가 난 것이다.


너무너무 화가나고 억울했다. 난 왜 늘 이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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