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자차를 타고다니기 시작한 이후
하루 만보를 걷는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7-8년 정도 만보계 앱을 깔아놓고 사용하며
적게는 3000보 미만, 보통 6-7천보를 걸었다.
자연스럽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70kg대의 체중은 90kg 중반까지 늘어났다.
가끔 학회 촬영이나 해외촬영을 떠날 때
13000보~17000보를 걷고나면 기진맥진했다.
심할 땐 몸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얼마나 심각한 운동부족인가..
요즘 푸바오 생활하면서 운전할 일도 별로 없고,
돌아다닐 일이 없다보니
어떤날은 1300보밖에 못걷는 날도 있다.
모처럼 날이 좋아서 봄인 줄 착각했다.
점심을 먹고 교회 모임 가는 길을 걸어서 가보았다.
하도 걷지를 않으니 오래 걸으면 사타구니도 아프고, 골반과 허리가 아프고 하다.
다행히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회복과 인류애의 회복을 기도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응답을 받은걸까?
이 기도를 드릴때마다 눈물이 난다.
나와 내 주변인들의 건강을 기도했다.
뮤지컬 대본과 곡작업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새로 배우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기도했다.
나 스스로가 이땅을 살아가는동안 강하고 담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지하철 2정거장 거리인데 한 정거장이 다른 역에 비해 좀 긴 편이다.
집에 오는 길도 걸어서 왔다.
걷다보니 그동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하나씩 흩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사람들을 챙기겠다던 나의 마음을 반성했다.
그 피해를 온전히 감당하며 내 의견을 지지해주었던 아내를 욕먹게 했던 내 행실을 반성했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시간이 지나 본인들의 아이디어라며 이야기하는 일에 속상해했던 나의 입을 반성했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서운해했던 나의 손을 반성했다.
모른척 하면 그만일 것을 굳이 기억하고 대화로 풀려고 하던 나의 귀를 반성했다.
내가 선을 그어주지 않아 선을 넘어온 이들에 대해 분노하던 나의 기준을 반성했다.
내가 죽을판인데도 상대를 먼저 챙기려 했던 결과가 불만으로 돌아올 때 분노했던 나의 오지랖을 반성했다.
사람의 장점을 잘 파악한다며 내 생각처럼 상대가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솔함을 반성했다.
유명한 분의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다.
직원들이 내 맘대로 안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장이 잘못한거라고. 직원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건 사장이라고.
그렇다. 사장은 누굴 탓하는 자리가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직접 수정하는 자리다.
나는 그동안 내가 겪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아팠고, 많은 손해가 있었고,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좋은게 좋은거라는 생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만 주변에 두며 그들과 사업을 하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중간 결과는 처참하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나의 안위와 나의 미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사실 본인들만 중요하다고 보는 게 맞다.
다른 사람 누구라도 아마 99%는 그런 사고의 순서와 방식을 소유하고 있을것이다.
직장에 있을때나 사업을 시작한 이후,
아니 거슬러 올라가보면 가족들조차,
나를 지켜주고 책임지려 했던 사람들은 없었더라.
그래서 나는 주변사람들을 지키고 책임지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 컴플렉스였을까?
내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착각한걸까?
그들도 실패해보고 아파봐야 느끼고 볼 수 있었을 일들을
나의 오만함으로 박탈시킨 꼴밖에 안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죄 라는 것을 깨닫고 또 반성했다.
이렇게 사람이 점점점점점점 말수가 줄고 입을 닫게 되는 모양이다.
예전 어떤 회사의 사장님이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들어간 뒤
인사팀장에게 "쟤 짤라" 라고 해서 해고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사장님이 너무 못된 사람으로 보이고 악마같았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해야하는건가보다.
다같이 잘사는 일은 없는건데 내가 유토피아를 꿈꾼것이다.
왜 사장들이 돈을 많이 벌어가고 직원들은 2,3백만원 월급을 주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이제 완벽히 학습했고 완벽히 이해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거였다.
나만 몰랐었나보다.
어제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다.
한 달전부터 기존 안경 도수가 어긋나서 새로 맞추려고 하긴했다.
단순히 시력이 나빠진 게 아니라.
보는 눈이 좋지 않았던 내 눈에 맞는 안경을 맞추게 되어 기뻤다.
시력은 더 좋아졌는데 노안이 시작되어서 가까이 있는 게 잘 안보이는 거라고 했다.
노안은 환갑쯤 지나면 맞이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난 아직도 아기같은데 어른들에게 찾아오는 것들은 다 수집하고 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데 웃음이 나왔다.
저녁식사 시간을 한참 놓쳤다.
낮 12시에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보니 허기가 심했다.
아들이 회전초밥을 먹고 싶다고 했으나
자그마치 3군데 회전초밥집에서 재료소진, 마감 등의 사유로 입뺀을 당했다.
결국 또 걷고, 또 걸으며 집 앞 국밥집에서 끼니를 떼웠다.
아들이 후식으로 커피를 사준다고 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나 몸이 너무 피곤했다.
어제까지 악몽과 두드러기, 피부질환, 두통, 어지럼증, 가슴답답함, 소화불량, 불면증의 증상으로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했다. 오늘 총 걸음수는 2만보, 15km의 거리를 걷고 건강해진 기분이다.
예전에는 하루 만보? 우습게 걸어다녔다.
그게 대단한 일이 아닐텐데, 건강을 생각해서 일부러라도 좀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