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운동을 끝내고 산책길로 걸어갔다.
퇴사한 이후로는 비교적 겉보기에 평화로운 삶을 살고있는데, 운동을 다 마친 후 산책로를 걸어갈 때면 유독 더 평화로움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자주 하지 않는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이 얹어져서 그런걸까.
이 이질적인 고요함은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걷고 있는데도 어쩐지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동시에 시끄러운 세상과 저 멀리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안정감이 든다.
뭔가를 했다는 성취감과 허무함이 묘하게 엇갈리는 이 지점에서의 대낮 산책로는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꽤나 만족스럽지만 동시에 그 길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날도 온몸으로 평화를 느끼며 걷고 있는데 멀리서 왠 중년 여자분 서너명이 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분들이 나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 정도로 눈을 응시하며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었기에 나 또한 그쪽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 분들이 내 앞으로 근접했을 즈음 산책길의 그 평화로움은 화라락 깨졌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란 내게도 말로 표현 못할 눈물 겹고도 감사한 존재다.
그러나 이분들의 어머니는 세글자가 그들의 입 밖으로 다 떨어지기도 전에 내 기분을 망가뜨렸다.
곧이어 이성을 잃은 얼굴 근육이 자유자재로 씰룩댔고, 눈초리마저도 냉랭하게 바뀌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갑자기 다가오던 발걸음을 주춤하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 엇. 어머ㄴ. 그 저희가 아주 좋은 강의를 개설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어머니."
"저 어머니 아닌데요?"
이 정도하면 내게 더이상 말을 걸지 않고 사라질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들은 다시 따라붙으며 이미 지나쳐 앞을 향해 걸어가는 내 등뒤에 대고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어머니."
그 분들이 내게 특별히 무례를 범하거나 잘못한 건 없다.
다만 나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아이가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신분이 아니었다.
사실 어딜 보나 중년, 어머니의 분위기를 풍기는 나의 비주얼을 스스로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에 침묵하며 갈 길을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강의 관심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