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헐'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하나 둘 쓰기 시작했을 때 좀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다.
'저건 무슨 해괴한 단어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욕을 들어야만 놀라는 건 아니었다.
들어서는 안될, 보아서는 안될 것들을 봤을 때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놀라운 감정이 일어난다.
친구들이나 또래들 사이에서 '헐'에 대한 찬반 논란까지 하며 갸우뚱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단어는 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인데다 아무래도 남을 더 의식하고 따라하기 좋아하는 세대니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헐은 내 주변과 먼 곳에서 일부 어린 층에서만 쓰는 계층 단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신입사원들에게서 헐을 들었고 금방 사그라들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단어의 유행이 의외로 길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어린 학생들을 넘어 성인 젊은 층에게까지 점점 헐의 확산 속도나 사용계층이 확대되어갔고 급기야는 바로 내 가까이 있는 또래 친구들의 입에서 그 소리를 듣는 순간을 맞이했다.
'아무리 그래도 헐을 꼭 써야되나.'
친한 친구들까지 쓰기 시작했을 때는 적군에게서 나의 아군 핵심 기지까지 침입받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헉을 썼으면 썼지 절대 헐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며 어딘가 뾰로퉁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가끔은 어떤 논리적인 이유를 찾으려해도 답이 없거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때 헐의 확산은 내게 그랬다.
헐에게서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언어의 틀이나 맞춤법을 파괴했다는 생각에서 보수적 사고가 작용했던 것이다.
별 고집을 피울 이유도 없는데 그 단어를 밀어내고 거부하느라 나름의 시간을 보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결국 헐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도저히 헐의 세계에서 외로이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던 이유는 헐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어서 도망치거나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별 것 아닌 일에 나 자신을 놓기가 그리 어려운건가보다.
어느 날 카톡방에 헐을 한번 내보내봤다. 처음 써보니 이 때 헐을 쓴게 맞는건가 하고 헷갈려하던 와중에 내 눈에만 크게 확대되어보이던 헐이 남들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단어로 취급되며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나만 그 헐에서 멈춤을 하고 오만 생각을 했었던 것이었다.
요즘에는 많은 말을 헐 하나로 대체해서 쓰곤한다.
심지어 헐에 리듬을 준다던지 음정을 섞어 메아리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그 한 단어에 다양한 감정을 담아서 이곳 저곳에 쓰다보니 이러다 표현력이 줄어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다.
헐의 시작을 굳이 위키피디아나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지는 않겠다.
그저 나의 시대에 내가 겪었던 기억과 느낌만으로 헐을 떠올려서 글을 쓰다보니 헐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것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기존에 만들어낸 어떤 자료나 이론을 참고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것이 아니다.
인용자료나 주석을 달아서 뭔가를 입증해야만 인정해주는 나나 틀에 갇힌 사람들에게 결국 어느 날 나타난 헐은 보란듯이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과학이나 의학같은 분야에서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런 것들조차 처음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이런 게 바로 창의가 아닐까한다.
특히 나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누군가의 틀, 사고에서 벗어나서 손가락질도 받아보고 미움도 받아가면서 그 길을 굳건하게 밟아가는 자세는 좀 필요하지 않을까.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