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혼자 작업을 하다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또는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내게 일어난 이 신기한 이벤트에 대해 종종 얘기했다.
대부분은 처음에 "와"하고 놀래다가 금새 그 얘기를 들은 적 없는 상태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지만 표현은 언제나 나의 자유다. 사람들이 알아주건 몰라주건 내 기쁨을 똑같이 공유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 있는 그대로 즐기자고 생각했다.
무명의 초보 디자이너에게 이러한 일은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으니까.
혹여 내 티셔츠의 등장이 용산이 마지막 씬이 된다해도 어쩔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역시 마음 한켠에는 실낱같은 기대의 끈이 남아있어 종종 그 분의 인스타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번에도 없네.'
게시물에 계속적으로 내 티셔츠가 보이지 않자 희미한 기대감도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몇일 뒤 인스타에 디자인 게시물을 올리면서 늘 그렇듯 글도 함께 작성했다.
보통 인스타를 할 때 일러스트와 관련된 글이나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정리하여 같이 올린다.
이렇게 하면 스스로 돌아볼 기회도 되고, 이것이 곧 내 계정의 정체성, 브랜딩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나의 게시물을 올릴 때 이렇게라도 정성을 들이고나면 숙제를 끝낸듯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후에는 반사적으로 검지손가락을 아래위로 움직여 다른 분들의 인스타를 계속 보게되는데 이때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왠만해서는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데 순간 눈에 딱 하고 들어온 장면에 나는 그만 얼어버렸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 몇번을 다시 보고 또 봤던 인스타 게시물의 제목.
"Pink in Berlin"
대표님은 누가 봐도 내가 디자인한 티셔츠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독일 베를린의 와인트로피 심사 행사를 비롯해 그 지역 명소 곳곳에 나의 핑크 티셔츠를 입고 찍으신 사진을 수북히 올리셨다.
정말로 이번엔 티셔츠가 해외, 그것도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도시인 베를린에 갔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대표님이 올리신 글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녹여주기 충분했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찬 감정이 넘실거렸다.
오랜 회사원의 신분에서 벗어나서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내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큰 이벤트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 날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