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직장생활에서 나에게 뭐가 남았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우물쭈물거리게 된다.
분명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을텐데, 얻은 것에 대해 생각하면 뭔가 애매하고 아득해진다.
잃은 것을 말하라고 하면 빠른 속도로 한 다섯가지는 나열할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직장이라는 깊은 독에서 빠져나온지 오래되지 않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 동력은 사실상 부정적인 부분에서 더 크게 작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 다섯가지가 모든 직장인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수 있다.
주변에서 알뜰살뜰 돈을 모은다거나, 재테크를 잘해서 재정적으로 꽤 윤택해진 사람도 더러 보았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애석하게도 버는 만큼 대담해진 나머지 대출의 규모도 같이 키우게 되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잃게 되는 돈의 규모도 커질 수 있다.
잃어버린 목록 중에 "사람"을 보자면 회사 안팎으로 그 범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직장 내에서 좋았던 관계는 업무상 또는 조직 내 이해관계로 인해 틀어질 수 있고, 이러한 광경은 직장 내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겉으로 티를 내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눈치 빠른 직장인들은 원래의 그 관계가 아님을 어느샌가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좋았던 관계"라는 것도 원천적으로 다시 헤짚어 볼 필요는 있다.
대게는 나쁘지 않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한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좋다기 보다 좋아보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겠다.
신뢰가 깊고 탄탄한 관계라면 쉽게 틀어지지 않고, 틀어지더라도 회복의 여지는 많다.
또한 우리가 원활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한창 몰입하는 시기에, 역으로 어느 한군데는 구멍이 나게 마련인데 보통 친구관계에서 생기는 경우가 있다.
회사생활에 집중한 나머지 친구관계에 소홀해져서 다툼이 생기거나 연락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걸 경험한 사람으로 지금은 속죄하듯 오랜 친구들을 하나하나 소환해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들은 그런 나를 편안하게 받아주었다.
마치 우리 사이에 공백이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사표를 쓰기 전, 나는 이후에 펼쳐질 변화에 대해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월급이 안나온다는 것이었고, 일은 해볼만큼 해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나의 성향상 어차피 연락하는 사람은 꾸준히 연락할 것이고, 그 외 사람들은 연락을 원래도 잘 안했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았다.
퇴사를 하면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집중할 곳만 신경쓰면 되었기에 슬림해진 라이프 스타일을 가질 수 있고, 연락하던 친구들은 그대로 연락하면 되니까 오히려 좋았다.
그런 나의 생각들은 퇴사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몇개월 전 기존의 임원이셨던 어른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여 친한 동료이자 지금은 친구가 된 시스터들이 같이 나갔다.
그날은 2022년에 가장 큰 변화를 맞은 사람인, 빈손으로 백수가 된 나와 기존 회사를 고 스펙으로 졸업하시고 새 회사를 차리신 대표님이 큰 화두였다.
우리는 당산 근처의 한 고기집에 모여 그간의 안부를 나눴다.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그만두는게 사실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녀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나는 무언가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아쉽게도 나의 오랜 직장생활에서 정말 좋은 상사로 기억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거칠고 매섭고 냉정한 사회 안에서도 우리에게 좋은 어른은 존재했다.
어쩌면 불편하거나 때로는 불쾌하게 느껴졌을 나의 부족한 행동들을 감정적으로 나무라거나 몰아세우지 않고 잘 감싸안아 주셨다.
직장생활 동안 대개는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러지 말아야지"를 보고 배우는데, 아무리 반면교사라 해도 매번 안좋은 것들만 본다면 극복하는 소화능력도 한계에 이르렀을 것이고,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자리에 정서적으로 나에게 안정감과 용기를 심어주는 어른들이 안계셨다면 나는 이렇게나마 균형있게 성장하기 어려웠을 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도 그분들과 종종 만나 밥을 먹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으며, 이제는 옛날얘기가 되버린 이전의 직장생활에서의 이벤트들을 나누며 웃고 추억하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할 말이 많은 이 세명의 시스터들.
나 포함해서 이 네명은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가 제일 잘난 줄 알던 톡톡 튀는 20대 시절부터 사회에 점점 길들여지는 30대를 같이 겪어나가고, 볼꼴 못볼 꼴 다 봐서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어버린 우리.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40대를 같이 살아나가고 있다.
우리는 고기집에서 1차로 먹을만큼 먹은 후 뭔가 아쉬운 마음에 그만 멈추지 못하고 편의점을 들렀다.
술만 마시면 튀오나오는 그놈의 "딱 한잔만 더하자"는 말 때문에. 그런데 보통은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다.
맥주 몇가지와 안주를 사들고 이제 갓 차린 대표님의 깨끗한 사무실로 쳐들어가 판을 벌였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길을 진흙발로 더럽히는 느낌과도 같았다.
사무실이라 처음엔 조명이 밝아서 아쉬웠지만 먹은 술이 많아질수록 내 눈은 더 어두워졌고, 그렇게 다음날 기억도 같이 어두워졌다.
일어나보니 코끝으로 알콜향이 스며 올라오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근데 이건 술냄새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는 알콜 향 때문에 나는 몸을 일으켰고, 그제서야 바닥에 멀뚱히 붙어있는 쇼핑백을 보았다.
"아! 어제 향초랑 향수를 선물받았고 그걸 내가 목에 뿌렸네!"
나는 그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과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나의 환송자리도, 나를 위한 자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체 예상을 못했다.
그날 이후로 몇일간 그 향수와 향초는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숙취가 사라진 이후에야 그 고급스런 벨트를 메고 있는 향초 케이스를 언박싱하며 향을 맡아보았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내추럴한 향이 났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니 누구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모든것들과의 조화가 좋은 향기였다.
그리고 쇼핑백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카드를 발견하고는 다시 읽어내려갔다.
분명 어제 꺼내봤는데 나는 처음 읽는 사람처럼 진지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진심어린 응원의 글은 앞으로 뭔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내 삶의 첫 길에 작은 촛불이 되어 함께 해주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나는 이렇게 다시 써본다.
직장 생활에서 얻은 것.
"사람, 그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