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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27. 2023

커피와 커피잔

나는 커피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집에서까지 커피를 마실 정도로 좋아한다거나 취향이 확실하지도 않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커피콩이나 커피가루를 선물받기 시작했고, 커피를 즐기지 않는 탓에 그 커피들은 한동안 식탁 테이블 한 켠에 방치되어 있었다.

시일이 지날수록 그 커피를 보면서 은근히 무거운 마음이 들었고, 언젠가는 저것들을 먹어치워야지 하는 의무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커피들을 마시기 위해 도구를 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사기 전에 주변에 전문가가 있다면 손쉽게 물어보기 좋다.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걸 즐기는 사람 또는 자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전문가니까.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친구에게 커피 도구는 뭘 사야하는지 물어봤고, 나름 검색도 하면서 필요한 도구들을 알아봤다. 그러는 동안 커피를 마시기까지 은근히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복잡한 과정은 아니지만, 정말 좋아해야 이 귀찮은 과정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며 커피를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차처럼 뜨거운 물에 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커피콩을 가는 그라인더, 커피가루를 물에 거르는 여과지인 필터와 드리퍼, 주둥이가 가늘고 긴 주전자, 그리고 커피가루를 물에 걸러 최종 떨어지는 결과물을 받아내는 컵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준비물이 많이 필요해서 처음엔 선물받은 걸 다른사람한테 줄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먹겠지 하는 생각에 도구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이 도구들도 굉장히 다양했고, 커피를 내리는 방법도 여과지를 린싱하고 물을 어느 각도에서 흘리느냐와 같은 디테일한 정성을 들여야 더 맛이 있다는 둥 알면 알수록 아주 귀찮은 세계였다.

아니 그럼 여태 이 친구들은 집에서 저런 행위를 다 거쳐가며 커피를 마셨단 건가? 새삼 놀라웠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전과 다르게 새롭게 산 도구들을 활용해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사실 커피 그 자체로 즐겼다기 보다는 밥을 먹고 난후에 디저트를 먹는 안좋은 습관이 생겼는데, 그때 꼭 같이 따라붙는 게 쌉싸름한 커피였다.

최근엔 꽤 유명한 드리퍼를 비싼 가격에 사고 여과지도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비싼 걸로 구입했는데, 사고 난 직후엔 좀 후회스럽고 억울한 생각도 약간 들었다.

직접 만든  스콘과 한가로운 커피 타임

                                          

그런데 커피를 그 유명한 드리퍼와 필터지에 내려 먹어보니, 와 확실히 비싸고 유명한 값을 하는구나 싶었다.

거친 원두의 향이 여과지에 걸러져 꽤나 부드럽고 향이 좋은 커피로 재탄생 되었다.

분명 이전에 다른 싸구려 필터에 내려 먹을 때랑은 향과 맛이 달랐다.

“와 이래서 커피 도구에 투자하는구나.”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늘어나니 자연스레 커피잔에 대한 취향도 생겨났다.

디자인도 물론 예뻐야 마실 맛이 나고, 또 실용적인 부분도 정말 중요했다.

잘못 만든 커피잔은 손잡이를 잡았을 때, 손가락등이 커피잔에 닿게 설계되어 마실 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손잡이를 잡을 때 잔의 몸통이 손에 닿지 않도록 설계하면서도 그립감이 편해야 커피든 차든 그야말로 “릴렉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잔을 들었는데 손에 갑자기 뜨거운 온도가 느껴져 화들짝 놀란 기억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건 잘못 만든 커피잔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차가운걸 마시면 상관없겠지만.

근 1년간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잔으로서 최고를 치자면 블루보틀 커피잔이다.

커피는 블루보틀을 챙겨서 마시지 않지만, 그 브랜드의 커피잔을 쓰면서 블루보틀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고 자꾸 관심도 생겨났다.

역시 무엇 하나를 만들어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실용과 멋을 갖춰 만들어진 제품은 충성고객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반대로 정말 실망스러웠던 컵은 꽤나 유명한 제품으로 마치 Fast fashion의 SPA 브랜드 옷처럼 유행을 빨리 만들어 내지만, 디자인도 실용성 면에서도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다가 손이 데일 정도로 손잡이와 커피잔 몸체의 구조가 균형이 없었다.

그리고 국방색 군바리 디자인의 커피잔은 도무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요새 밀리터리룩이 유행이라곤 하지만 마시는 컵으로 군복 무늬잔에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잔에 마시면 군대도 갔다오지 않은 내가 왠지 다녀온 느낌이랄까.


그리하여 현재까지 내 취향의 커피와 커피잔, 그와 관련된 도구들이 생겨났는데 선물받은 커피중에서도 하와이산 코나 커피와 블루보틀 커피잔, 그리고 케맥스 드립퍼가 그것들이다.

가끔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는 1969년에 디자인된 아라비아 핀란드 커피잔으로 바꿔 눈을 즐겁게 한다.


이것도 나름 연속성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보니 내 스타일에 맞는 것들을 찾게 되었고, 이 또한 나에 대한 발견이자 탐구의 과정이라 생각하니 커피향이 더욱 향긋하게 느껴진다.


 사진 및 일러스트 : 직접 찍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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