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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터 가을

가을편을 발행하며_에디터의 말

by 밥반찬 다이어리

떠나버린 것에 대한 기억의 감정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떤 것과의 이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더 길게 그리고 깊이 기억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사계절 중에 짧아서 가장 아쉬운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코 가을이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우리를 담은 이 지구의 끄떡없을 것 같던 몸체도 공해와 오염탓에 면역력이 예전같지 않다.

하여 우리와 마주했어야 할 최소한의 시간마저 지켜내지 못하게 된 이 시점에 와서야 계절이 가지는 생명력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2025년의 가을은 특히나 더 짧아서 쿨하게 보내기 어려워진다. 알록달록 단풍을 만끽하기도 전에 몸을 웅크리게 만드는 계절의 변칙적 냉혹함에 서운하다 해도 가을은 할 말이 없어야한다.

하지만 글라이터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은 이 가을을 더 길고 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매거진에 참여하는 글라이터가 아는 친구일 수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말과 대화만으로 알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시선이 담긴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글라이터의 특색이다.

생각을 꺼내어 지면으로 옮겨진 글은 다른 위치에 교차되어 있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다 내보이기는 싫으면서도 어떠한 지점에서는 연결되어야만 살 수 있는 본질적 열망이 매거진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잠깐의 시간을 내어 읽어보려는 작은 태도들은 거침없이 변모하는 세상에서 조금 덜 휘둘리도록 나를 보듬는 시간을 마련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펼쳐야 한다. 짧은 가을을 더 길게 누리기 위해서.


이번 호에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글라이터, 아이와 함께 자라는 존재가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삶을 더 희망차게 그리는 글라이터, 우리 모두 한두번 쯤 겪어봄직한 관계에서의 위기 앞에 숨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면한 글라이터. 그녀는 고통을 미화시키거나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자신의 앞길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살아있는 글은 바로 그런 글들이 아닐까 싶다. 글을 읽다보면 그 생생함이 연결되어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위기 앞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둥글리며 살아갈까.

특별한 인생 여정을 걸어왔던 글라이터의 글은 열심히 내달린 현재 앞에 서서 미처 돌보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꺼내올려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보인다. 글을 씀으로써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풀어보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진지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또한 파스텔톤이 떠오르는 한 글라이터가 있다. 자아내는 분위기만큼 감성적이고 따뜻한 글을 통해 꿈을 꾸는 용기를 공유해 준 덕분에 몽글한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가을호에는 특별 코너로 “꼰대의 직장생활”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마련했는데 참여해주신 글라이터의 농축된 경험에서 나온 진지한 시선이 잠시 멈춰서 놓치고 있던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공주시에서 만난 글라이터는 짧아서 아쉬운 이 가을에 더없이 잘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고소하게 표현했다.

계절을 살짝 비껴가는 지점에 만나는 매거진 글라이터 가을호에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준 전국의 글라이터들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더불어 가을 매거진이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나아갈 수있게 사진을 공유해주신 느닷도서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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