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멤버들과 만나는 날이다.
지방으로 이사온 후로 서울 가는 일이 이렇게 기대되고 설레는 일이 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실에서 방으로, 그리고 주방으로 몇걸음 걸을 때 마다 뭘 입고 어디로 갈까 하는 즐거운 생각에 몸 마저 가뿐해지는 기분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살면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인데, 이사온 지 20일 만에 이렇게 확 달라질 수 가 있는건가 싶어 좀 놀라웠다.
그래 어찌 E형 인간이 집안에서 조용히 잘 지낸다 싶었다.
나는 사실 약속을 하면 좀 늦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그 기대감에 일찍부터 약속 갈 채비를 하고서 움직였다.
이 친구들은 디자인학원에서 만난 동기들로 학원을 끝으로 인연을 끊기게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까운 친구들이란 생각이 들어 그간 꾸준히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 성실하고 재능있는 친구들을 건설적으로 좀 괴롭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디자인 과제를 일주일에 1개 이상씩 제출해서 서로 피드백을 하자고 제안했다.
더불어 영어스터디도 같이 하면 좋겠어서 같이 제안을 했고, 그녀들이 흔쾌히 수락해서 시작하게 된 모임이었다.
오늘이 그 첫번째 오프라인 모임이었고, 여러사람의 위치를 고려해 용산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열차 시각을 고려해서 오후 2시에 만나다 보니 우리는 모두 배가 쪼그라 붙어있었고, 예정했던 식당에서 만나 허겁지겁 메밀막국수와 만두를 흡입했다.
메밀이라 그런가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느낌이어서 우리는 연이어 빵집으로 향했다.
최근 들어 오늘처럼 덜 먹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간만에 다이어트 성공이다.
"스터디 모임인데 먹기만 해서는 안되지."
나는 영어숙제를 하다가 해석이 안되는 문장을 짚어 물어봤고, 두 친구들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반 쯤 끊어졌던 문장이 하나로 이어져 해석이 매끄러워지니 찝찝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곧이어 우리는 앞으로 스터디 운영을 어떻게 할 지 아이디어를 논하기 위해 건물이 예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으로 이동해서 커피를 주문했다.
계산을 하려던 찰나 직원분은 내 얼굴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사원증 보여주시면 할인해 드려요."
요즘 어딜 가나 아줌마 소리만 듣다가 이게 왠일인가.
"날 아모레퍼시픽 직원으로 봐줬단 말인가. 그것도 아모레 신사옥 세련된 건물에서 일하는"
스터디도 좋았지만, 저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이제 아모레 퍼시픽 하면 화장품이 아니라 내게는 이 사건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