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여자의 20대 친구
그녀와 내가 보는 시선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하자 나는 또 그녀에게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워낙에 집중력이 좋고 주변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타입의 성향이다보니 학원에 와서 수업을 마치는 4시간 동안 거의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혜인님 화장실도 안가요?”
쉬는 시간만 되면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나 밖을 나갔다 오는 나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내내 궁금증을 품다가 물어봤다.
모니터와 책만 번갈아보며 연습에만 몰두하는 그녀만의 세계가 너무 뚜렷해서 나는 감히 그 세계에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나마 말문을 조금 틔운 상황에서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수업이 계속 진행될 수록 그녀에게 말 걸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결국 나는 선생님의 진도에서 반 발짝씩 느린 템포로 겨우 따라가는 상황이 되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거나 진도가 늦어 못 따라가는 부분을 선생님 대신 채워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주변으로 슬슬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수업에 단 한번도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잘 따라가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내 오른쪽 옆에 앉은 검은 색 긴 머리의 여자였다.
내 왼쪽 편에는 이 반의 우등생 혜인님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내 오른쪽엔 검은 머리를 한 모범생 같은 여학생이 앉아있던 것이었다.
어느 날 포토샵 수업시간이었다.
포토샵의 기능을 이용해 움직이는 동영상을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각자의 아이디어로 만들고 싶은 동영상에 쓸 사진이나 이미지를 여러 개 모아서 효과를 주어 움직이는 광고 영상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수업 내용이 무척 흥미로워서 평소에 관심 있는 "먹는 것"을 주제로 머리속에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생각 끝에 피자를 메인 테마로 결정했다.
양송이, 피망, 토마토 등의 토핑 재료를 순서대로 띄운 후에 한 판의 피자가 완성되는 모습을 시나리오로 생각했고, 드물게 집중하며 움직이는 영상 만들기에 몰두했다.
그 날 모든 학원 수강생이 만든 작품을 선생님이 정면 모니터에 띄워주셔서 같이 보았는데, 그 시간을 계기로 나는 어떤 한 사람을 머리 속에 각인시키게 되었다.
"메이커스 마크, Maker's Mark" 위스키를 주제로 한 광고 영상이 화면에서 재생되었을 때, 나는 놀라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와 이건 너무 잘 만들었네. 아이디어도 훌륭하고 이펙트(효과)도 너무 잘 썼는데."
오크통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면서 메이커스 마크 위스키가 튀어나오는 장면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김지수"란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내 오른쪽 그녀였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