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나는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좌석에 여유가 없어 제일 불편한 맨 뒷자리 좌측 구석자리에 앉게 되었고, 마음의 준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땀을 식히느라 가만히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안정을 찾은 후 약간의 무료함이 밀려올 즈음 바로 앞자리로 시선이 멈췄다.
"잘못 본건가"
앞 좌석에 앉은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물건을 얼핏 봤는데 맥주 캔으로 보였다.
그런데 설마 버스에서 맥주 따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은 안했고, 그런 나의 깔려있던 의식이 그 캔은 에너지 음료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은 계속 그 남자의 손을 쫒아 다녔다.
마음으로 에너지 음료캔이라고 정리를 했지만 사실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캔을 손에 쥔 남자가 다시 손을 위로 들어올려 입에 가져다 댄다.
나는 재빠르게 그 남자의 손에 들린 게 과연 무엇일지 확인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나 내 눈동자의 움직임보다 그 남자의 손이 더 빨랐다. 다시 의자 팔걸이 아래로 떨어뜨린 손으로 눈을 쫒았지만 캔의 상표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 뒤부터는 의자 등에 기대지도 못한 채, 앞 남자의 팔만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몇번의 허탕을 치고난 뒤 드디어 나는 그 캔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광화문"
"대단하네. 버스에서. 광화문 맛있지 나도 좋아하는데"
날씨가 더워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웃음이 픽 나왔다.
남자는 몇번의 홀짝거림을 반복하더니 어느 새 한캔을 다 비웠다.
나는 궁금증을 다 해결하고는 마음의 평온이 찾아와 의자 등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딸깍"
그런데 앞에서 또 소리가 들렸고 나는 또 눈을 번쩍 뜰 수 밖에 없었다.
남자가 광화문 IPA에 이어 또 다른 캔의 뚜껑을 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맥주 종류가 궁금해 나는 고개를 쭉 내밀고 라벨을 확인했다.
"코젤"
한캔은 그렇다쳐도 두캔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강적이다.
결국 나는 고속터미널에 내릴 때까지 그 남자가 맥주 두 캔을 다 따서 마시는 걸 구경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버스에서 맥주를 즐깁니다. 그것도 두캔이나요."
남자는 뒤통수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