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좀 사."
남편은 나에게 계속 운동화를 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정작 이 운동화를 신는게 아무렇지 않기에 살 생각이 없다.
전처럼 직장에 다녔다면 바로 사려고 쇼핑을 했겠지만 지금 내 라이프 스타일을 생각하면 구멍난 운동화가 내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일러스트를 하거나 글을 쓰면서 집에서 작업을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이 운동화는 점핑이라는 운동을 하고 난 후에 산책길을 따라 걷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내가 쉽게 이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닥면이 메모리폼으로 깔려져 육중한 무게로 인한 충격을 덜 받을 수 있고, 발 볼의 여유도 있기에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신었을 때도 답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 운동화라 소재가 메쉬로 구성되어 매우 가볍고 통풍도 잘 된다.
이러니 버릴 이유보다 안버릴 이유가 더 많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뒤이어 산책로를 따라 집까지 걸어오면서 문득 운동화를 바라봤다.
구멍이 났지만 그 구멍이 단점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니 바람도 잘 통하고 시원하고 좋지 뭐."
사실 지난주 부터 과거에 느껴보지 못한 형태의 기분 좋은 흥분과 설레임으로 도파민이 최고로 흘러나온 것 같다.
우선 공식적으로 디자인 첫 일감을 받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고, 지인으로부터 받은 일감도 같이 일하는 두 친구들의 능력이 잘 발휘되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내게 돈의 규모는 중요치 않다. 액수를 떠나 거래가 생겼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그 거래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을 잊지 않으려 한다.
떠올려보니 과거 2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불합리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서 늘 "나 같으면 이렇게 할텐데"를 생각했다.
이제 창업을 한단계씩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반면교사로 배운 점들이 좋은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 같다. 역시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한데 고객과의 소통,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의 소통이 잘되어 돈 이상의 만족도를 주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한 후에 50분간 운동을 하고 산책로를 따라 돌아오는 그 길에서 나는 잠시 서서 생각을 한다.
"구멍난 운동화라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