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feat. 우리는 정의로울까?

Are We Really Just?

by Custom K

-이 글은 무꿍 브랜드 기획자이자 대표의 글을 블로그에서 그대로 가져온 글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과 평화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고 하는 말은 아마도 정의와 자유이지 않을까 합니다.(엄마, 아빠를 제외한) 하지만 우리는 이 정의와 자유를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해 본 적이 있는지라고 물으면 대부분 글쎄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 또한 '글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정의란 무엇인지?, 우리는 정의로운지? 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유명한 마이크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같은 시기 영미권 판매량 10만 부 이상).


주 독서인구가 1000만이라고 가정하면 1/5이 이상이 읽은 책이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바이블 같은 책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볼 때 끝까지 제대로 읽은 사람은.... 대부분은 책장 장식용이자 인스타 콘텐츠용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스크린샷_2025-09-13_123634.png


당시 대한민국은 모세를 만난 이스라엘 노예들처럼 마이클 샌델을 찬양하며(혹은 공리, 공화주의자라 비판하며) 사회 전반 곳곳에서 정의에 대해 거의 전 국민이 갑론을박을 쏟아냈습니다.


정의라는 단어가 사회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지며 대한민국을 휩쓸었습니다.


정의. 자유. 공정. 부의 재분배.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등 정의와 유사(연상, 연계되는)한 개념과 단어들은 연일 기사를 도배했으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전문가들이 앞을 다투어 정의 신드롬에 대해 의견을 게시했습니다.


이러한 열풍은 마이클 샌델과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한국과 미국의 사회정의 인식조사'에서 그 정점을 찍게 됩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공정성, 사회정의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비교·분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된 조사로, 한국과 미국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태도를 경험적으로 비교·분석하였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부의 재분배, 낙태, 대리모, 기여입학제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결과는 위 기사 헤드라인처럼,


한국인 73.8% 공정하지 않다. 미국인 62.3% 공정하다. -사회공정성에 대한 질문의 답변-


해당 조사의 내용은 기사를 검색하면 알 수 있으니, 저는 그 이면의 숨은 내용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사를 실시한 2012년도는 이명박 정권 하로 대중의 불만은 사회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정권의 각종 비리는 대중들의 박탈감을 크게 불러일으켰으며 이러한 현상은 사회 양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당시 기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은 최고치를 찍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당시 사회공정성 인식조사에 반영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정권에 분노하고 정의를 부르짖던 대한민국 국민은 '박근혜'를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여기까지 단순하게 정리하면,

정의는 일시적인 분노일 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종 비리와 기득권 우선정책 등으로 분노하며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던 대중, 그것도 70% 이상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했던 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비리의 온상이었던 보수당의 대통령을 다시 뽑은 것입니다.


의아하지 않습니까? 민주화를 거쳐 바로세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정의가 일시적이라는 것이...



공동체 선과 미덕이 사라진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한 일


마이클 샌더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세 가지 방식을 제안합니다.


[행복 극대화]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라고 봅니다.

[자유 존중]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는 입장입니다.

[미덕 추구] 올바른 도덕적 가치와 미덕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결국 정의는 무엇이 공정하고 올바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시대와 사회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며, 정의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의는 단순히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정리합니다.


그렇다면 공동체 정의를 추인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개인 하나하나의 공동체의 선을 지키기 위한 미덕추구'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올바른 도덕적 가치관과 그것을 실행하는 미덕에 대해 추구하는 태도가 없다면 일시적인 사회적 쏠림현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적 정의는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표면적 모습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불합리한 방법으로 누군가의 재산과 노동을 착취하고, 최소한 지켜야 할 인권을 유린하는 등 인간존엄이라는 근원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인도 등 몇몇 왕권계급 국가들처럼 불가촉민과 같은 신분제를 통해 인간존엄성에 대한 저항의식을 사회적으로 말살하게 되면 성립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렇게 발현되는 과거의 공동체적 정의는 사회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 발현 횟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힘들게 이룬 정의(개념)를 후대에 전달하여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후대에게 체계적이자 상시적으로 정의의 개념을 전달하고자 법률, 도덕, 예의 등과 같은 사회적 장치(공공의 이익, 자유, 공동체 선 등이 내포된)를 만들어 전달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이면에는 인간은 본래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지 않는다면, 쉽사리 사회 속에서 융화가 어렵다는 판단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공동체 정의는 개개인이 노력을 통해 미덕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후대에게 이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선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사회적 장치는 점점 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고, 인간의 이기심이 공동체의 선과 미덕보다 우선시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Selection_on_the_ramp_at_Auschwitz-Birkenau,_1944_(Auschwitz_Album)_1a.jpg 독일 유대인 혐오와 배타(차별) 산물인 홀로코스트


위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순혈주의 혐오의 대상이었던 유대인 차별현장(홀로코스트)입니다. 근대에 발생한 최악의 인권유린이자 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전 세계는 하나로 뭉쳐 이들에게 정의라는 이름의 징벌을 내렸고, 관련자들을 찾아 그 죗값을 받게 했습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거대한 악행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사회 속 계층 간의 혐오와 배타의 활동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체에 숨어, 지위에 숨어, 계급에 숨어, 자본에 숨어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타인을 배척하고 혐오하며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일본 욱일기가 거대한 자본력을 통해 80년대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화시켜, 자신의 과오를 숨기고 과거의 행동에 정당화를 부여하며, 글로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의도처럼 말이죠.


이렇듯 어느새인가 공동체의 선과 미덕을 위한 사회적 장치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전체에 숨은 개인과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편의점과 커피숍의 종업원에 폭언과 갑질을 하는 고객, 아파트 경비원을 자신이 부리는 하인처럼 인격을 말살하는 아파트 거주민, 장애인 아이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학업의 기회보다 자신의 땅값을 걱정해 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인근시민단체, 매일 사고로 죽어가는 5명의 노동자의 목숨보다 주식거래세가 더 중요한 대중처럼....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개인의 이익과 나의 정당성을 위해 남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과 같은 성향들의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나와 다른 쪽을 향해 공격성을 스스럼없이 들어내고 있습니다.



정의는 힘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 유명한 타이거마스크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힘은 정의가 아니다. 정의가 힘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직간접적으로 정의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얻고 성장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리사욕에 눈을 뜨게 되며 사회적 정의와 다른 자신만의 정의를 정당화하고 타인에게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 타인에 대한 강요는 강요를 넘어 폭력으로 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의가 사회전반에 동요되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질되어 타인에게 폭력을 사용하며 이를 관철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당당히 얘기합니다.


"힘이 곧 정의다. 억울하면 돈을 벌던가, 공부를 열심히 하던가, 힘이 있던가?"

"네가 무능한 것은 능력과 돈이 없기 때문이다."

: 안타깝지만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타인에게 강요하며 타인의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마치 히틀러와 독일인이 유태인에게 강요했던 정의처럼, 군부독재시절 민중을 탄압하고 강요했던 정의처럼, 미국 남부인들이 노예제도는 필수불가결한 노동시스템이라고 강요했던 정의처럼, 유럽열강이 삼자무역으로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고 팔아치우며 인종을 차별했던 그 정의처럼...


우리는 사회적 거악이 발동할 때, 혹은 복구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때만 정의를 부르짖고 찾습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강요했던 자신의 정의보다 더 큰 정의를 찾게 되어있습니다.


(스스로 부정과 불합리를 해결할 힘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과 불합리가 발동하게 되면 힘이 약한 다수의 약한 민중은 정의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힘을 모아 불합리를 극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정의는 힘이 있는 소수나, 개인들이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가치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정의의 겉모습을 바로 보고 향유하는 개인의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정의가 추구하는 근원적인 가치는 결국 힘이 약한 다수의 대중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유일한 방어 혹은 대항기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머냐고? 최소한 착하게 사는 사람이 조롱받지 않는 세상이지 않을까?


물으신다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정의는 텍스트로 정리되는 개념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현되는 상대적이자 근원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모순적이지만...)


그리고 개인의 미덕과 공동의 선을 위한 태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시작부터 불가능한 성립되지 못하는 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20201225506870.jpg


대한민국 포함 북미의 영향을 받은 국가의 법률체계는 '정의의 여신' - 디케(유스티티아)를 상징을 삼고 있습니다.(우리나라 -> 북미 -> 유럽 -> 고대 그리스, 로마 영향)


디케는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죄 지은이의 외형을 보고 선입관을 갖지 않게 두 눈을 가렸으며, 다른 요인으로 죄가 가감되지 않고 공정성이 유지하기 될 수 있도록 저울을 사용하며, 정의를 집행에 있어 강하고 단호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칼을 쥐고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각기 다른 정의가 난무하고 이를 힘으로 강요하는 시기,

강력한 힘에 대항하기 위한 정의,

그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힘(심판)이 필요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힘과 지위, 자본 그리고 환경을 무기 삼아 공동체적 선을 무시하고 개인에게 자신의 정의 강요하는 정의롭지 않은 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사리사욕은 더욱더 발현될 것이며, 타인을 혐오와 배타의 먹잇감으로 삼아 분노를 퍼붓고 자신의 정의를 더욱 폭력적으로 강요할 것입니다.


최소한 공동체 선과 미덕을 지키는 다수의 대중이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만든 강요된 정의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의는 점점 개인의 사리사욕과 폭력적인 정의에 밀려 사라져 갈 것입니다.



당신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정의로운가요?


https://youtube.com/shorts/CzGaF-M_SmM?si=1pZsbIY-rzMmyF1B


이 영상은 네팔 반정부 시위의 시발점이 된 영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졸업식의 대표자로 나온 학생이 조국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정의를 위해 일어냐야 한다. 그것이 조국과 민중을 위한 길이다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힘과 지식이 있는 학자들과 기업가들은 정부에 기생하며, 그들의 부와 권력을 늘리기 위해 부정과 부패 그리고 민중을 탄압하는 정부에 눈을 감았지만, 힘없는 민중이자 어린 학생은 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정의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눈을 감고, 부정하고, 사리사욕만을 위한 행동을 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에게 강요하는 순간 크던, 작던 우리는 정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정의로웠습니까?

혹시 누군가에게 나의 정의를 강요하지는 않았습니까?

혹시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혐오하지는 않았습니까?

이 단 두 가지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혹은 가까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가 머 어렵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정의란 무엇인지 배우고 체득해 왔습니다.


약자를 위해 대신해 싸우지 않더라도

거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더라도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지 않더라도


단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은 예단하며, 외형만을 보고 편견을 갖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과도 같은 높은 가치의 정의를 지향하는 것보다, 생활 속 실현 가능한 작은 정의를 매일 노력한다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는 좀 더 정의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오늘 정의하셨나요?

정의로운 하루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누군가 나를 규정한다면 그 틀에 저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