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꿍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창업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블로그 글을 그대로 가져온 에세이로 함께 합니다.
이전 강의에서 언급했던 '나에 대한 타인의 규정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저는 심리학 전공자나 관련 학위를 심도 있게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20년 넘는 사회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체득된 내용을 중심으로 말해보려고 합니다.
타인규정에 대한 저항을 말하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 인상 깊은 한 인물을 꺼내야 합니다.
위 사진의 주인공인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
1930년대 프랑스는 프로이트 정신학을 정론(or 주류??)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였습니다. 이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이가 등장합니다. 바로 자크 라캉이죠
업계는 별다른 업적도 없는 초짜와 다름없던 이가 주류이론을 비판하자 일대 소란이 일어나게 됐고, 한 곤조를 하던 자크라캉은 자신을 따르던 몇몇을 데리고 자신만의 학파를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포스트 구조주의 정식분석학'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지식의 밑천이 드러남으로...)
아무튼 이때 제시하던 여러 가지 관점 중 제가 관심 있게 본 문장이 바로 이 문장입니다.
"욕망은 타자의 요구이다”(Le désir est le désir de l'Autre)"
= 일반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 아마 고 1 때로 기억납니다.
당시 기존 보건교사 선생님의 병가(?)로 대체 보건교사님이 학교에 오셨는데, 그분이 기존 보건샘과 다르게 차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삭막한 독방과도 같았던 양호실에 색다른 온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당연히 호기심이 왕성했던 고삐리들은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방문하지 않던 양호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저 또한 분위기에 휩쓸려 몇 번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선생님 읽고 있던 책과 관심이 있는 책 등을 물어봤고, 자크라캉, 프로이트 등을 심리학에 대해 관심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참고로 추천으로 읽었던 책은 '최초 흑인노벨상 수상작인, 토니모리슨의 비러브드였습니다.)
이후 도서관을 찾아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읽었을 아마 위의 저 문장이 인상이 남았었던 같습니다.(책을 다 읽거나 고교시절 일부러 다시 찾아본 적은 없습니다.)
인상에 남았던 그 말은 이후 저에겐, "타인이 나에게 자신이 바라는 나의 모습을 강요하거나 규정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저항하라!'로 전환되었고,
실력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저항하고, 태도를 지적하면 합당한 지를 살펴보고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고수했으며, 언행에 기준을 분명히 하고 목적과 의도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보다 꼰대력이 높았던 2천 년대 수많은 선배와 어른들로부터 질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기준을 가지고 목적과 의도가 있던 행동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오타니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고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위 사진은 강의 때 자주 사용하는 '오타니의 만다라트'로, 오타니가 고 1 때 자신의 분명한 미래목표를 위해 만든 계획표입니다.
창업 강의를 하다 보면 거의 모든 수강자들은 그럴싸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제2의 테슬라라던지,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던지 등등등
물론 이러한 목표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타니와 같이 현재 나(내가 서있는 위치)를 냉철하게 평가분석하고, 목표(미래)와의 차이를 가늠한 후, 그 갭을 메꾸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지를 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수행(노력)함으로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타니의 만다라트라고도 볼 수 있는 수강자들의 사업계획서는 그 수준에 한 참 미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꿈과 목표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실력일 수도,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분석력의 부재일 수도, 머릿속의 계획을 텍스트로 전환하는 페이퍼 웍의 부재 일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말하면, 그 이전에 자신의 목표가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닌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목표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너 정도면 충분히 성공하지!
너 정도면 이 정도는 해야지!!
너 정도면 이런 게 어울리지!!! 등등등
나도 모르게 주변 누군가가 했던 기대(욕망)나 응원(시선)이 목표로 변질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죠.
반면 이정후는 출발이 조금 다릅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종범 '바람의 아들'의 아들이며, 타인의 욕망과 시선을 유년시절부터 잔뜩 받은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위 이미지는 중 2 때 이종범을 강제은퇴시킨 기아에 대한 분노의 짤로 아주 유명하죠.
중학교 때까지는 평범한 선수였지만, 휘문고 입학부터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시작합니다.(아마 중2 때 분노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만...)
당시 휘문고는 훈령량이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매일 200개 이상의 보충스윙을 집 앞 주차장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스스로 훈련스케줄을 짜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오타니와 비슷하지만 이정후는 앞에서 말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를 저항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노력한 것이 저는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듭니다.
'이종범 아들은 빨라야지' - 아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주력훈련만 노력했다면 이런 타격은 안 나왔겠죠
'이종범 아들은 유격수 해야지' - 계속해서 유격수를 고집했다면 프로에서 적응 못했으며 메이저리그도 갈 수 없었을 겁니다.
'이종범 아들은 기아에 가야지' - 기아의 팀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프로에서 도태 됐을 수도 있습니다.
노력은 크게, 남의 시선을 의식한, 남이 만들어준 목표를 위한 노력과 남의 시선과 목표를 이겨내고 스스로 세운 목표를 위한 노력으로 구분된다고 봅니다.
라캉은 말합니다.
"주체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은 결합할 수 없으며, 주체는 본질적 욕망을 실현할 도구를 찾아 동일시하지만, 결합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적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는 욕망의 ‘환유적 운동"라고.
이 말이 맞다면 인간은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통해 만들어진 목표가 달성된다고 하더라도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같은 허무라면 노력을 통한 과정의 만족과, 성장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더 났지 않을까요?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인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빨간약(나의 욕망- 매트리스 속 진짜 세상)과 파란 약(타인의 욕망-매트리스 속 가상의 세상)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포기는 없습니다.
가끔 시간을 내어 자신의 내면, 그 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내가 원하는 미래,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내가 원하는 목표에 대해서 너무 바쁘고 혼란스럽고 너무 많은 목소리가 나를 감싸고 있어, 지금은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내 안에 있는 무수하 많은 나는 나에게 항상 얘기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규정한다면 저항하세요!
살아가기 위한 목표를 가지세요!
부족하면 노력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이제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지, 제가 하고 있는 '무꿍'을 때려치우고 자기 일을 도우라는 선배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초창기만 해도,
넌 화장품 하기에는 재능이 아깝다.
잘하는 거 해야지 왜 이런 거 하고 있냐.
그거 해서 먹고는 살겠냐. 등등등
애정이 담겼지만 자신들의 시선과 욕망이 담긴 많은 규정들이 오고 갔습니다.
물론 그들의 시선(바람?)대로 잘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파산직전의 어려운 고비를 넘겨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다시 굴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화장품은, 성분과 마케팅의 전성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브랜들의 과도한 마케팅은 무한경쟁 시대를 열였고 레거시 화장품들은 새로운 화장품에 밀리며, 재편되고 있습니다.
특히 하청 개념이었던 제조사들이 숏폼(성분 위주의 짧은 마케팅 유행주기) 트렌드에서 전면에 나서면서 브랜드를 추월하고 있습니다.
무꿍을 시작할 때 저는 성분이 아닌 원료를 보았고, 이를 중심으로 성장할 이너뷰티시장과 BX 트렌드를 예측하고 이를 목표로 노력해 왔고 앞으로 할 예정입니다.
여전히 자본력도 시장인지도도 계획했던 수출중심 전략도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언젠가 이 노력이 결실로 이루어져 그 소식을 이곳에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노력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