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무엇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많다.(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내 기분, 내 생각,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살아가며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 때론 별생각 없이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또 한 번씩 멈춰 서서 이게 맞나 한 번 생각해보기도 한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다가 <아무튼,ㅇㅇ> 매거진에 대한 내용을 읽는데 처음으로 생각이 든 건 '아니, 다들 저렇게 자기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한 가지(아무튼 문고에서 말하는 ㅇㅇ)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래서 내게도 '아무튼,ㅇㅇ'의 ㅇㅇ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도저히 그 딱 한 가지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 이유를 나열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그중에 가장 좋아할 만한,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생각만 해도 좋고 설레고, 피난처까지 될 수 있는 나만의 ㅇㅇ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 그걸 알게 된다면 나를 더 알게 될 거고,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까지 들어서 하나씩 정리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지금 이 순간이었다. '일요일 아침'
한국에서 일하던 때에도, 독일에서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도 내게 주말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가지 말래도 뭐가 그리 급한지 빨리도 지나가는 이틀이다. 물론 실제로도 짧지만.
독일의 일요일은 한국의 일요일과 달리,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몇몇 곳을 제외한 카페, 식당은 물론이고 마트도 문을 닫는다. 나가도 갈 곳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요일, 일요일 중 토요일은 카페도 가고, 식당을 가기도 하고, 장을 보기도 하고 밖에서 노는 날이라면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 날이 되었다.
대게는 일요일 아침에 전 날 사둔 빵이나, 일요일에도 여는 빵집에 가서 빵을 사다가 커피에 빵으로 아침을 먹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짝꿍과 나는 어떤 면에서 참 다르다. 짝꿍은 주말에는 잠 보충이 필수에,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반해, 나는 졸음이 오고, 너무 졸려 눈 아래 애교살이 퉁퉁 부어도 안 졸리다며 뭐라도 보고, 아니면 뭐라도 하려고 기를 쓴다. (그래서 이제 짝꿍은 더 이상 졸리지 않다는 내 말을 믿지 않고, 눈 아래 애교살의 붓는 정도를 내 졸음의 척도로 보고 있다)
대신 너무도 다른 우리가 다행히 무척 비슷한 건,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고 서로 하고자 하는 걸 강요하지 않는다. 가령 짝꿍이 졸리다고 해서, 옆에서 함께 잠들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거나 혼자 뭔가를 뚝딱뚝딱한다고 해도 조용히 좀 하라고 하지 않는다거나, 나 또한 나는 무언가를 보고 싶은데 짝꿍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않는 식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전부터,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다고 생각하기보다 충전의 시간으로 여기던 사람들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자가 필요한 것을 하는 데에 문제가 없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 오전 시간에 이런 패턴이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평일에는 각자 일하고 퇴근하고 만나 저녁을 먹고 같이 운동을 하고, 유튜브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영상을 보다가 비슷한 시간에 잠들기 때문이고, 물론 토요일도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토요일은 밖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집에 있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긴다.
일요일 아침, 나는 책을 읽기도 하고,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듣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끄적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손을 놓은 지 꽤 됐지만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하지만 아직도 내게 그림은 꾸준히 해보고 싶은 일이다), 더 이전에는 코딩을 배워보겠다며 온라인 클래스를 듣기도 했다. 내게 '일요일 오전'은 직장인도, 한 가족의 구성원도 아닌 오로지 '나'라는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보통은 온전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물론 각자의 하루가 다르겠지만 나와 같은 일반적인 직장인의 하루를 생각해 봤을 때 하루의 8시간, 혹은 그 이상 직장인으로서 회사의 업무를 한다. 회사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내고, 정말 운이 좋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효율을 생각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생각하며 일을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일'로서 하다 보면 싫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았고, '나는 회사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라고 한다면. 축하하고 너무 부럽다, 진심으로!)
평일 저녁 시간이 있지만, 퇴근하고는 회사에서의 업무에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왔기에, 다시 나의 에너지를 쏟기보다 쉬거나, 뭔가를 틀어놓고 앉아서(혹은 누워서) 보거나, 하기는 싫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해야 하는 운동, 업무를 위한, 아니면 생존을 위한 자기 계발 등을 택하게 된다. 또는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는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도 봤고, 본인이 원해서 타인과의 시간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원하든, 원치 안 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만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일요일 아침 시간에 하는 행위들은 내 업무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 물론 취미로 시작해서 특기가 되고, 내 생활에 도움까지 된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하는 일들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잘하든 못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하고 싶고, 해보고 싶고, 이왕이면 더 잘해보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다. 이 시간을 나는 좋아하는 것이다.
계속 일요일 아침이 내게 이런 시간일지, 혹은 언젠가 어떤 계기로 토요일 저녁이 될 수도, 또는 수요일 아침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요일이 바뀌고 아침에서 저녁으로 시간대가 바뀌더라도, 나이가 더 들고, 더 바빠지더라도, 내 삶에 꼭 필요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이 시간만은 소중히 지켜주고 싶다.
나는 일요일 아침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