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 2월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아이돌이 나보다 어린 나이라는 데 놀란 지도 벌써 한참이 되었고(나보다 어린 나이가 아니라, 진짜 옛날 어른들 말처럼 결혼 일찍 해서 아이가 있었으면 딸뻘. 이 표현 진짜 아저씨 같다), 내가 대학교 들어갈 때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역시 가만히만 앉아있어도 얻어맞는 건 나이고, 훈장이라기보다 과속 딱지 받는 느낌이다.
나이는 가만히 있으나, 바삐 보내나 어차피 먹어지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성장'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학교나 학원에서 학문적인 것들을 배우고, 또 집에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절, 사회적인 역할 등을 배워가듯이 나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감성 학교'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그 감성 학교가 어렸을 때부터 형제, 자매와 함께 듣던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영화, 드라마가 될 수 도 있고 혹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장소일 수도 있다. 내게는 그런 곳이 '명동'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른바 '클리셰적인' 남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축구, 농구 등의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게임을 못하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그때 나름 겪어야 했던 입시 스트레스에 시름하고 있을 때, 혼자서 찾아갔던 곳은 명동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는 명동성당 근처로 가면 독립영화 상영관인 '스폰지 하우스' 명동 중앙점이 있었고, 서버의 대부분이 일본사람이었던 명동 롯데 백화점 건너편 돈카츠집(괜히, 돈가스라고 하고 싶지 않다) '가츠라', 명동에서 MP3에 담은 노래를 들으며 걸어간 종각역의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책을 사서, 종로 3가 근처의 체인점이 아닌 곳 중 가장 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은 '카페 뎀셀브즈'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조금(아니 솔직히 많이) 서글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 검색하다 보니, 나열한 모든 곳이 폐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스폰지 하우스'나 '가츠라'가 꽤 오래전에 폐업한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반디앤루니스와 최근에는 카페 뎀셀브즈마저 폐업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워낙 상권이 자주 바뀌는 곳이기도 하고, 사실 고등학교 때면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이기는 하니 그럴 만도 하지만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어쨌든, 그 당시 내게 여러모로 지금의 나로 자라는 데 큰 영향을 끼쳤던 곳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름 그 당시에는 치열했던 고민들을 이어폰을 끼고 거리를 걷는 걸음걸음에 녹이기도 하고, 책 속에서 답을 찾아보기도 하고, 영화를 보며 잠시 잊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곳에는 내 '처음'이 많이 녹아있었다. 일본 여행 가이드인 이모를 따라 처음 가 본 가츠라는, 당시에는 이런 표현도 없던, '혼밥'을 시작했던 곳이었다. 아직도 내 기억 속 최고의 가츠동(일식 돈가스 덮밥)을 파는 곳으로 남아있고, 분명 좌식 테이블로 보이는데 앉았을 때 발 쪽이 뚫려있어 마치 의자에 앉은 듯한 형태의 식당을 가 본 것도 그곳이 처음이었다. 가츠라는 대학생 때까지도 찾아가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체인점 형태의 식당으로 바뀌더니 맛도 분위기도 변해서, 발길이 뜸해지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폐업을 한 후였다.
혼밥과 더불어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혼자 영화 보기)도 명동 성당 근처에 있었던 독립 영화 중심의 상영관인 스폰지 하우스에서 처음이었다. 커트 코베인의 죽기 전 마지막 날들을 다룬 '라스트데이즈', 지금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렛미인'의 스웨덴 오리지널판 등을 봤던 극장이었다. 역시 지금은 아쉽게도 건물 자체가 허물어지고 증권사 자리에 있지만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은 극장이기도 하지만, 어디 내놓기 영 부끄러운 에스프레소 첫 경험을 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에스프레소 한잔 시켜 설탕 한 포 넣고 휘휘 저어 한 입에 탁 털어 넣는, 개인적으로는 초콜릿보다 더 좋은 디저트라는 걸 이탈리아에서 몇 번이나 마셔보고 팬이 되어 알고 있지만, 고등학생인 나는 무슨 생각인지 호기롭게 뭔지도 모르고 주문해서 받아놓고는 당황했다. 전문 카페가 아닌 극장 안에 있는 카페이다 보니 에스프레소 전용 잔도 없고, 일반 테이크 아웃 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줬고 나는 받고, 뚜껑을 열어보고 그저 뚝딱이가 되었다. 순간 직원에게 이게 에스프레소 맞냐고, 물을 넣어야 하는 건지 물을 뻔했지만 도저히 사춘기 감성의 나는 '쪽팔리기'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데 내가 장담컨대 그 직원은 내가 당황한 걸 알았다.)
설탕이라도 좀 넣어서 먹지, 원래 매번 마시던 걸 마신다는 듯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아, 어쩌면 그때 인생은 쓰구나 라는 걸 처음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내적 표정은 오만상 찡그린 표정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그대로 나는 그 컵을 들고나갔다. 도저히 못 마시겠는데 그렇다고 카페 안 쓰레기통에 버리면 모르는 티가 나지 않겠는가.
그 이후로 한동안 내게 에스프레소는 '에베베 지지', 못 마실 거였다. 그래도 그때 나는 에스프레소가 뭔지 모르는 고등학생에서, 적어도 에스프레소가 정말 쓴 맛이 난다는 건 아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저 좋았다. 에스프레소라는 걸 마셔봤다는 경험치가 하나 쌓였다는 데에.
나는 지금도 흔히 말하는 괴식까지는 아니라면,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고 맛보는 데 긍정적인 편이다. 찍어 먹어봐야 맛있는지 맛이 없는지, 내 입맛에는 맞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에스프레소 경험이 이런 내 성향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좀 장황하기는 하지만 더 나아가, 이것 저것 배우고 해 봐서 나쁠 건 없다는 삶의 태도에도 이런 경험들이 녹아있지 않을까 싶다.
독일에서 살기 시작한 후로 한국에는 딱 두 차례 갔었는데, 두 번 모두 명동은 빼놓지 않고(라고 하기에는 두 번뿐이지만) 갔었다.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코로나 이전이라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 생겼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코로나가 휩쓸고 간 거리라서 폐업을 한 곳이 너무 많았고, 빈 점포도 많았다. 아마 올해 한국을 방문하면 또 달라져있겠지.
이미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테지만 그 근처를 걸을 때면 과거의 내가 생각나고, 그때보다 이만큼 나도 변해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변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명동 거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기도 했다. 명동성당 아래 상가에는 '커피 리브레'가 있다. 산미 있는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그곳에 가면 아이스 라테를 한 잔 시켜 마시고,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테이크아웃해서 들고나갈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내 입맛에 정말 잘 맞는 곳이고 그 아래층에는 밤식빵과 딸기 케이크로 유명한 '르빵'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추억이 담긴 곳들, 혹은 한 번쯤 가보고 싶을 만한 곳들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내게 명동은 생각하면 설레기도, 거리를 걸으며 홀로 외로워하던 내가 생각나 짠해지기도 하는 곳이며, 여러면으로 경험을 더해주고, 어쩌면 지금 나의 감성을 만들어준 학교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명동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