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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살 Feb 12. 2023

나는 '빵 만드는 걸' 좋아해 -1.

내 첫 제빵 경험은 그대로 마지막이 될 뻔했다.


 감히 내가 하는 행위를 '베이킹'이라고 할 수가 없다. '좋아한다'라고 말하기에는 또 자주 해보지도 못했고, 잘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좋아한다라는 게 꼭 많이 해보고, 잘해야만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감히 '베이킹을 좋아한다'라고는 말하기에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빵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적어본다.


 사실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독일에 와서 짝꿍과 살다 보니, 시작하게 된 일 중 하나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첫 빵 만들기 경험은 아마 고등학교 때였나, 대학교 때였나 그쯤이었다. 우리 집에는 오븐이 없었고, 부엌에 오븐이 빌트인 되어있는 새 집으로 이모가 이사 갔을 때 처음 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모는 엄마의 막내 동생으로 학생 때부터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며 내가 태어났을 즈음부터 장사하시는 부모님 대신 나를 거의 키우다시피 했었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니, 이모가 새 집으로 이사를 갔고 거기 오븐이 있는데, 왜 당신이 빵을 만들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누군가 떠올릴까 싶어서,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기에 가능하다고 이해했으면 해서다. 허허.


 그때 내가 처음 도전해 본 건 가장 기본이라는 식빵도 아니고, 모닝빵도 아닌 구운 크로켓이었다. 그때 왜 그게 해보고 싶었는지, 한국이었다면 사 먹어도 충분했을 법한 빵인데도 왜 도전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이 선명하다. 속재료라고 만든 갖은 야채 샐러드는 익지 않았고, 특히 방울토마토를 넣었는데 물기로 인해 반죽도 축축해졌다. 빵은 발효가 되지 않아 내가 만든 게 돌덩이인가 싶을 정도로 딱딱해졌고, 겉은 까맣게 탔다. 분명 그때도 레시피를 찾아보고 했겠거니 싶기는 한데, 또 생각해 보면 레시피를 찾아보고 했는데도 저렇게까지 망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만든 게 아닐까 싶기는 하다. 내 첫 제빵 경험은 그대로 마지막이 될 뻔했다.


최근 가장 성공작이 아닐까 싶은 무화과 피칸 통밀빵.


다시 빵을 만들게 된 건 결국 '궁해서'였다.


 아니, 사실 마지막이 되었었다. 나는 이런 쪽에는 정말 재능이 없구나 싶어서 빵을 만든다는 것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다시 빵을 만들게 된 건 결국 '궁해서'였다.


 나는 엄청난 대식가까지도, 그렇다고 맛있는 것만 찾아먹는 미식가까지도 아니지만 먹는 즐거움을 인생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둔다. '먹살'이라는 필명 혹은 예명을 둔만큼 '살기 위해 먹는 타입'보다는 그래도 '먹기 위해 사는 타입'(좀 과한 감은 있지만)에 보다 더 가깝달까? 한국에서 취직을 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가끔 힘든 일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래, 참자. 이거 잘 참고 월급 받으면 맛있는 거 사 먹을 수 있어라는 생각도 자주 했을 정도니까.(물론 그와 별개로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는 했습니다만 ^_^;)


 그런데, 밥보다 빵이 주식인 유럽에 오니 빵은 정말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한국 빵이 그리워졌다. 한국의 빵 스타일은 기본 빵 사이에 뭔가를 껴넣거나, 혹은 올리거나, 아니면 뭐라도 더 박아 넣는다.(아, 한국인의 정) 사실 좀 과한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한국의 다양한 맛의 빵이 그리워져서,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2026년을 강타할, 마카롱-약과-스트로베리 크림-앙버터 도넛 (농입니다 ㅎ) -by 먹살.


 오븐에 넣을 때마다 심사대 위에 올라서는 기분


사실, 좀 더 정확히는 독일빵에 지쳐버렸다. 독일의 빵은 너무 기본에만 충실한 게 아닐까 싶은 그런 맛이다.(적어도 내게는) 이 빵맛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참 많지만, 당장 멀지 않은 프랑스 파리에만 가도 입에 넣으면 오버 좀 해서 입안에 축제가 벌어지는 빵이 그렇게 많은데. 독일 빵은 입에 넣으면 소소-하니, 그저 조용-하니 마치 독일 사람들 같다. 혹은 케이크를 사 먹어봐도, 극단적으로 달다. 케이크니까 달달 한 건 맞는데 극단적이다. 중간이 없는 느낌(이것도 주관적일 수는 있지만, 과연 주관적의견 일까ㅎ)

 그래서 이것저것 한국에서 먹었던 것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먹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떠올리며 만들게 된 것이다.


 만들다 보면, 감이 언젠가 잡히겠거니 했는데 빵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시간도 많이 필요한 데다가 오븐에 넣을 때마다 심사대 위에 올라서는 기분이다. 오븐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면 망했으면 그대로 망한 거다. 찌개 끓일 때나 파스타 만들 때와 달리 소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시도해 봤던 빵은 다름 아닌 스콘이었는데, 한창 코로나로 여행은 물론,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할 때 아마존에서 주문했던 스콘 믹스로 만들었던 게 처음이었다. 스콘 믹스는 그저 큰 볼에 믹스 가루를 붓고, 우유를 적당한 양 부어 적당히 치대다가 동그란 그릇으로 찍어 눌러 위쪽에 계란물 묻혀 오븐에 넣고 나면 짜잔- 끝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혹시 내 손이 그렇게 따뜻했던 이유가 이렇게 빵을 만들기 위해서였나. 혹시 내가 그 만화에 나오던 '태양의 손'의 주인공이 나인 걸까 싶었다.(각주: 잠시 오타쿠적 모먼트, 여기서 그 만화는 따끈따끈 베이커리입니다. 선택받은 제빵사가 가졌다는 태양의 손은 손이 뜨거워서 밀가루를 반죽하는데 훨씬 유리하다고 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애니메이션 한 번 보시길ㅎ)


 믹스 없이 밀가루, 버터, 우유에 계란, 소금 등 직접 배합을 해서 만들어보는데 반죽 온도가 높아지며 떡져서 버리고, 이번에는 떡지지는 않았는데 오븐 온도를 잘 못 맞춘 탓인지 겉은 타버리고, 속은 안 익고, 다시 도전했을 때는 온도가 올라가지 않게 스크래퍼로 잘 반죽하고 온도도 잘 맞췄는데, 성급하게 반죽하다 보니 제대로 반죽이 되지 않아 파스스 부서졌다.


 사실 이 정도 스트레스에, 좌절감이면 제빵은 안 하는 게 맞고, 나랑 안 맞는구나 인정하는 게 더 낫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도 쌀식빵을 만들겠다고 발효시켜놓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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