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에세이
거리는 이미 캄캄했다.
손가락을 대면 흑연가루가 묻어 나올 것 같은 낯선 어둠이었다.
달려가는 자동차의 라이트가 비칠 때마다
언뜻언뜻 상가 거리의 윤곽이 드러났다가 사라져 갔다.
~
밤은 비린내가 나도록 낯설고, 너무나 길었다.
- 25p
글쓰기 앞에서 직면하는 공포는 삶에서 경험한 모든 공포에다
관념적인 공포까지 다 끌어 모아 합한 것처럼 막강하다.
여러 날 동안 노트북의 텅 빈 화면 앞에서,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할 때, 전날 쓴 것을 모두 지워 버린 뒤에,
피가 마르듯 강박적이고 숨이 막히도록 직접적이며 물러설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완강한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몇 퍼센트의 실패든, 늘 표현의 실패는 기정사실인 것이다.
- 79p
저마다의 글은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심지어 여행하는 동안에도
나는 이 글이 내게 요구하는 바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객관화된 여정과 적정 수준의 내면 고백이 적당히 교차하는
도식적인 글을 써 내리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땐,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고 더욱 불가능해졌다.
내 속의 무언가가 저항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얼마나 말하고 어떤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거리를 먼저 정해야 했다.
- 267p
내 속의 영원한 것....
그건 동경이다.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희부연 길 끝을 향한
하염없는 응시가
어린 시절 내 의식의 전부이다.
그것은 어쩌면 앞이 보이지 않는
먼지 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다.
건조하고, 아프고, 허무하고,
무용한 것들로 가득 차고,
또 텅 비었으며, 고요하고 먹먹한,
이 먼지 구름을 지나며
내가 느끼는 것,
상상하는 것, 한순간 섬광처럼
보였다 지워지는 것,
뒷모습도 없이 나와 결합하고
무너져 버리는 것들,
내 심장을 후벼 파
점막의 붉은 살점을
들고 나가 버리는 것들,
갓길에 허리를 꺾고 앉아 통곡하게 만드는 것...
-2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