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해준 Jan 23. 2024

인도방랑 - 후지와라 신야

인도 여행서의 고전

여행은.....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랄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지금은 인도 여행을 하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80년대만 해도 인도 여행은, 양탄자를 타고 알라딘을 보러 가는 것만큼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89년부터 시작된 해외여행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카레'로 상징되는 낯설고 신기한 나라를 직접 가보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특히 90년대 중반 티베트 불교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한국에서 낭만적인 인도 여행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남자도 가고, 여자도 가고, 그룹으로도 가고, 혼자도 가고, 패키지, 배낭여행, 중년, 청년 모든 한국인이 인도에 있는 것 같았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나는 체류 한국인 십 수명과 김밥, 잡채, 갈비 등 황송한 12첩 반상을 대접받으며 한인회를 가진 적도 있었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인도와 함께였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현실이 거기 있었다.

축제는 끝났고, 불은 꺼졌다.

밖에서 무지개 꿈을 꾼 만큼 이곳은 어두웠다.

영혼의 나라 인도로 가면 해답이 있을지 알았지만, 돌아와 보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삶은 여전히 고되고, 회사 생활은 늘 사람들과의 싸움이었고, 밥벌이는 언제나 나를 숙이고 참아내야 하는 고행이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청춘의 열병도 식어 버렸을 때, 알게 되었다.

<인도방랑>이라는 여행서가 있다는 것을.

일본 작가가 쓴 이 글에는 환상이 없었다.

살갗과 터럭과 생채기가 그대로 들여다 보이는 인도.

일본에서는 1972년에 나왔지만,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9년.

읽으면서, 이 책이 왜 인도 여행기의 고전인지 알 수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문장은 간결하고 단순하다.

화장터와 죽음, 시신 등을 도외시하지 않고 물질문명, 산업화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다룬 점에서 어린이용은 아니다.

하지만 글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단어는, 초등학생이면 알 수 있는 정도이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누구나 아는 단어지만, 그 단어들의 배열로 가슴속의 무언가를 꿈틀대게 한다.

꾸밈이나 기교 없는 단순한 문장이지만 어떤 울림, 진실, 간절함 같은 걸 전해준다.

왜일까?

다시 한번 문장을 읽어본다.

산문이지만, 운율과 연결에서 '시'에 가깝다.

문장들을 여러 번 읽다 보니, 어느덧 글을 쓴 사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인도를 떠돌던 그가 얼마나 치열했고 절망하고 좌절했는지, 얼마나 갈망하고 찾기 원했는지.


그의 여행은 이방인의 인도 체험이 아니라, 인도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인도인과 다름없이 먹고, 자고, 입었다.

화장터에서 시신을 먹는 개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도 있었고, 돈이 없어 자신에게 있는 물건들을 팔아가며 여행을 하기도 했다.

1969년 산업화의 정점을 달리던 일본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절망하고 떠난 한 젊은이는, 원시의 땅을 방랑하며 문명과 산업화에 물들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낸다.


그것은 자유라고 할 수도 있으나, 관념적인 의미가 아닌 원초적인 즉물성(卽物性)에 가까운 것이었다.

밖에서 강요된 것, 교조화되어 습득되는 것, 따라야 하는 도덕 규율 등에 그는 철저히 저항했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 충실했다.

시야에 들어온 사건과 사물의 펼쳐짐, 그에 따라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들을 어떤 편견이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해 나갔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연에 가까웠다.

거대한 바냔나무와 몸집 큰 코끼리, 구름과 숲, 대지와 바람...

비참하거나 천하거나 고귀하거나 부유하거나, 만나는 모든 사람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화장터에서 태워지는 시신과 뼈, 그것을 먹고사는 개들마저도.

자신을 둘러싼 일체의 환경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 시선은, 노장사상의 물아일체적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작가는, 그 대상만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낸다.

그것이 추하든 천하든 거칠든 악하든, 판단하지 않는다.

모든 대상은 자신만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추한 아름다움'이나 '악인(惡人)의 선(善)'과 같은 모순적인 미학이 드러난다.

도덕성이나 상투성에서 벗어나, 모든 대상으로부터 독특한 미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유미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논리를 배반하는 반어적인 스토리와 뜻하지 않은 결말이 나타난다.  

어떤 인과 관계와 맥락상의 결과를 예상했던 나는, 의외에 결말에 '멍' 하곤 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좁은 공간이 사방으로 확 펼쳐지며, 위에서 지도의 한 점을 내려다보는 확장의 느낌이라고 할까.

 



이 나라는 빈곤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물질적 빈곤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열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열이라는 이 하나의 생명의 근본이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관리되어가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 나라의 열에 들떴다. 그리고 나는 이 지상에 있는 생명의 존재 장소를 분명하게 보았고, 아울러 내 생명의 존재 장소도 분명하게 보았다. 그것은 내 이십대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이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스물넷에 대학을 뛰쳐나와 세계방랑에 올랐다.

그리고 조국 일본이 잃어가고 있는 어떤 근원의 에너지, 생명력을 인도에서 찾았다.

그리고는 서른아홉까지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티베트 방랑> <아메리카> <동양기행> 등의 여행서를 냈다.

모든 사진을 스스로 찍은 그는 사진으로도 명성을 얻었고, 여러 에세이집으로도 사랑받았다.

어릴 때 아톰 코난 등의 일본 만화를 좋아했으나 역사를 알면서 점점 일본에 거부감을 가졌던 내게도, 이 작가만큼은 하나의 예외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그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형성하는 하나의 장난감일 때, 나는 그저 내 몸속에 깃들인 그 기묘한 느낌을 견디면서 또다시 황무지를 향해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의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 양극화와 분리성이 심해진 것 같다.

사람들은 나나 내 가족만 생각하고, 어린아이도 집 평수와 자동차 브랜드를 따지며, 사회와 단절된 이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세태 속에서 후지와라 신야가 일생 동안 치열하게 지켜온 하나의 핵, 자연과 인간을 동일한 풍경의 일부로 본 동양적인 정신은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 전경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