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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기억, 함께하는 추억

by 클라우드나인

나는 혼자 뭔가를 하는 것에 익숙하다. 19살때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연애를 해 온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고 때로는 나의 혼자 하는 능력치에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랑도 놀지만 혼자 새로운 곳에 당일치기로 간단한 여행을 다녀오거나 혼자 카페를 가고 밥을 먹는 일을 즐겼다. 그래서 처음 '혼밥'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혼밥을 하는 게 일종의 뻔뻔함을 지닌 상태를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해서 불쾌하기도 했다. 물론 혼자 밥을 먹어도 내 앞에 있는 음식과 오로지 나에게만 온 신경이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대화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풍경에 시선이 간다. 그러나 혼밥을 한다는 것은 내가 주변을 보는 정도가 타인이 나를 볼 것이라고 예상하는 정도보다 커서 편안함을 느끼는 와중에 가능하다. 밥을 먹는 동안에 입으롣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되고 누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전전긍긍한다면 이 사람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혼밥을 하기보다 굶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여행도 혼밥과 비슷했다. 항상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나와 달리 주변의 친구들은 다양한 이유로 혹은 그냥 나처럼 여행에 대한 욕구가 많지 않아서 항상 함께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꼭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었고 오히려 그 편을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나와 너무나 잘맞거나 함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굳이 나의 아까운 시간을 함께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 1~2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혼자 여행을 다녔다.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스무살 때부터 혼자 척척 캐리어를 끌고 혼자 여행 다니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신기해하곤 했다.


얼마 전 남편과 대화하다가 '우리는 서로가 같은 풍경을 함께, 가장 오래 본 존재들'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남편에게는 우리가 거의 대부분 항상 (연애 이후로) 같은 풍경을 함께 보아 온 존재들이란 점에 깊이 감명을 받은 듯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본 무언가를 함께 본 누군가가 있다는 게 참 좋구나. 우리는 과거 민망한 실수를 했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100번쯤 다시 묘사하면서 함께 깔깔거리고, 비바람을 뚫고 갔던 잊지 못할 식당에서의 만찬을 이야기하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행복했던 공기와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면서 이야기들은 실제보다도 훨씬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진다. 우리는 기억할만한 일들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다시 선명하게 그 일들을 경험한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면 '추억'이 만들어진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로 설명될 수 있다고 했던가, 잘 생각해보면 내가 다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전의 추억 때문이다. 물론 그런 점에서는 '기억'도 비슷하다. 기억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체성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무궁무진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경험과 감상이라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그 느낌까지 이해시키고 공감받기는 쉽지 않다.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거의 각자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붙어 있다 보니 함께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나의 26살때부터의 모든 시간을 남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나와 함께 추억한다.


여전히 나에게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거부감도 없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혼자하는 것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고 때로는 혼자 해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왠만하면 '혼밥', '혼여'에 한해서는 내 기억을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게끔 하는 추억을 쌓고 싶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시간이 흘러 우리가 바라봤던 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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