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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짱구의 에어비앤비 숙소

JoJo's home.

by 클라우드나인

조조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인데다가 비가 많이 내려 엄청 어두운데다가 정신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내 눈에 먼저 띄었던 것은 조조의 환하게 웃는 미소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넓은 풀장도 아니었다. 집 앞 대문에 자리잡은 노란색 열매가 포도송이 모양으로 주렁주렁 달린 나무였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열매가 짙은 노란색이었는데, 첫날 밤에는 어두운 조명 때문에 열매들이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으로 보였는데 그게 그렇게 탐스러워보였다.


현관문 까지는 그렇게 내 맘에 들었다. 맘 속으로 '일단 오케이, 여기까지 좋아' 라고 말하며 짐을 들고 총 3채 중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 우리 독채 숙소로 향했다. 통유리로 된 양문을 개방하자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넓직한 공간이 나타났고 중앙에 자리한 침대 머리맡에는 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까무잡잡한 소녀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발리 공항에 내려서 유심 갈아끼우기, 세관신고, 짐 찾기, 택시 부르기, 숙소 도착까지 너무 스무스하게 이루어져서 들뜨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참이었다.


항상 숙소에서 침대를 보고 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남편이 숙소의 다른 것들을 살피는 동안 침대의 왼쪽과 오른쪽(혹은 안쪽과 바깥쪽) 중에 내가 어디에서 잘 것인지 빠르게 마음 속으로 정하고 말로 뱉어서 선점하는 것이다. 보통 침대에서의 위치를 정할 때 나만의 확고한 룰들이 있는데, 가장 먼저 적용되는 우선적인 룰은 침대가 벾과 붙어 있는지 여부다. 일단 침대가 벽에 붙어 있으면 나머지 룰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무조건 바깥쪽이다. 벽에 침대가 붙어 있으면, 그 붙어 있는 쪽 안이 뭔가 지저분할 것 같고 먼지들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나의 의심병이 도지기 때문이다. 근데 만약 침대가 그냥 양쪽 다 벽과 거리가 있는 구조라면 3가지 룰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적용된다. 1) 현관문과 가까운 쪽인지, 2) 콘센트 혹은 협탁이 침대 옆에 있는지 여부, 3) (혼자 자는 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오른쪽인지. 이렇게 3가지 룰이 동시에 맞아떨어지면 정말 그 자리는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하는 거고 만약 다 충족할 수 없다면 머릿속으로 얼른 잘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고 더 편안한 자리를 고르곤 한다.


항상 그랬듯이 이 날도 침대를 확인하려고 시선을 돌린 순간, 내가 원하는 침대 자리 프레임 위에 벌레가 있었다.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검지와 중지를 합친 정도는 거뜬히 뛰어넘을 정도의 크기였고 특히 극혐이었던 부분은 그 벌레가 약간 검정색의 광택이 나는 통통한 메뚜기처럼 생겼는데, 머리 위쪽에 달린 더듬이가 진짜 엄청 길었다는 점이다. 지금 다시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 벌레놈의 비쥬얼이 기억나서 속이 안 좋아질 것 같은데, 걔가 규칙적으로 더듬이 두개를 번갈아 앞뒤로 움직이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이라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소개해주는 숙소 설명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호스트의 숙소 소개가 끝나갈 때쯤, 민철이를 살짝 친 다음에 고갯짓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민철도 바로 그 벌레를 발견하고나서 속으로 나름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우리 둘중에서는 무조건 자기가 저 벌레를 처리하게 될 텐데 자기는 절대 잡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 순간 최민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뻔뻔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은 채로, 방금 눈길을 돌리다가 벌레를 발견하고 너무 놀란 말투로 호스트 JoJo에게 물었다. "Excuse me, Is there a bug?"


JoJo가 진심으로 당황한 건지 아니면 쵬철이 뻔뻔하게 연기한 것처럼 똑같이 이런 상황을 여러 번 연기해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네 숙소에서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곤충과 도마뱀 등이 일상에 즐비한 발리에서는 거의 모두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고 손으로 부드럽게 잡아서 밖에 놓아주는 그런 애니메이션 같은 그림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JoJo는 나의 상상을 짓밟고 호들갑을 떨며 휴지를 한 10장쯤 꺼내들고(뭔가 JoJo 아저씨도 좀 무서웠던 듯?) 최대한 능숙하게 우리에게 별 일 아니라는 제스처로 벌레를 잡으려 했는데 벌레는 상당히 빨랐다. 최민철이 눕게 될 자리로 벌레가 떨어졌고, JoJo는 또 다른 호스트인 Herik을 다급히 불렀다. 이 긴박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도 JoJo는 이 벌레가 바로 숙소 옆에 있는 카페에서 온 것 같다며 갑자기 죄 없는 카페 탓을 했다. Herik(H이지만 에릭이라 부른다)은 날카롭게 생긴 빗자루 같은 것을 들고는 왔으나 벌레를 보고 시크하게 발로 바로 밟아 없앴다. 벌레 소동이 끝나고 호스트들이 문을 닫아주고 나간 후에도 그 벌레의 영혼과 함께 이 방에 갇힌 느낌이 들어 가방을 내려놓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걱정되거나 불안할 때마다 민철에게 반복적으로 확인받으면서 안심하곤 한다. 저 날도 "여기 꺠끗해? 벌레 나한테 안 와?"를 10번쯤 물어보고 잘 준비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2차 사건은 여기서 벌어진다. 보통 발리 숙소에서는 큰 베개 두 개, 방석같은 작은 베개 하나를 놓던데 나는 목이랑 어꺠가 심각하게 아프기 땜에 작년부터는 집 밖에서 잘 때도 베개를 들고 다닌다. 부드럽고 높은 베개를 베고 자면 바로 다음날 디스크 떄문에 두통과 속까지 안 좋아지기 떄문이다.


이 숙소에서도 원래 있떤 베개를 옆으로 치워두고 내 베개를 놓으려고 베개를 들었는데 뭔가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하얀색 시트 위에 갈색의 기억자 모양의 무언가가 내 베개 밑에 놓여 있었다. 순간 나의 공포가 자극되면서 쵬철을 연이어 여러 번 불렀고, 떨면서 물었다. "혹시 저거 벌레 다리야...?" 쵬철은 바로 나의 몸을 반대쪽으로 돌리고 눈을 가렸다. 벌레를 끔찍히 싫어하는 쵬철이지만 이건 자기가 치울 수 밖에 없다는 걸 직감했는지 바로 휴지를 뽑아들고 그것을 치웠다. 벌레가 우리 방에 있었더라도 우리 눈에만 안 보이게 잘 숨어있거나 최소한 침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걸... 첫 날 그 벌레를 목격한 이후로 그게 유일한 숙소의 단점이자 묵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벌레 다리가 목격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난 절대 내 머리를 놓을 수 없었고, 잘 때만 되면 쵬철에게 내 쪽으로 가까이 오라고 강요했다. 쵬철은 자기가 벌레 있던 자리 다 뭉개고 있으니 괜찮다고 끊임없이 날 안심시켰다. 사실은 그냥 예쁘고 가성비까지 좋은 짱구의 에어비엔비를 소개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레 에피소드가 대부분을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 숙소는 (나에게만 치명적이었던 벌레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극찬을 부르는 장소였기 때문에 벌레 에피소드와 별개로 숙소는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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