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것은 일상과 닮아 있다.
여행을 떠나는 과정은 일상적인 일들과 어떤 면에서 닮아 있다. 특히 일정한 순서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간에 맞춰 공항 버스를 타고,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 짧으면 3-40분, 길면 2시간까지도 걸리는 이 절차들은 여행을 가려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다음에 어떤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 상태에서 하염없이 서 있는 이 시간들이 너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큰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도 있다. 마지막 여권 검사까지 끝나고 면세점으로 가는 자동문이 열릴 때의 그 해방감, 약간의 자유가 더해진 그 느낌은 이전의 지난한 줄서기의 기억들을 지워준다. 우리가 회사에 출근할 때도 항상 걸어가는 역까지의 같은 길을 따라 매일 비슷한 지옥철의 풍경을 거쳐 자리에 앉는다. 커피와 마실 물을 셋팅하고 노트북을 켜고 밀린 메일을 체크하면서 본격적인 업무 준비를 하는 그 과정도 여행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면세점에서는 살 게 없어도 기웃거리며 여러 매장들을 구경하거나 내가 주문한 면세 물품을 찾거나 탑승시간 전에 마시는 커피가 주는 이 시간들은 본격적인 해외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꽉 찬 설레임을 주는 부분이다. 사실 여행 전체를 놓고 볼 때, 모든 순간들을 아주 잘게 뜯어보면 일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일상과 가깝다. 커피를 마시고 택시를 부르고 수영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들 말이다.
여행이 아무리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것이라 한들 모든 순간이 신나고 재밌고 낯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상과 비슷한 그 모습들은 전혀 다른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또한,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잘 알지 못하는 길에서 어떤 영감과 아름다움, 귀여움, 재미의 순간을 맞닿뜨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여행의 설레임으로 기억한다.
특히 비행기에 타서 맑은 창 밖으로 펼쳐진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구름 위를 방방이처럼 엉덩이로도 떨어졌다가 두 다리로 폴짝 뛰는 상상, 어렸을 때 초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책상 서랍에 넣어놓고 돌려봤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를 연상하는 것, 구름을 이리저리 휘핑크림처럼 휘저어 입에 넣으면 참 맛있겠다는 상상 등 말이다. 어느 정도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와야겠지만, 그 한계, 제한이 없다면 나의 이 설레임도 낯섦보다는 일상에 가까워지면서 사라질 것이다. 나의 일상과 다른,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경험해본다는 게 마치 티비 프로그램 "oo의 3일" 같이 느껴진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코노미 좌석을 타고 혹여나 뒤에 앉은 사람에게 피해줄까봐 많이 젖히지도 모사고 어정쩡하고 불편한 잠을 청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