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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여유

아빠의 눈이 닿아 있는 곳, 나비

by 클라우드나인

발리에서의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리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들이 꽤 있다.

덜컹거리는 지프차를 타고 목을 90도로 꺾어가며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던 것,

산소통을 메고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 침몰한 배를 구석구석 살피던 나,

해변가의 타오르는 석양을 배경으로 폴짝 폴짝 뛰며 사진을 찍던 우리,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던 요가원 등등.


그 중에서도 정말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은, 별 게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바로 아빠가 한 나비가 날아서 멀어져 가는 것을 쳐다보던 그 30초 남짓한 시간이다.

아빠는 평소에 진짜 산만해서 ㅎㅎ 오랫동안 집중하는 걸 어려워 한다. 한 번은 가족들끼리

다 같이 양양 비치에서 서핑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보드 위에서 침착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아빠만 유독 허둥지둥대면서 서 있는 걸 어려워 했고, 난 아빠가 산만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특히 일적으로는 아빠가 자신의 집중력을 쏟아붓겠지만, 일상에서 뭔가를 즐길 때는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 자극적이거나 흥미를 끌 만한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 날은 햇살이 쫙 내리쬐는데 너무 습하지 않아서 살에 닿는 햇빛이 따뜻하고 기분 좋다고 느껴지는

날이었다. 발리 우붓 숲 속에 있는 ㄱ자 독채 3채 사이에 둘러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그 때 다 같이 뭘 시켜 먹고 있었나 했는데 그 때 작은 노란색 나비가 아빠 눈 앞을 지나쳐서 포롱포롱

날아갔다. 아빠는 빛나는, 그러나 여유로운 그 눈으로 나비가 멀리 사라져서 더 이상 쳐다 보는 게

의미가 없을 때까지, 나에게는 꽤나 길게 느껴진 그 시간 동안 나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비를 쳐다보는 아빠를 쳐다보며, 이 순간이 나한테 오랫동안 기억되겠구나 하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어떤 여행지던 그 장소에 누구랑 가는지, 또 어떤 경험을 하는지는 천차만별이다.

발리는 내게 여러 가지로 즐거움을 안겨준 여행지이지만, 아빠의 여유로움을 발견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작은 선물 같은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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