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하는 데 있어서 만약 딱 한 개의 타고난 조건을 가질 수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주저 없이 턴아웃을 선택할 것이다.
8년간의 발레 전공 이후 진로 변경 끝에 의사가 되었다. 발레를 그만둔 지 15여 년이 흘렀고, 그동안 나는 여느 현대사회인과 같이 거북목, 말린 어깨, 허리디스크, 뻣뻣한 팔다리를 갖게 되었다.
진로를 변경한 데에는 나의 애증, "턴아웃"의 지분이 매우 컸다. 발레는 외적으로 보이는 예술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신체조건이 타고난 사람이 거기에 노력을 더해 성공할 수 있다. 발레의 세계는 신체조건이 좋지 않다면 이미 예선 탈락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혹독한 곳이다. 그래서 전공생 시절 나는 정말 턴아웃이 잘 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단 하루만이라도 턴아웃이 잘 되는 몸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어린 내가 간절히 염원했던 것처럼 정말 "턴아웃만" 타고났더라면 다 잘할 수 있었을까?
더 발전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 정해둔 한계에 나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놓치고 있었던 본질은 무엇일까?
턴아웃이 잘 되는 고관절만이, 쏙 들어간 무릎만이, 앞으로 튀어나온 발등만이, 깡마르고 긴 팔다리만이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조건이라 생각하며 그것에 울고 웃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발레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이 작은 발걸음이, 발레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작은 공감과 위로, 따뜻함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