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lberrina Apr 01. 2023

1. 턴아웃에 대한 소회

모든 발레 동작은 턴아웃을 기본 전제로 하며, 턴아웃으로 시작해서 턴아웃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y the turnout, of the turnout, for the turnout" 그 자체이다.


"뒤꿈치 더 앞으로"
"발목도 돌리세요"
"종아리를 더 돌려서"
"무릎을 바깥으로"
"골반부터 열어서"
"엉덩이를 꽉 조여서"
"허벅지부터 바깥으로 돌려서"
"안쪽 허벅지를 꺼내서"


발레 수업에서는 턴아웃과 관련하여 위와 같이 다양한 설명을 듣게 된다. 또 수업 중간중간에 턴아웃을 만들어주시는 선생님의 손길도 느낄 수 있다. 골반 부위를 바깥으로 여는 방향을 짚어주거나, 엉덩이 아래를 꽉 조이도록 자극하거나, 궁극적으로는 그 결과로써 뒤꿈치가 돌아가도록 뒤꿈치를 잡고 홱 돌려주는 등 다양하게 자세를 잡아주신다. 사실 중요한 건 이걸 유지하는 힘이다. 뒤꿈치를 아무리 힘 있게 돌려줘도 선생님의 손이 떨어지는 순간 내 뒤꿈치는 슬그머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고관절이 벌어지는 각도를 넓히는 스트레칭과 그걸 유지하는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필요할 텐데, 이 부분은 나중에 또 다뤄보려 한다.



턴아웃이 고관절에서 시작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결과로 가장 눈에 띄게 되는 것은 발의 각도 혹은 뒤꿈치의 방향이다. 발레 전공생들은 턴아웃의 결과인 발이 180도, 즉 일(ㅡ) 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 고관절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발의 각도가 180도보다 좁게 놓여있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당연히 고관절부터 돌리려고 노력해야 하나, 미처 안되었다 하더라도 발은 무조건 본인 능력치 안에서 가능한 한 가장 180도에 가깝게 바깥으로 돌려놔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전공생 시절, 물 또는 송진을 슈즈에 묻혀 마찰력을 최대로 높였고, 물이나 송진이 없으면 불안해했다. 최대한 고관절부터 바깥으로 돌리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전공생들의 고관절이 턴아웃에 100% 적합하게 타고난 것은 아니다.



어떤 선생님은 "양쪽 뒤꿈치만을 땅에 붙인 채 앞쪽 발을 들어서 바깥으로 돌릴 수 있는 각도가 너의 진짜 턴아웃 각도이다."라고 하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무릎과 발목, 발의 방향이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그게 본인의 진짜 턴아웃 각도이고 그 각도를 지키는 범위에서 움직여야 다치지 않는다."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그 말만 듣고 내 무릎이 향하는 앞쪽 방향으로 발을 둔 채 바워크를 하면 아마 (과장을 조금 보태어) 머리채를 잡히거나 경멸의 눈빛을 받았을 것이다. 정말로 무릎이 향하는 방향과 일치하게 발끝을 놓으면 180도는커녕, 기껏 해봐야 90~100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ㅎㅎ



전공생과 달리 취미생은 턴아웃에서 좀 더 자유롭기는 하다. 무리해서 발만 돌리기보다는 고관절부터 돌리면서 되는 데까지만 하라고 지도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범을 보여주시는 선생님께서 아름다운 180도 턴아웃을 보여주시고, 수업 중간중간 "턴아웃 하세요! 뒤꿈치 앞으로!" 하고 소리쳐주시고, 뒤꿈치를 잡고 앞으로 휙 돌려주시면...... 결국 발레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턴아웃을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내 능력치 이상으로 슬쩍 발 모양만 더 턴아웃 시키게 된다.  



전공생이든, 취미생이든 간에 더 예쁘고 정확한 발레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서 턴아웃을 잘해야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한때 발레리나를 꿈꾸던 발레 전공생이었지만, 이제는 현대인의 각종 고질병을 두루 가진 취미발레인이 되었다. 구부정하게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30대가 되어버린 내 육신은 이미 여기저기 병들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다시 발레를 시작했을 때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아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5번 발포지션은 고사하고 1번도 잘 안되었고, 발목만 슬쩍 돌려놓은 턴아웃 때문에 무릎도 아픈 것 같았다. 건강하려고 운동삼아 하는 발레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몸이 더 망가질 것만 같은 생각에 발레를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발레는 너무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발레음악이 주는 설렘과, 그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출 때의 짜릿함 때문에 아무리 훈련과정이 힘들지라도 계속 춤추게 되는 것 같다. 그 짜릿함은 발레의 길을 택한 전공생도, 바쁜 현생에 치이면서도 발레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취미생들도 모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즉, 발레를 안 할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발레를 오래도록 즐기려면 턴아웃이라는 문제를 계속해서 영리하고 지혜롭게 풀어가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전공생일 때는 '나는 턴아웃을 타고나지 않아서 잘 못해. 어쩔 수 없어.' 하는 생각에 마냥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턴아웃이 안된다고 나를 혼낼 이 아무도 없는 취미생이 된 지금은, 좀 더 마음 편하게 "턴아웃"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이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고민과 탐구는 지금까지도 나 스스로를 가두어 두었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인 것 같기도 하다. 천천히 꾸준히 걸어가 봐야겠다. :)

작가의 이전글 Prologue. "의사가 된 발레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