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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berrina Apr 03. 2023

2. 턴아웃의 역사(1)

턴아웃은 왜 하는가?

발레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발레는 15세기 이탈리아의 궁정 무용에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어 'Ballare(춤추다)'가 오늘날의 Ballet의 유래이다. 이후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으로 발레가 프랑스로 전파되었고,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더욱 체계화되었다. 17세기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서구화를 위해 유럽 사교계 문화인 발레를 도입하고, 유럽의 유능한 무용수들을 초빙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러시아 발레는 눈부시게 발전해 갔다. 19세기 이후 순회공연이 활발해지면서 발레는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우리 동북아시아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면 언제부터 발레에서 턴아웃이 이렇게 중요한 기본기가 되었을까? 최초로 턴아웃을 정립한 것은 루이 14세 당시의 발레 교사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 1636-1705)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무용 이론가였던 트와노 아르보(Thoinot Arbeau, 1520-1595)가 1588년 출간한 오르케조그라피 (Orchésographie, 프랑스 최초의 발레 테크닉 교본)에 이미 턴아웃 된 다리에 대해 언급했으며, 당시 많은 무용수들은 이미 동작의 안정성과 민첩함, 우아함을 위해 턴아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당시 귀족들은 사교활동의 일부로서 펜싱도 익혔는데, 펜싱에서도 우아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다리를 턴아웃 했기 때문에 다리를 외회전 하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 아니었다. 즉, 피에르 보샹이 턴아웃을 처음으로 “발명” 했다기보다는, 이미 턴아웃이 행해지고 있는 가운데 1번부터 5번까지의 발 포지션을 최초로 성문화하였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 체계화하는데 공헌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출판물을 남기지는 못했고, 그의 사망 이후 프랑스의 무용교사 피에르 라모(Pierre Rameau, 1674-1748)가 1725년 출간한 Le Maitre a Danse(무용교수법)에 피에르 보샹이 고안한 ‘발레의 다섯 가지 기본 발동작’을 수록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Plates of the Five Positions of the Feet from “Le Maître à Danser” by Pierre Rameau, 1725



턴아웃은 누군가 한 사람이 이전에 없던 것을 발명하여 “자, 지금부터 이렇게 다리를 바깥으로 돌려놓자. 이게 예쁘고 좋은 거야.”하고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저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더 잘 움직이기 위해서 발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180도의 완벽한 턴아웃에 대해 강박이 있다 보니, 턴아웃이 움직임을 편하게 해 준다 것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180도로 발을 돌리면 중심을 잡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다. 이런 자세가 도대체 어떻게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고 안정적으로 하는 데 도움을 준단 말인가? 하지만 완벽한 턴아웃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고 적당한 수준에서 다리를 외회전 하면, 두 발을 턴인(turn-in)으로 평행하게 두는 것보다 훨씬 안정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리를 들 때도 턴인 상태에서보다는 턴아웃 상태에서 좀 더 높이 들 수 있다. 사이드-데벨로페를 생각해 보면 턴인 상태에서는 90도도 채 올라가지 않지만, 턴아웃 상태로 다리를 들면, 유연성이 허락하는 한 제한 없이 높이 들 수 있게 된다.



턴아웃이 꽃을 피우게 된 더욱 결정적인 계기는 17세기 무대의 도입이었다. 최초의 궁정 무용은 귀족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사교활동으로서, 거추장스러운 드레스와 장신구를 착용하고 춤을 췄기 때문에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발 동작보다는, 우아한 고갯짓이나 팔 동작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발레의 테크닉 발전을 위해 왕립 무용학교(1661, 현재 파리오페라발레의 전신)를 설립하였고, 이로 인해 비로소 발레가 궁정 무용에서 대중 무용으로 확장되었다. 궁정 무용으로서의 발레는 귀족 스스로가 댄서가 되어 춤을 추었고, 따로 무대가 있다기보다는 모든 방향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춤을 추는 형태였다. 하지만 대중 무용으로 확장되면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었고, 귀족이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한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서 실력 있는 전문 무용수의 춤을 감상하는 형태로 변해갔다.



만약 내가 안무가라면, 무대를 어떻게 활용해야 관객들에게 가장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수 있을까? 무대 앞뒤 방향보다는, 좌우 양옆 방향으로 움직이며 팔다리를 뻗는 것이 훨씬 동작이 커 보이고 다채롭게 느껴질 것이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 입장에서는 아무리 무용수가 앞뒤로 열심히 움직이며 팔다리를 뻗어도 무슨 동작을 하는지 잘 안 보일 것이다. 실제로 발레 클래스를 떠올려보면, 춤다운 춤을 추는 센터의 마지막 순서들도 다 양쪽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면서 동작을 수행하고, 작품들도 살펴보면 대부분 무대의 양옆을 가로지르는 순서를 갖고 있다. 이때, 무대 양옆으로 이동하면서도 무용수의 시선과 몸은 항상 객석을 의식하며 주로 객석을 향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다리를 턴인으로 둔다면 스탭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빠르게 움직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턴아웃 기법이 개발된 것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턴아웃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기에 거슬리지 않고 예쁘다"라는 점이다. 턴인 상태에서 옆모습을 거울로 보면, 엉덩이 부분이 한 번 튀어나오고 허벅지 앞쪽의 넙다리네갈래근(대퇴사두근)이 또 한 번 튀어나오고 마지막으로 종아리 근육이 뒤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무대에서 양옆을 가로지르며 동작을 할 때, 객석을 향해 옆모습을 많이 보여주게 되는데, 이때 턴아웃을 하게 되면 이런 울퉁불퉁한 것들이 가려지고 매끈한 다리라인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또한, 턴아웃 자세를 유지할 때 단련되는 근육(허벅지 안쪽의 모음근)이 다리 모양 자체를 가늘고 쭉 뻗게 만들어준다. 허벅지 안쪽 근육들은 허벅지 바깥쪽에 있는 근육에 비해 훨씬 더 얇고 판판하며, 쭉 뻗어있다. 모든 근육을 구석구석 쪼개어 단련한 보디빌더의 다리근육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모음근의 크기가 더 작고 얇으며 판판하게 쭉 뻗은 느낌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끊임없이 턴아웃을 유지하면서 허벅지 안쪽 근육을 상대적으로 많이 단련하게 되어 다리 라인 자체가 훨씬 얇고 탄탄해지는 것이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바깥쪽 근육은 커질수록 허벅지 가쪽으로 불룩 튀어나오게 되다. 반면 연두색의 안쪽 근육은 모양이 납작하고 판판하기 때문에 단련할수록 다리가 곧고 쭉 뻗게된다.
보디빌더의 다리 근육을 보면 허벅지 바깥의 근육은 바깥쪽으로 불룩 튀어나온데 비해, 안쪽 근육은 똑같이 단련해도 납작하고 판판한 것을 볼 수 있다.



정리해 보면, 턴아웃은 다리를 좀 더 안정적이고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 그래서 더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는 돌고 돌면서 반복된다.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서든 인간사를 들여다보면 일면 비슷한 부분이 있다. 주체로서 나의 분야에서 더 돋보이고 싶은 본능, 관찰자로서 더 현란한 것에 이끌리는 본능은 발레의 역사에서도 똑같이 반복된 것 같다. 무용수의 입장에서는 본능적으로 내가 더 돋보이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고, 나를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본능적으로 점점 더 현란하고 아름다운 것을 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안 자연스러운' 턴아웃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완벽한 턴아웃 상태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자세이다.ㅎㅎ



"발레=턴아웃"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발레는 태초부터 지금과 같은 완벽한 턴아웃을 하는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초의 발레에서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턴아웃이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니, 이 또한 인간의 본능과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로써 나 스스로를 '턴아웃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련의 주인공'으로 규정하고 주눅 들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 비로소 턴아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를 얻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 같은 턴아웃이 사실은 돌고 돌며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온 것처럼, 나의 일상 역시 계속해서 반복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특별하고도 지극히 평범한 이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야겠다. :)




<참고>

Keith L. Moore, Arthur F. Dalley, Anne M. R. Agur(2013). 무어 임상해부학. 바이오사이언스출판.
16세기 말 발레 극장의 기원. 러시아 발레의 역사: 기원과 발전.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그 끝.

(https://vk-spy.ru/ko/eda-i-kulinariya/zarozhdenie-baletnogo-teatra-konec-16-veka-istoriya-russkogo-baleta-vozniknovenie-i-progress-social/)

뉴스 스테이지. [발레이야기 14] 발레 테크닉의 역사(2).

(http://www.newstag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0)

https://michaelminn.net/andros/biographies/beauchamp_pierre/index.html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Thoinot-Arbeau

https://www.encyclopedia.com/history/encyclopedias-almanacs-transcripts-and-maps/pierre-beaucha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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