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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berrina Jul 09. 2023

11. 턴아웃과 근육

턴아웃에 왕도는 없다

이때까지 턴아웃과 관련된 뼈와 인대를 살펴보았고, 이번에는 관련된 근육들을 살펴보자. 


고관절의 외회전은 엉덩이 깊은 안쪽에 위치한 6개의 근육들에서 시작된다. 이 근육들을 한꺼번에 심부외회전근, Deep six rotators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궁둥구멍근 (이상근, Piriformis) 
-위쌍둥이근 (상쌍자근, Gemellus superior) 
-속폐쇄근 (내폐쇄근, Obturator internus) 
-바깥폐쇄근 (외폐쇄근, Obturator externus) 
-아래쌍둥이근 (하쌍자근, Gemellus inferior) 
-넙다리네모근 (대퇴방형근, Quadratus femoris) 


심부외회전근은 엉덩이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심부외회전근이 노란색 화살표 방향과 같이 수축하면 넙다리뼈가 화살표와 같이 외회전 하게 된다.


위의 오른쪽 그림에서 화살표로 표시한 것과 같이, 이 근육들을 꽉 조여주면 넙다리뼈 머리가 바깥쪽으로 시원하게 돌아갈 것 같은데 막상 시도해 보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ㅎㅎ


심부외회전근에서 고관절의 외회전을 시작했다면, 그다음 턴아웃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허벅지 모음근(내전근, Adductor)들이다. 발레 수업 시간 내내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엉덩이 조이세요, 허벅지 안쪽을 쓰세요"라는 말이 결국 이 두 개를 뜻하는 것이다. 엉덩이를 조여서 심부외회전근으로 턴아웃을 시작하고, 그런 다음 허벅지 안쪽의 모음근으로 턴아웃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엉덩이를 조이세요"에는 큰 함정이 있다. 무작정 엉덩이에 바짝 힘을 주게 되면 큰볼기근(대둔근, Gluteus maximus)만 과도하게 긴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위의 그림은 천장을 보고 누운 사람의 고관절 부위를 절단한 횡단면이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큰볼기근&중간볼기근과 초록색으로 표시한 심부외회전근(위쌍둥이근& 속폐쇄근)을 보면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엉덩이를 조이려고 큰볼기근에 힘을 꽉 주면 상대적으로 훨씬 작은 심부외회전근의 움직임은 거의 느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엉덩이를 꽉 조이면서 골반 후방 경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골반 후방 경사가 되면 허벅지 안쪽의 모음근을 쓰기 더 어려워지고, 허벅지 바깥쪽으로 부하가 걸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부외회전근과 허벅지 안쪽 근육을 잘 느끼려면 엉덩이에 꽉 힘을 주던 것을 멈추고 안쪽 깊은 곳의 움직임을 느껴야 한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심부외회전근 강화 운동을 찾아서 따라 해 보면, 단순히 엉덩이를 꽉 조일 때 힘이 들어가는 부위와는 사뭇 다른 부위가 자극된다. 자극 부위가 어딘지 명확하게 느낌이 오지 않고, 아주 잘고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스쿼트나 플랭크를 할 때처럼 땀이 뻘뻘 나게 힘든 것이 아니라, 알듯 말듯하고 알쏭달쏭한 느낌에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느낌이다. 실제로 심부외회전근은 그 부위만 따로 떼어서 강화하기 무척 힘든 부위이다.



허벅지 안쪽의 모음근을 쓰는 것도 쉽지 않다. 허벅지 모음근(내전근, Adductors)은 총 5개의 근육으로 이뤄진다. 

-긴모음근 (장내전근, Adductor longus)
-짧은모음근 (단내전근, Adductor brevis)
-큰모음근 (대내전근, Adductor magnus)
-두덩정강근 (박근, Gracilis)
-두덩근 (치골근, Pectineus)

(https://austerfit.com/blogs/blog/the-best-exercise-for-the-hip-adductors-using-the-dynamic-bands)
(https://anatomy.app/encyclopedia/adductor-magnus/media)
Leonard Krasniqi (https://www.ifafitness.com/wttrain/adductors.htm)

허벅지 모음근 역시 허벅지에 위치한 다른 근육들에 비해 크기도 작고 깊숙이 위치하여 자극을 느끼기 어렵다. 위의 두 번째 그림에서 보면, 모음근의 앞뒤로 근육들이 잔뜩 뒤덮고 있어서 안쪽에 쏙 숨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위의 세 번째 그림에서 보듯이 온몸의 근육을 열심히 키운 보디빌더일지라도, 허벅지 안쪽의 모음근은 상대적으로 작다. 상대적으로 근육의 크기가 작기도 하고, 그렇기에 근육이 낼 수 있는 파워 자체가 작고,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자극이 되지 않는 부위이기에 쉽사리 벌크업이 되지 않는다. 턴아웃에 필요한 핵심 근육들인 심부외회전근도, 허벅지 안쪽 모음근도 참 활용하기 어려운 친구들이다.



헬스장에서 Hip adductor 운동 기구에 앉아서 모음근에만 초집중을 한 상태로 근육의 활성을 느끼는 것은 쉽다. 하지만 바쁘게 발레 동작을 따라 하는 와중에 '허벅지 안쪽을 쓰라'는 지시를 따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는 이미 발레 동작을 만들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잔뜩 힘을 주고 있는데, 여기서 허벅지 안쪽에까지 또 힘을 주라고?' 하는 의문이 든다. 이미 다른 곳에 잔뜩 힘을 주고 있어서 허벅지 안쪽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가 많다. 


모음근에 표시된 노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수축하면 넙다리뼈 전체가 외회전 된다. 모음근은 넙다리뼈 뒤쪽에 붙어있어서 수축하면 넙다리뼈 뒤쪽을 앞으로 끌고 오면서 외회전 하게 된다.

위의 그림을 보면 허벅지 모음근은 넙다리뼈의 뒤쪽면에 붙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음근을 수축하면 그림에 표시된 화살표 방향과 같이 넙다리 뒤쪽면을 앞으로 돌려낼 수 있는 것이다. 발레 동작을 할 때는 겉모습만 따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에너지의 근원이 어디인지 명확히 알고 거기서부터 동작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발레 동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턴아웃을 만드는 느낌을 잘 알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양 발을 완벽한 180도로 만든다는 강박을 잠시 넣어두고 천천히 심부외회전근을 활성화하여 먼저 고관절을 외회전 시키고, 그것을 더 강화한다는 느낌으로 허벅지 모음근을 긴장시켜서 가능한 만큼만 턴아웃을 한다.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심부외회전근과 허벅지 모음근에 집중하며 턴아웃을 유지하고, 천천히 탄듀를 반복하면서 넙다리뼈가 외회전 되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특히 1번 발포지션으로 서 있을 때, 1번에서 를르베(Releve)를 할 때 이 감각을 잘 느낄 수 있다. 바뜨망 탄듀(Battement tendu)를 위해 다리를 앞, 옆, 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동작의 시작단계에서 필연적으로 허벅지 안쪽 모음근이 아니라 허벅지 바깥 혹은 뒤쪽의 근육을 쓰게 된다. 바뜨망 제떼(Battement jete)부터 그 이상으로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는 당연히 다른 근육들이 더욱더 많이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1번 발포지션과 를르베, 아주 느린 탄듀를 반복하면서 턴아웃의 감각을 확실히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익숙해진다 한들, 빠른 동작이나 다리를 높이 차고 뛰어오르는 동작을 할 때면 그 감각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턴아웃을 위한 근육 사용의 기조를 확실히 숙지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모든 동작에서 좀 더 기본기가 탄탄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심부외회전근과 모음근만 강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턴아웃은 단순히 몇 개의 근육만 단련시키면 된다거나, 특정 인대만 늘리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리의 위치에 따라 턴아웃에 관여하는 근육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다리를 앞으로 들었을 때는 넙다리빗근(봉공근, Sartorius)과 큰허리근(대요근, Psoas), 다리를 뒤로 들었을 때는 큰볼기근(대둔근, Gluteus maximus), 무릎을 굽힐 때(플리에 혹은 에티튜드)는 오금근(슬와근, Popliteus)과 넙다리두갈래근(대퇴이두근, Biceps femoris)이 관여한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온몸 전체의 풀업(pull-up)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제대로 턴아웃을 하려면 사실상 거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턴아웃이란 파면 팔수록 참 복잡하고도 복합적인 동작이다. 






"턴아웃에는 왕도가 없다" 


"ㅇㅇ에 왕도는 없다"라는 말은 수학자 유클리드가 황제에게 기하학을 가르쳐주며 했던 말이라고 전해진다. 기하학이 너무 어려웠던 황제가 "좀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묻자 유클리드는 "이 세상에는 왕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유클리드의 말대로, 어떤 분야에서 일정 경지에 오르는 것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성실하고 치밀하게 노력한 결과로써만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타고난 신체 조건을 가진 어린 무용수들도 모든 동작에서 완벽한 턴아웃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게 훈련을 하는데, 하물며 취미로 춤을 추는 나에게는 당연히 "이것만 하면 턴아웃 6주 완성!"과 같은 지름길이 있을 리 없다.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도가 있을까 싶어서 턴아웃 보드를 구매했다. 직접 충분히 써보고 느낀 점은 나중에 풀어보도록 하겠다.)


비록 턴아웃에 왕도가 없고, 어쩌면 결국엔 타고난 구조를 가진 사람만이 이뤄낼 수 있는 영역일지라도, 이 탐구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다. 사실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갖고 턴아웃에 대해 살펴보면 내 나름대로 지름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시작한 것이지만, 알면 알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결국 왕도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좌절하는 것보다는 명명백백히 알고 좌절하는 게 좀 더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하고, 부상의 위험을 조금이나마 더 줄여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ㅎㅎ



이제까지는 고관절에 대해서 주로 살펴봤고, 이후에는 무릎과 발목 턴아웃에 대해 살펴보겠다. :)




<참고자료>

Keith L. Moore, Arthur F. Dalley, Anne M. R. Agur(2013) 무어 임상해부학. 바이오사이언스출판.

Turnout for Dancers : Hip Anatomy and Factors Affecting Turnout. by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Dance Medicine and Science (www.iadms.org)

Anatomy 3D Atlas app. (Catfish Animation Studio S.r.l.)

재키 그린 하스(2019) 댄스 아나토미. 푸른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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