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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턴아웃과 허벅지 안쪽 근육(1)

by Mulberrina


턴아웃에서 허벅지 안쪽 근육은 매우 중요하다. 비단 턴아웃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레 동작을 하는 내내 허벅지 안쪽 근육을 써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지만, 그 느낌은 다소 아리송하다. 왜냐하면 발레 동작의 겉보기 모양을 만드는 데는 허벅지 안쪽 근육이 "필연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L짜리 생수통을 팔로 번쩍 드는 동작을 하려면 반드시, 필연적으로 상완이두박근이 수축할 수밖에 없다. 무릎을 굽혔다가 쭉 펴려면 대퇴사두근이 수축해야만 한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려면 복직근이 수축해야 한다. 하지만 발레에서 1번 발로 서 있기 위해서는 굳이 허벅지 안쪽 근육이 필요하지 않다. 일단 발 모양을 적당한 각도로 벌려놓고, 허리와 다리를 곧게 펴기 위해 복근과 대둔근 및 대퇴사두근을 동원하면 된다. 그러면 1번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턴아웃은 고관절과 엉덩이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하니, 뭐니 뭐니 해도 엉덩이 근육에 좀 더 힘을 주게 된다.




그런 다음 추가적으로 "허벅지 안쪽에 힘주세요"라는 지시를 따르게 된다. 허벅지 안쪽 근육을 사용하면 몸의 중심이 더 가운데로 모여서 풀업에 도움이 될 것 같고, 허벅지 바깥쪽 근육 대신 안쪽 근육을 사용함으로써 다리 모양이 더 예뻐질 것 같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부위라 힘을 주는 것 자체가 생소하고 어색할 수 있지만) 열심히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는 것 자체가 대퇴골을 바깥으로 돌리는 작용(=턴아웃)을 하도록 연결하지 못한다면, 1번으로 서 있는 것에서 간단한 동작만 추가되더라도 허벅지 안쪽에 힘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추가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근육들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굳이, 일부러, 잉여로" 힘을 주고 있던 허벅지 안쪽에 대해 집중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발레 교사인 Isabella McGuire Mayes도 턴아웃과 관련하여 허벅지 안쪽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얘기하고 있다. Isabella는 영국 출신으로, 바가노바 발레학교 졸업 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온라인 발레 강의 플랫폼인 "Ballet with Isabella"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턴아웃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자신이 아주 재능 있는 학생이었고 겉보기에는 완벽한 180도 턴아웃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부외회전근육(deep rotators)과 허벅지 안쪽 근육(inner thigh muscles)을 연합해서(coordinate) 사용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오랜 기간 동안 항상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고자 물리치료사를 찾아갔고, 수차례의 자이로토닉과 재활 훈련, 그리고 수개월에 걸친 수중훈련을 통해서 겨우 그 느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의 이런 고민들이 한편으로는 매우 반가우면서도, 그만큼 제대로 된 턴아웃 느낌을 터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영상 링크는 아래와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zeCvjJTl9aI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허벅지 안쪽 근육을 어떻게 실제로 턴아웃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내가 직접 고민한 내용들이다. 여러 책과 논문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궁금한 부분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 것은 없었다. 대신 내 나름대로 신뢰할 수 있는 참고 자료들을 열심히 찾고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탐구를 이어갔다. 미진할 수 있으나 이 과정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은 정말로 턴아웃에 도움이 될까?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면 턴아웃이 더 잘 되는데 도움이 될까?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면 고관절에서 대퇴골이 바깥으로 돌아가게 외회전 시킬 수 있을까?




근육이 수축하면 그 근육이 붙어있는 뼈가 움직인다. 근육이 수축하면서 길이가 변하면, 이는 뼈와 뼈 사이의 관절에서 회전운동이 일어나도록 한다. 즉 발레 동작을 하기 위해서 근육을 수축하면 뼈가 움직이면서 동작의 모양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림1.jpg
그림2.jpg
근육이 수축해서 짧아지면, 근육이 붙어있는 양쪽 뼈 사이의 관절이 접히면서(?) 회전하게 된다.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동작을 취할 수 있다.




턴아웃은 골반뼈의 절구와 대퇴골의 머리가 맞닿은 볼-소켓 관절에서 대퇴골이 외회전해야 하는 것인데, 허벅지 안쪽 근육이 수축하면 이런 뼈의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전 글 [11.턴아웃과 근육]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허벅지 안쪽 근육이 뼈에 붙어있는 방향을 보면 실제로 허벅지 안쪽 근육을 수축하는 것이 턴아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림3.jpg 앞선 글, [11.턴아웃과 근육]에서 살펴본 그림이다. 허벅지 안쪽 근육들은 치골결합 주변에서 시작해서 대퇴골 뒤쪽 면에 붙는다.
image.png?type=w3840 골반 주변을 머리 위에서 내려다본 것으로, 3번은 큰모음근, 4번은 긴모음근과 짧은모음근이다. 각 근육이 활성화되면, 화살표 방향으로 근육 길이가 짧아지면서 뼈를 움직인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카판지 기능해부학"에서는 큰모음근(대내전근, Adductor magnus)과 긴모음근(장내전근, Adductor longus), 짧은모음근(단내전근, Adductor brevis)은 모두 고관절의 수직축 뒤를 지나기 때문에 무릎을 펴고 엉덩관절과 발목관절이 회전축의 역할을 할 때 가쪽돌림근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허벅지 안쪽 근육의 수직축에서의 회전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은 듯하다. 어떤 문헌에서는 허벅지 안쪽 근육이 오히려 고관절에서 내회전을 일으킨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뉴만 키네시올로지"에서는 허벅지 안쪽 근육을 '이차적 안쪽돌림근'으로 분류하면서도, 대퇴골의 모양에 따라 내회전 혹은 외회전을 일으킨다고 (약간 애매하게) 설명하고 있다.

2006년, Physiotherapy Theory and Practice에 실린 연구 "A functional model to describe the action of the adductor muscles at the hip in the transverse plane"에서는 근전도를 통해 보행 시 수평면에서의 허벅지 안쪽 근육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단축성 수축을 통해 고관절 외회전을 일으키는 결과를 보여준다.

1996년 독일에서 발표된 연구 "Controversial rotation function of certain muscles in the hip joint"에서는 허벅지 안쪽 근육의 종류별로 회전 기능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대내전근 전부섬유는 항상 외회전을 일으키고, 후부섬유는 항상 내회전을 일으킨다. 반면 장내전근과 단내전근, 치골근은 고관절 굴곡 상태에서는 외회전을 일으키고 고관절 신전 상태에서는 내회전을 일으킨다. (즉 드방으로 다리를 들 때는 턴아웃에 도움이 되지만, 1번으로 서 있을 때는 오히려 턴인 방향으로 돌리는데 일조한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부학 교재 중에서는 허벅지 안쪽 근육의 기능을 설명할 때 회전 기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무어 임상해부학"과 "Dance anatomy and kinesiology"에서는 내전근에 대해 설명할 때 외회전 혹은 내회전 기능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있다.

턴아웃에 대해 탐구하면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이파마스터에서 여러 강의들을 들어보고 있는데, 여기서도 기능해부학 강의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의 회전 기능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강사분은 외회전이라고 설명하고, 어떤 강사분은 내회전이라고 설명하면서 '아직 논란이 있으니 이렇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을 턴아웃에 써야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줘서 수축하면 허벅지 뼈를 내회전 시킬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음 글에서 계속해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그전에 한 가지만 더 살펴보고자 한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수축하면 오히려 고관절 내회전을 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앞에 두고, "근육 수축"과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의문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Q. 발레에서는 근육을 짧아지게 수축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길게 써야 하니까 상관없지 않나? 허벅지 안쪽 근육을 길게 쓰라고 하지 않나? 길게 쓰면 턴아웃이 되는 것 아닌가?

A. 일단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 (=에너지가 쓰이면서 근육이 활성화되고 단단해지면) 근육 본래의 휴지기 상태의 길이보다 더 길어지게끔 사용할 수는 없다. 발레를 하는 중에 특정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면 크게 세 가지 상태로 볼 수 있다.

근육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단축성 수축을 하고 있거나,

수축한 상태에서 다시 길어지면서 신장성 수축을 하고 있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멈춰있을 뿐(등척성 수축)이다.

1번으로 가만히 서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면, 고관절의 외회전 (혹은 내회전)을 일으킬 만큼의 작은 단축성 수축이 일어난 후 등척성 수축 상태일 것이다. 따라서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줬을 때 그것이 외회전에 도움이 되는지, 내회전에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실제로 턴아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팔과 다리를 길게 쓰기', '알롱제' 등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이것도 다음에 다뤄보도록 하겠다.)




각설하고 허벅지 안쪽 근육과 턴아웃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계속해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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