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다양한 장기들은 모두 합력하여 멋진 발레동작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앞서 살펴본 뼈대와 근육이 튼튼한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 장기들을 품고, 그 위를 지방층과 피부가 덮어서 보호한다. 튼튼한 두개골과 갈비뼈, 골반뼈 안쪽으로 뇌와 심장, 폐, 위장과 소장 및 대장, 간과 쓸개, 콩팥 등의 주요 장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있다.
흉곽과 골반뼈 사이로 장기들이 오밀조밀하게 위치하는 것을 표현한 모식도이다. 소장 및 대장은 생략한 모습이다. (California knowledge center)
발레 동작을 멋지게 수행하려면 앞서 살펴본 근육을 적절한 타이밍에 잘 수축하고 이완해야 한다. 근육이 수축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근육세포 안에는 에너지 공장이 있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때 필요한 재료가 영양소와 산소다. 영양소는 음식물을 섭취하여 얻는다. 입에서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것부터 위장과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거치면서 음식물을 잘게 부수어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쏙쏙 흡수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 소화계이다.
소화관은 입에서부터 식도, 위장, 소장, 대장, 항문으로 이어진다. 소화와 영양분 흡수를 도와주는 췌장, 간, 쓸개가 있다.
산소는 들숨을 통해 얻는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산소가 빨려 들어와서 폐로 들어가게 된다. 폐에 가득 찬 산소는 폐 안에 있는 혈관 속으로 쏙 녹아들어 가게 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폐를 통해 몸 안으로 산소를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호흡계이다.
콧구멍에서부터 기도를 통해 폐까지 공기가 들어가게 된다. 폐는 갈비뼈 안쪽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폐 아래쪽에 위치한 횡격막이 배와 가슴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
영양소와 산소를 몸속으로 가져온 뒤에는 각각의 근육으로 운반해줘야 한다. 영양소와 산소를 혈액에 띄워 보내게 되며, 심장이 계속해서 펌프질을 해서 혈액이 목표지점 근육까지 흘러갈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근육의 에너지 공장에 필요한 재료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심장과 혈액이 바로 순환계이다.
복장뼈 뒤쪽, 왼쪽으로 심장이 폐에 둘러싸여 있고, 심장에서부터 혈관(빨간색-동맥, 파란색-정맥)이 뻗어 나와 온몸 구석구석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전달해 준다.
근육세포에 영양소와 산소가 도착하면 에너지 공장에서 뚝딱뚝딱 에너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에너지로 근육을 수축시켜서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 공장을 열심히 돌리고 나면 폐기물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폐기물은 이산화탄소로, 날숨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한다. 호흡계는 산소를 들이마시는 역할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발레에 필요한 근육을 잘 단련하려면 근력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육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단백질이 적재적소에 쓰이기 위해 분해되고 합성되는 과정에서 쓰레기가 발생한다. 이 쓰레기는 그냥 두면 엄청난 독성을 내뿜는 암모니아다. 과학 실험실이나 화장실에서 코 끝이 찡한 암모니아 냄새를 맡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해독작용을 하는 간에서 암모니아에 독극물 스티커를 붙이고 독성이 새어나가지 않게 보호막으로 꽁꽁 감싼다. 그런 뒤 혈액에 띄워 보내면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서 몸 밖으로 배출하게 된다. 이때 하수처리장은 바로 신장(콩팥)이고, 여기서 암모니아를 비롯하여 몸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폐기물을 걸러서 소변으로 내보내게 된다. 이에 관련된 장기들이 비뇨계이다.
등 뒤쪽, 가장 아래쪽 갈비뼈 안쪽으로 콩팥이 위치한다. 콩팥에서 걸러진 소변은 요관을 따라 쭉 내려와서 아랫배에 위치한 방광에 모였다가 배출된다.
발레수업에서 선생님께 지적받은 대로 동작을 고치기 위해 자세를 바로 잡을 때, 우리는 몸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머리를 굴리게 된다. 오른쪽으로 피루엣을 돌 때 선생님이 "왼팔 빨리! 고개 남기세요! 스팟!" 이렇게 소리치시면 그 즉시 우리 뇌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근육에 명령을 내린다. '왼쪽 팔을 더 빨리 갖고 오고 스팟도 더 정확하게 해야 하니까 왼쪽 위팔두갈래근(이두박근, biceps brachii)에 힘을 더 줘서 타이밍을 빠르게 하고, 오른쪽 목빗근(흉쇄유돌근, SCM)을 수축해서 목을 왼쪽으로 돌려 스팟을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피루엣 턴이 다 돌아가면 재빨리 왼쪽 목빗근을 수축해서 고개를 돌려와야지' 이렇게 근육을 어떻게 움직일지 명령하는 것이 바로 신경계이다. 발레 동작에 대한 경험치와 내 몸에 대한 이해가 낮을수록 뇌에서 일어나는 사고과정과 명령은 단순하고 엉성할 것이다. 반면 동작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리고 내 몸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뇌의 명령은 더 정교하고 정확해질 것이다.
센터에서 두 명씩 사선 시퀀스를 할 때, 내 옆의 발레메이트가 자꾸 내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메이트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봐서 알게 될 때도 있고, 메이트가 나에게 다가올 때 만드는 미세한 공기의 떨림을 피부 촉각으로 감지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메이트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 천천히 이동하거나, 나의 진행방향 각도를 살짝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도 신경계의 역할이다. 각종 감각기관에서 외부자극을 인지하고, 척수를 통해 뇌에 전달하고, 뇌에서 정보를 종합해서 통합적 사고를 하고 명령을 내리면, 다시 척수를 통해 각각의 근육에 명령을 전달해서 우리 몸이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즉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신경계의 역할인 것이다.
두개골 안에 뇌가 위치한다. (위 그림에서는 생략) 뇌에서 뻗어 나온 척수(노란색)가 척추뼈 안쪽으로 보호되면서 온몸을 따라 내려오고,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가 뇌의 명령을 전달한다.
위에서 살펴본 소화계, 호흡계, 순환계, 비뇨계, 신경계 외에도 면역계, 내분비계, 생식계와 같은 계통의 장기들이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뇌나 심장처럼 생명과 직결된 장기가 아니더라도, 각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생소한 장기들도 알고 보면 엄청난 일을 수행하고 있고, 하나라도 고장 나면 당연하게 여겼던 안온한 생활에 금이 간다. 예로, '비장'이 망가지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심각한 감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고, 실제로 시기에 맞춰 예방접종을 계속하면서 정기검진을 해야 하는 등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또한 콩팥 위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부신'에 이상이 생기면 호르몬의 조절이 안되면서 다양한 전신 증상이 나타난다. 꼭 장기가 아니더라도, 뼈가 부러지면 당장의 일상생활에 큰 제한이 따르고, 노인분들의 경우 중심부 골절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져 누워만 있게 되면 근육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폐렴 및 색전증 위험이 증가하게 되어 실제로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근육이나 관절, 인대를 다치거나 해당 부위에 염증만 생기더라도 한동안 아주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각각의 장기가 망가졌을 때 여명이 다를 수는 있다. 뇌나 심장이 기능을 멈추면 단 몇 초에서 몇 분만에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뼈가 부러졌다고 해서 몇 시간 만에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중요도를 나누자면 순위를 매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정말 모든 장기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다. 우리 몸에서는 뇌나 심장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각자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가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다.
발레작품에서도 주역에서부터 솔로, 군무진까지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하나도 없다.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단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된다. 백조의 호수가 "완성작"으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24마리 백조가 모두 있어야 한다. 오데트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돈키호테 키트리의 익살스러운 매력은 군무진의 수군대는 마임과 호응이 있을 때 훨씬 더 돋보인다. 해적 3막에서 파샤의 정원이 풍성한 것은 군무진의 화환이 있기 때문이다. 메도라 혼자 솔로 바리에이션을 선보인다고 해서 절대 채워질 수 없는 설렘과 풍성함은, 탄탄한 군무진이 뒷받침해 주는 전막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전공생 시절에는 주인공만이 멋지고 성공한 무용수라고 생각했다. 나의 타고난 체형이나 재능이 주인공을 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판단이 서고 나니 마음이 차갑게 식었고,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이 뚝 끊겼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발레를 그만두게 되었고, 꽤 최근까지도 잘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취미발레를 다시 시작하면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 보니 '주인공만이 성공한 것'이라는 믿음이 발레를 그만둔 이후에도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 혹은 1등만이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과에만 연연하며 체면치레 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이때까지 살아왔지만, 정작 나만의 사고와 탐구를 할 수 있는 '지성'이 충분히 성숙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취미로 즐기기만 해도 벅찬 발레를 하면서도 여전히 슬쩍 남들과 비교하려고 하고,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득도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ㅎㅎ 취미 발레인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의 역할에 충실하며, 체면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턴아웃을 위한 가벼운 해부학>에서 다룬 것들 중에는 실제 해부학 구조를 간략화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들이 많다. 실제 해부학적 구조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며, 큰 규칙에 들어맞지 않는 예외 투성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몸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턴아웃과 관련된 뼈, 인대와 관절, 근육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