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 (1)
원래 이 파트의 제목은 ‘필수 준비물’ 이 될 예정이었다. 준비물? 내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뭔가 이것이 없으면 모든 게 안 돌아갈 거 같은 어감이잖아.
대체 무엇을 위한 준비물인 거지?
아, 이것은 내가 외면해 왔던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기 위한 준비물인 것이지. 그래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 라고 했다.
물고기씨는 아티스트웨이를 10여 년 전에 처음 접하고 이 책에서 요구하는 숙제들을 아주 진지하게 따라가 본 역사가 있다. 같은 경로를 다시 따라갈 때에는 당연하게도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처음과는 상태가 달라지긴 달라졌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침묵을 용납하지 않는 목소리가 하나 존재한다. 혹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갑자기 그 자리가 무엇인가라도 지나간 것처럼 조용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때 당신의 마음속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어떤 이야기든 꺼내야해’ 라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이 목소리이다. (잡았다 요놈)
내가 말하려는 ‘마음의 목소리' 는 이 친구가 아니다.
여러분이 캐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목소리는, 평소에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조용하다. 아주 가끔, “.... 아, 이거 좋다” 라고 작은 목소리로 살짝 속삭이고 사라져 버린다. 여러분이 불쾌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아까의 수다쟁이는 목청을 높여서 상황에 대한 불평, 사람에 대한 분노 등등을 말하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그 목소리는 “....”, 말없이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보내준다. 그 친구가 진짜다.
그렇다면 수다쟁이는 무시하고 침묵을 지키는 친구만 내가 케어해줘야 하는가? 흠... 조금 복잡하다.
내 마음속 수다쟁이는 내가 아니고 침묵의 친구는 진짜 나라고 얘기할 마음은 없다. 둘 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목소리니까.
내가 이 준비물 파트에서 자세히 다룰 모닝페이지와 아티스트데이트가 바로 이 두 친구들을 다루는 방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여러분들, 계속 모닝페이지는 쓰고 계신 거죠? 멈추셨으면 내일 아침에 당장 쓰세요.
1. 모닝페이지
저번 프롤로그(1)에서 짧게 설명했지만, 모닝페이지는 말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써 내려가는 글이다. 아침 일기장이라 받아들이셔도 좋다.
일어나자마자 당신이 가장 편안해하는 필기수단으로 3장을 채우는 거다. 메모장 앱으로 쓰면 3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올 수도 있으니 나 같은 경우는 30분짜리 스톱워치를 맞춰놓는 편이다.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시간을 늘려도 전혀 상관없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아주 빠르게 써 내려간다. 이걸로 책 쓸 거 아니고 남들한테 보여줄 거 아니니까 수사법 같은 걸 고민할 필요가 없다. 혹시나 당신이 한글이 아니라 영어가 더 편하면 영어로 쓰셔도 된다. 글자크기 같은 거 상관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종이 한 장에 글자 하나 쓰지 맙시다) 이게 지금 내 수다쟁이가 쓰는 건지 침묵의 친구가 쓰는 건지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그 두 친구들 모두 당신이잖아.
어릴 때 침대 매트리스 사이에 잘 숨겨놓았던 비밀일기장 기억하시는가? 그걸 지금 다시 쓰는 거다. 대신 아침에 쓰는 거다.
그 비밀일기장은 남들에게 절대로 보이면 안 되고, 나 자신도 보아서는 안된다.
하루 이틀 쓰다 보면 여러 저항들이 올라오면서 모닝페이지를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올 텐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아침에 바빠죽겠는데 30분 동안 태평하게 글이나 쓰라고요? 아침에 쫓기는 게 싫으시다면 1시간 일찍 자고 1시간 일찍 일어나면 됩니다. 쫓기는 아침을 만든 건 나의 문제지 모닝페이지 탓을 하면 안 되죠.
아니, 애들 준비시켜야 하는데 무슨 그럴 시간이 다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창조성을 발견하고 예술가의 길을 따라가시려고 내 글을 읽으시는 것 아닌가요? 나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도 없이 창조성이 “안녕~” 하고 손을 흔들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굉장한 욕심이죠.
그리고 애초에 그런 핑계를 만들면서 모닝페이지를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물고기씨의 여러 가지 특기 중 하나는 평서문으로 심한 욕 시전하기다)
게으름?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것뿐만이 아닐걸?
정말 근원적 문제는 두려움이다. 내가 내 아이들, 내 남편, 내 아내, 부모님,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친구 등등을 위해서 아침 시간을 쓰려는 마음은 낼 수 있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내는 것은 뭔가 낭비 같고 두려운 것이다.
뭔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 내가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멋지고 예술적인 인간이 아닌 것을 알아버릴 것만 같아서. 혹은 이미 나는 늦어버린 것 같은데 이제 와서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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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게 말씀드리겠다 : 당신은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이 예술적이지 않고 알고 보면 그저 그런 사람이라도 전혀 상관없어요. 그리고 늦은 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난 여기서 여느 자기 계발서에서 볼 법한 “여러분은 알고 보면 굉장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 혹은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유캔 두잇!” 같은 도파민 흘러넘칠법한 격려를 쓰고 싶은 게 아니다.
당신이 예술적이지 않으며 알고 보면 굉장히 심심하고 멋지지도 않아도 그건 당신이 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면서 절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당신의 생각이다.
그리고 진짜 당신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당신이 정해놓은 ‘누구의 남편/아내’ ’누구의 엄마/아빠’ ’누구의 아들/딸‘ 의 모범적인 프레임에서 조금 벗어나서 정말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애초에 당신이 센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당신에게는 라일락색이 어울리는데 당신 화장대에는 갈색 섀도들만 가득 차있고, 당신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진지한 사람이며, 당신은 빨간색 구두를 좋아하는데 신발장에는 회색 브랜드 운동화만 가득 차있는 사태를 정확하게 보고 인정하고 나서야 “아, 내가 이랬었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쓸 때 가장 시험에 드는 순간이 이런 순간이다. 나는 방금 나 자신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모닝페이지는 나의 모든 것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내가 만나는 연인이 알고 보면 나를 사랑하지 않고, 그저 순간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날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하루하루 숨이 턱턱 막히고 힘든 직장생활에서 근원적인 문제는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이지, 저 얼굴만 마주쳐도 짜증 나는 상사가 아니란 사실 또한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상사 욕하는 게 좀 더 마음편할 뿐이지.
모닝페이지를 쓰다 보면 모닝페이지는 나의 꿈, 나의 희망뿐만 아니라 내가 결코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추한 모습,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정적인 감정 또한 보여준다.
일단 쓰세요. 누군가를 신나게 욕하고 싶다면 모닝페이지 안에다가 온갖 저주를 퍼붓고, 나의 은밀한 취미에 대해 칭찬하고 싶다면 마음 놓고 찬양하라. 하다못해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의 은밀한 성적판타지의 대상이면 또 어떤가. (극단적인 예지만 세상엔 없는 게 없으니까... 물고기씨는 가끔 키우는 고양이님이 은발에 양복 차려입은 까칠한 중년미남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모닝페이지 안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모닝페이지를 쓰다 보면 아주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당신이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던 아이디어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하나의 작품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당신이 ‘이건 좀 괜찮을 거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작업이 모닝페이지 안에서는 “아, 이러저러한 면 때문에 사실 계속하고 싶지 않아” 라고 침묵의 목소리가 용기 내어 이야기하는 것도 볼 수 있다.
모닝페이지를 쓰다가 ‘난 지금의 내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란 말을 쓰고, 이어서 ‘난 원래 낙서하는 걸 좋아했었는데. 한번 아무거나 종이에 끄적여볼까?’ 라고 쓴 것을 보게 되었다. 며칠뒤에는 ’놀고있는 패드가 있었지. 여기다 그림을 그려봐야겠어’. 몇 달 뒤에는 ’그림으로 적게나마 수익을 낼 수 있다던데... 내 그림이 딱히 남들처럼 화려하고 멋진 건 아니지만 뭐, 그림 올리는 게 돈 드는 건 아니잖아? 혹시 알아?‘ 라면서 온라인 플랫폼 이야기를 쓰게 된다.
믿기지가 않나요?
일단 해보세요. 30분 동안 손가락 움직여서 메모장에 글 끄적이는 거 돈 드는 거 아니잖아. 뭔 말을 써야 할지 감이 전혀 안 오면 친구들이랑 얘기하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 카톡 보낸다고 생각하고 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쓸 말이 도저히 안 떠오르면 “아,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다고. 할 말이 없다니까 (...)“ 등으로 반복해서 써보는 것도 좋다. 할 말이 없다가도 떠오를걸?
굳이 난 예술가 같은 거 안되고 싶은데요,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속는 셈 치고 써보기를 바란다.
물고기씨는 약팔이 사기꾼이 아닙니다.
모닝페이지와 더불어서 아티스트데이트 또한 중요한 준비물인데, 이것은 다음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기를 쓰는 또 다른 방식이다. - 파블로 피카소